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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외환 ‘하지원: 열정CF’, 왜 안쓰럽냐면…

모델 컨셉트 활용해 소비자 머릿속 스키마와 대화하는 똑똑한 광고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1.12.05 14:02:58

[프라임경제] 광고(흔히 CF라고 하는)는 이성적·감성적 소비 성향을 고양하는 좋은 수단입니다. 이미 소비자 반응과 광고 효과 간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게 정설이고, 이에 따라 단순한 개별 제품뿐 아니라 기업 자체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에도 유의미한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기업PR 광고는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스펙 걱정’을 하는 여학생과의 가상대화를 통해 진심어린 조언과 희망을 전달합니다. 두산도 ‘젊은 청년에게 두산이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주제로 기업PR 광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런 기업 PR 광고는 단순한 메시지 전달과 공감대 형성뿐만 아니라, 광고모델의 이미지를 적극 차용하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유명인 모델 전면 부각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녀시대가 굽네치킨 광고를 하면 효과는 분명 크겠지만, 이 미녀들이 닭에 대한 무슨 하등의 전문성이나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니까, 이건 유명인 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요. 또 삼성생명의 CF 중에서 박태환을 도전의 상징 키워드로 세운다면 그건 이미지 차용이겠지만, 노인 은퇴 설계에 박태환 그림이 붙으면 사람에 따라서는 이건 좀 생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겠지요.

그런데, 이미지라는 게 잘 쓰기는 어렵지만, 이런 이미지 컨셉트와 브랜드의 결합은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기도 합니다.

이는 스키마(Schema)라는 문제 때문인데요, 스키마란 지식의 덩어리로, 일반적인 절차나 대상, 지각 결과 또는 사회적 상황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스키마 이론의 기본 전제는 모든 새로운 정보는 스키마의 옛 정보와 상호 교류한다는 것입니다.

스키마로 광고를 보는 이 머릿속 이미지를 훔쳐 증폭시키다?

   
토요타는 전국시대의 영웅 중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이들의 환생이라는 소재를 광고에 내세워 부활과 즐거움이라는 새 기업 이미지를 구현해 냈다.
그런데, 스키마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양하게 다룰 수 있는 탄력성과 융통성이 있지만, 그런 한편 △스키마는 외부적인 자극들을 인지하는 데 있어 완전히 자의적인 것은 아니고, 스키마를 자극하는 건 객관적인 자극이라는 절묘함이 있다는 것입니다(홍영, ‘제품 컨셉트와  광고컨셉의 일치성 여부가 브랜드 선호에 미치는 영향’,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2011년, P.20 등).

특히 근래에 등장하는 광고 중에는 기업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신우일신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광고의 컨셉트와 모델이 가진 컨셉트의 조합이 중요한 판단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유명한 배우나 탤런트 아무개가 나섰다는 게 아니라, 그 아무개가 어떤 캐릭터인지, 혹은 어떤 캐릭터인지(어떤 캐릭터로 짧은 광고 영상 속에서 역할을 하는지)에 방점을 두는 경우가 발견됩니다.

근래 외국 사례로는 토요타의 ‘리:본’ 이미지 광고를 주요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국 시대의 명장인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둘이 현대에 부활해 토요타 자동차를 타고 여행에 나선다는 내용인데요, 이는 아사히신문이 조사한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리더’에서 이들이 각각 3위, 6위를 차지한 점에서 참고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흔히 “새가 울지 않자 오다와 도요토미 그리고 도쿠가와가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았는데…”라는 이야기에서 보듯 같이 언급되는 인물인 데다, 같은 조사에서는 순위가 더 높은 2위로 랭크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리:본’, 그리고 운전하는 재미라는 점을 강조하려다 보니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신 맹렬한 이미지가 강한 둘을 낙점한 것으로 보입니다. 칼을 피로 씻던 시대, 하지만 문화가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했던 시기의 대표 주자를 고르는 문제에서, 둘은 잔인성으로 인해 회자되기도 하지만, 또한 다도를 즐긴 ‘풍류’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니, 그저 참고 인내하는 이미지가 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보다는 ‘리:본’이라는 점에 목마른 현재의 토요타로서는 더 탐나는 연상 작용의 결과물(스키마)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것이지요.

스키마 작용으로 ‘하지원=외로운 투쟁하는 외환은행’ 연상 가능

이런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외환은행이 최근 론칭한 광고가 그것인데요. 외환은행은 하지원씨를 내세워 “스마트하다는 것은 열정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차적으로 우리는 스마트하다, 열정이 있는 은행이라는 것이 전달 목표지만, 이것이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씨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늘 노력과 열정을 통해 힘든 배역을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외환은행이 최근 연기자 하지원씨를 섭외해 촬영한 광고를 론칭해 눈길을 끌고 있다.

“나는 복서(영화 ‘1번지의 기적’)였고 검객(드라마 ‘다모’)이었고 스턴트우먼(드라마 ‘시크릿가든’이었다”는 나레이션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연상하는 것, 더 나아가 언급되지 않은 그녀의 필모그래피(그녀의 출연작에는 ‘7광구’ 같은 기대보다는 다소 흥행 성적이 떨어졌던 작품도 있으며, 2000년대 초반에 아마추어 무선통신 바람을 일으켰던 영화 ‘동감’에서는 조연으로서 류지태를 좋아하는, 그리고 룸살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급생으로 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원의 필모그래피는 대부분 ‘불쌍하기’ 그지없습니다)를 함께 연상하는 것이 스키마의 작용입니다. 

즉, △외환은행이 표면에 내세운 스마트, 열정을 대표하는 화면상의 노력하는 이미지와 △출연한 작품의 흥행 성적으로 인해 배우로서 안타깝거나 극중 인물로서 불쌍하다거나 어쨌든 상당히 가엾다는 점이 함께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외환은행 광고는 하지원의 이미지를 음으로 양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고, 많은 것을 우겨 담는 대신 소비자가 갖는 이미지나 정보를 오히려 끌어다가 이와 교감하면서 효과 증폭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한때 불쌍하게 죽는 여주인공 역할이 그렇게 많았다던 최진실씨가 CF 시장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여기서 연상한다면 무리수일까요(고인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나 삼성전자 CF에서는 행복한 도시새댁 이미지를 연기하기도 했지만 ‘국민 여동생’ 이미지로 각인돼 있습니다. 이는 그저 어리고 귀여운 문근영에게 붙었던 국민 여동생 수식어와 뉘앙스가 다릅니다.).

외환은행 매각 소식과 함께 하나금융의 고용 보장 메시지, 거기에 대주주인 론스타의 산업자본(은행 대주주가 되는 게 불가능한) 여부를 당국이 이미 오래 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KBS 뉴스 등이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외환은행 노조에서 아무리 투쟁을 하고 시민단체가 소리 높여 외쳐 봐도 관심이 없어 하는 국민들이 상당히 많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하지원의 필모그래피가 외국계로 팔려간 이후에도 오랫동안 고군분투 수익을 올리면서 꿋꿋하게 살아남은 스마트 뱅크 역사를 연상시킬 수 있다면, 외환은행의 광고 노림수는 상당히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추신] 기왕 이렇게 노림수를 넣은 것이라면 “스마트하다는 것은 열정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광고가 회자되어 외환은행의 앞날에 많은 국민적 관심이 쏟아졌으면 합니다. 삼성전자의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 못지 않은 히트작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삼성이 금성을 확실히 역전, 부동의 1등 전자 기업으로 우뚝선 전기가 이 CF에서 마련됐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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