[프라임경제] 8일은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고사장으로 선정된 전국 각 학교들 앞은 수험생들을 응원하러 나온 학교 후배들이며 학부형들로 장사진을 이뤘는데요.
이 사진은 서울 은평구의 어느 고사장 앞에서 한 여학생이 머리통을 부여잡고 있는 뒷모습 장면입니다. 만약 사진기자가 이 사진에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고 우스꽝스러운 제목을 붙여서 송고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또 마치 사진기사처럼 사진에 제목만 달랑 있거나 극히 짧은 분량의 사진설명만 붙는 경우로 조건을 좁혀 보겠습니다. 그런 경우 데스크는 이걸 결재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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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렇게 제목을 붙이고 어떤 사정인지 설명이 아예 없거나 부실하거나 해서 모종의 오해를 조장한다면 여러 논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군중 속에 한 명인데 과연 초상권 등이 문제가 될까요? 둘째, 저렇게 제목을 '악의적으로' 달아놓으면 응원을 나온 학교 후배가 아니라, 수험장을 혼동해서 엉뚱한 학교에 나타난 정신없는 수험생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경우 규제할 방안은 없는 것일까요? 셋째, 뒷모습만 나왔는데도 초상권 등 분쟁 여지가 생길 수 있을까요?
우선 '군중 속의 1인' 초상권 부분입니다. 우선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집회 혹은 군중에 대한 촬영은 원칙적으로 초상권 침해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국내외적으로 확입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위 장면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2009년 10월에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시위 장면에 찍힌 A씨가 모 인터넷매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초상권 침해와 명예훼손)에서 원칙적으로 초상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집회 혹은 군중에 대한 촬영은 원칙적으로 초상권 침해가 아니라는 입장인데요. 다만, 초상권 침해는 아니나 명예훼손 부분이 인정돼 일부 승소가 됐습니다. 법원이 인정한 예외 상황은 △먼저 부정적인 기사를 작성하면서 기사를 본 사람들에게 왜곡된 사실이 전달됐을 경우(가령 기사내용과 무관한 피촬영자의 사진을 사용) △피촬영자를 모욕하거나 비방할 목적으로 순간적으로 촬영된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표정이나 동작의 일부를 전후 설명없이 보여준 경우 등이 있었습니다. 저 경우 응원단으로 차출된 학생을 정신없는 수험생처럼 '왜곡한 점'이 있다면 당연히 문제 소지가 있겠습니다.
그럼 자기가 적극적으로 남들에게 뭔가 의사 표시를 하러 나선 시위 참여 경우가 아니라 순전히 '행인 1'로 찍힌 경우는 어떨까요? 프랑스에서 지하철 승객 인파(군중) 장면으로 동의없는 촬영을 당한 사람이 10만프랑 배상을 요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프랑스 사법부에서 초상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조정한 사례를 보면, 모 일간지에서 백화점에 모여든 인파를 찍은 장면에서 소액을 위자료 성격으로 지급한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돈 많냐, (경제도 어려운데) 백화점에 장 보러 다니냐" 등 비아냥을 사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어떤 맥락인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같은 '군중 속 1인'이라도 어떤 가치 판단 문제가 개입될 여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뒷모습에 초상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 부분인데요. 이건 초상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인격권의 일부로 보는가, 프라이버시권의 일부로 보는가 논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더 간단히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2011년 의정부지법에서는 모 방송사가 뒷모습과 음성 보호에 소홀해 주변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채 피해를 봤다는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특이하게도 항소심에서 배상액이 더 커지기도 했습니다.
보통, 수험장은 거기서 가까운 인근 학교 출신 수험생 내지 재수생들에게 배정되므로 어느 고사장인지 알아볼 수 있다면 자동으로 응원하러 온 고1, 고2 학생들도 몇 개 학교 출신들로 압축되게 마련입니다. 당연히 뒷모습만으로도 "쟤 2학년 몇 반 누구인데 이상하게 사진이 찍혔다"는 식으로 파악이 될 여지가 있습니다. 즉 '이미지 손상'을 입을 개연성이 발생하겠지요.
그러니 따져 봐서 아무래도 위험하다 싶은 사진은 아예 사용을 하지 않거나, 모자이크나 흐리게 처리하기 등을 제대로 잘 처리해서 보도용으로 사용해야겠습니다. 그러니 저 사진에 흥미 위주의 제목만 혹은 부실한 짧은 사진설명만 달고 내보내겠다는 용감한 기자가 있다면, 데스크가 말려줘야 하는 것입니다.
아, 저 사진 속 뒷모습의 주인공은 아마도 선배 수험생들을 응원하러 나온 학생일텐데요. 아마 그냥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사실 수능날엔 수험생이 경황없는 거지 응원단이 멘붕(경악해 정신이 하나도 없음을 말하는 속어)올 일은 별로 없으니까요. 어쨌든 나중에 시간이 흘러 스스로 수험생으로 수험장에 나타나는 그 해 그날엔 저런 멘붕 포즈 취할 일 전혀 없이 침착하게 시험 잘 치르기를 '예약전송'으로 기원해 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사진에 등장해 준 수험생·응원나온 후배·학부형 그리고 질서유지 경찰관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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