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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잃은 자의 비극…‘은행 몽니’ 직면한 영국

[집중분석] 캐머런 정권 3대 딜레마…‘배은망덕 은행’ 개혁수술 힘 부치나?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1.12.27 07:55:47

[프라임경제] 영국 정권이 은행계와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19년까지 은행권의 대규모 개혁을 단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의 주된 내용은 영국 은행들의 소매업 분야(상업은행)와 투자 분야(IB)를 분리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은행독립위원회(Independent Commission on Banking)의 평가보고서에서 제시된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여기에 빈스 케이블 산업경제장관을 통해 발표되는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이 더해질 예정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최악의 경우 은행의 질서 있는 정리절차를 도모하는 장치로서 방화벽인 ‘링 펜스’를 도입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의회가 이런 움직임에 찬동, 2015년까지 개혁 추진에 뒷받침이 될 입법 조치를 해 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런던 내 금융중심지 이름을 따 ‘시티’라는 대명사로도 불리는 영국 은행계는 개혁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부 금용 전문가들도, 이러한 개혁 추진은 (자본확충 등 비용의 수반으로 인해) 은행 수수료를 높이게 되고 결국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갈 것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일단 진보 성향 매체인 ‘가디언’지가 21일 은행가들(을 대리하는 시티 변호사들)이 보너스를 지키기 위해 법정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 보낸 것은 이런 일련의 반발을 방증하는 지표 중 하나일 뿐이다.

특히 RBS를 이끌고 있는 필립 햄턴 경은 “영국 은행이란 푸줏간에서 제일 좋아보이는 돼지 신세거나, 아교공장의 예쁜 말 신세(모두 곧 도축당할 신세)”라고 자조하는 등(스카이뉴스 인터넷판 21일자) 당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은행가가 왜 도살장 돼지 신세?” vs “배은망덕 은행 먹튀 허락마!”

   
영국 경제는 금융업의 힘으로 중흥을 이룬 바 있으나, 이번 유럽 재정위기 상황에 함께 휩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다. 영국 정부의 은행 개혁 추진이 은행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가운데 성공적인 개혁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하지만 제조업 배경이 이미 소실된 상황에서 금융 개혁에 박차를 가하기에는 힘이 부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는 무조건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점 등을 공식화하고 있는 이번 개혁의 칼날에 대한 불만으로 읽힌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된 링펜스는 정부가 금융기관에서 발생하는 특정 규모 이상의 부실자산을 보증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정부가 메워주는 방식이다.

미국이 금융 위기 극복 과정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유명해진 배드뱅크가 설립되는 경우에는, 유사시 은행들은 부실자산을 떨어내 재무제표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고, 결국 건전 자산만을 보유한 이른바 굿뱅크를 갈라내,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링펜스에서는 부실한 자산과 분리는 이뤄지나, 재무제표에 문제(부담)가 남는다. 이렇게 되면, 납세자 부담이나 자산 매각시 도덕적 해이가 이슈화될 가능성이 작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높지만, 대신 금융권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달갑잖을 수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일부 진보 매체 등을 중심으로 해 금융권 징벌론에 가까운 주장도 부각되고 있다. ‘가디언’의 시티 움직임 보도에 앞서 ‘인디펜던트’는 ‘메가뱅크의 위기는 질서 있게 오지 않는다’는 기사(20일)에서 영국 은행계가 비용 부담을 실상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매체는 “HSBC는 아마도 자본을 크게 지출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면서 “외국에 흩어진 자산이 ‘영국 납세자’에게 부담이 되는 위험이 없다는 점을 입증할 가능성”에 대해 전망했다. 이 매체는 ‘배은망덕한 은행’이(ungrateful HSBC) ‘먹튀’하게(to scarper) 허락하지 말라는 소제목을 사용하는 등 공격의 수위를 최대한으로 높이기도 했다.

금융권 반발하면 못 버틴다 예상 나오는 이유

이런 상황에서 내각이 버틸 수 있는 ‘맷집’ 즉 은행계의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시간적, 물적 토대를 유지할 능력은 당연히 정권의 유지 가능성의 강약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국면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대처 전 총리와는 칼자루를 장악하는 능력 자체가 다르다는 데 있다. 우선 국내 보고서를 참고해 보면, 현재 영국 정부(내각)가 당면한 3대 딜레마 즉 성장-물가-재정이 서로 얽혀 어느 곳에 칼을 대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삼성경제연구소 이종규 수석연구원, ‘영국 경제의 3가지 딜레마와 향후 전망’).

일단은 유로존이 워낙 혼란에 빠진 것을 보고 있는 영국 국민들이 긴축 재정 등 고통 분담 요구 와중에서도 일단 보수당 정권에 높은 지지율을 최근 보여주고 있는 점 등은 이 보고서나 미국 일부 언론(이를 테면, ‘타임’은 대처식 고통 분담 정책을 참을 국민이 없을 것으로 봤다)의 당초 예상과 다른 국면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어디까지 지속될지 장담키 어렵다는 점이다. 대처 전 수상도 1981년 불경기 국면에서 금리와 불경기 등 여러 난제가 얽힌 상황에 도전을 받았지만(당시 국면에 대한 해석 기사로는 한겨레, 1990년 11월15일, 7면 등) 저항을 무력화시키면서 정책을 지속할 수 있었는데, 캐머런 내각은 △현재 연립을 구성 중인 자유민주당이 EU 구제 문제로 잡음을 내고 있고, 이로 인해 주요 산업인 금융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 즉 △유로존이 영국의 신재정정책 불참 등에 반발, 보복으로 불리한 입법을 추진하거나, 특정 금융 사업의 영역을 유로존에 한정하는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우려(내지 예측)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황을 극복하는 방안인 내수 및 제조업으로 문제를 푸는 원론적인 방법을 에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 매체 중에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를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스카이뉴스’ 에드 콘웨이 경제에디터는 ‘영국의 경제 정책: 유로존과의 견련성을 풀자’라는 글을 통해(12일) 신흥국 시장으로의 수출 증대 필요성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 글 말미에서 스스로 말하듯, 유럽이 ‘우리 영국 제조업의 가장 큰 시장으로 남을 가능성은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게 아닐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이는 금융 등에만 크게 의존한 대처식 영국 중흥의 균형추 맞추기를 요구한 것으로도 풀이돼 주목된다. 덧붙여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1월26일 발간한 호에서 영국을 ‘거인들이 없는 땅’(No land of giants)으로 지칭, 제조업 붕괴 사정이 위기 해법에 발목을 잡을 사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먼저 30년여 전 시대에 대처 전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영국 제조업 부문을 떠받쳤던 다수의 지주격인 대기업들을 무력화했다면서, 영국의 약점을 노출하고 공장들이 도산하게 하는 원인이 됐다고 개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제조업은 유행을 타고 있다고 말해 지금이라도 금-산 균형을 잡을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영국 상황, 금융중심지 꿈꾸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 커

이런 영국의 현재 금융 문제 개혁을 둘러싼 진통은 결국 하루 이틀 간에 해결을 볼 수 있는 감정싸움 정도가 아니라, 결국 대처 전 총리 시절부터 내려온 누적된 피로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최근 10년여간 우리나라는 고용과 소비, 내수 등의 부진이 이어지는 일명 ‘잃어버린 10년’을 겪고 보수적이며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MB정권이 들어섰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번 정부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진단하고 미래 성장산업의 무게 중심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시각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금-산 균형이 없는 정책 추진은 결국 허상에 가깝다는 점, 그리고 아이슬란드식 붕괴가 아니어도 나중에 큰 정책적 논란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이번 영국의 금융권 수술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한 타산지석의 논의 역시 한국의 은행계가 현재 M&A 격동기를 겪는 중에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중요 논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영국 은행계와 당국의 갈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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