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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독재투쟁’ 김근태 타계…큰 별 지다

 

최봉석 기자 | cbs@newsprime.co.kr | 2011.12.30 09:40:49

   
 
[프라임경제] 1970~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던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인 김근태(64)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30일 오전 5시31분께 별세했다. 향년 64세.

‘민주화의 대부’로 통하는 김근태 고문은 유족과 민주통합당 이인영 전 최고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64세 일기를 마무리 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김 고문은 지난 11월29일 서울대병원에 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으나 2차 합병증까지 겹치면서 이틀 전부터 중태에 빠졌고 결국 입원 한 달 만에 숨을 거뒀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하고, 독일 함부르크재단으로부터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는 등 인생을 온전히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까닭에 민주진보진영에서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진 못했다.
 
19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재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김 상임고문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인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10차례 넘게 전기고문을 받는 등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을 반복하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당시 받은 전기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2006년께부터 파킨슨병을 앓아왔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지만 김 고문은 자신의 이 같은 치명적 약점을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병원 치료를 받아오며 정치인으로 삶을 이어갔다.

1995년 당시 민주당 부총재로 제도 정계에 입문한 김 고문은 이듬해 서울 도봉갑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내리 3선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06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오랜 동지에 가깝다.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역임하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혁성을 보여 차기 대권주자군으로 분류됐다.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한 이후 정동영 의원과 함께 당의 양대 산맥으로 등장하면서 이른바 ‘GT계’라는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에는 정치의 뒷면에서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의 대통합을 위한 메신저 역할을 했으며 건강회복과 함께 내년 총선에서 재기를 갈망해왔다.

하지만 김 상임고문은 한국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채 30일 끝내 별세했다.

측근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의 바람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진보 진영이 승리하기 위해선 ‘반(反)보수 대연합’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고문은 이를 지켜보지 못한 채 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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