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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금융위기, 3년전 리먼사태보다 더 심각한 3가지 징후

외적상황 비슷하고 체력조건 좋아졌지만…韓 능력·선택지 부족은 여전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1.09.23 18:11:25

[프라임경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로 시작된 리먼사태가 세계 경제에 암운을 드리웠던 2008년 상황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행들이 흔들리면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미국 3대 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했고 프랑스 제1의 은행인 BNP 파리바가 큰손들의 ‘뱅크런’ 수모에 직면했다.

이는 그리스 2차 구제금융 지원과 유럽재정안정기구(EFSF) 기능 확대는 실제 이행이 가능하게 되기까지 긴 터널을 남겨놓고 있다는 점, 미국이 시장에서 유일한 해법으로 기대한 양적 완화 정책(QE3) 대신 국채 만기 연장책인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내놓은 데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미 증시가 경기침체 불안감이 증폭된 분위기를 반영, 다우 지수는 21, 22일(현지시간) 이틀 연속 폭락하면서 연중 최저점을 경신했고, 우리 나라 코스피 시장도 23일 ‘검은 금요일’을 경험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불안감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어느 정도의 경기침체를 예상해야 하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각종 지표나 준비 상황면에서 지난 번 리먼사태를 떠올리는 이가 많은데, 이때보다 나은 대응 능력을 얻었다는 ‘학습효과론’이 힘을 얻는 한편, 한쪽에서는 상황이나 구조가 유사하지만 크게 달라진 바 없다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은행 괜찮다’, ‘재정위기와 한국 거리있다’지만…  

지난 번 리먼사태의 배경은 금융위기에서 펀더멘털 악화 방향으로 갔지만, 이번에는 재정위기가 금융에 불안감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돈을 풀 수 있는지, 유럽의 재정위기가 어떻게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지가 은행권으로 위기 전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 체력적인 상황도 다르다. 우리투자증권 신환종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23일 “무리한 신용확장을 통한 레버리지 확대로 버블 우려를 낳았던 2008년과 달리, 지난 3년여 간의 구조조정과 디레버리징을 통해 2011년 하반기 현재 선진국 금융기관들은 자산건전성은 물론 유동성과 자본완충력 지표가 크게 개선됐다”고 진단했다.

무디스는 이번 등급 하향이 정부지원가능성의 감소가 반영된 것으로, 펀더멘털 약화와는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미국 금융기관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신 애널리스트는 “펀더멘털 개선 속도와 미국 정부의 금융안정 의지를 감안하면 미국 금융기관의 tail risk에 대한 우려는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초안전자산인 미국채 신용등급 강등과 주요 유럽 선진국 소버린 이슈 등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미국 은행들이 신인도를 회복하는 데는 좀더 많은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로존도 마찬가지다. 결국 위기 ‘전이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 상실에 의한 ‘연쇄 파장’이라는 점에서는 리먼사태와 현재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재정위기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꼽혀 왔다. OECD 국가 중 국가채무 문제에서 가장 양호한 지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2013년 균형재정 추구 등 현안이 많고, 지자체 부채 등 숨은 국가채무가 만만찮다는 지적도 많다.

위기징후 1: 환율, 보유액 늘었지만 고환율 정책 우려와 외인 이탈 여전

   
외환 보유액 등 위기에 대응할 체력은 리먼사태 당시보다 강화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이번 금융위기의 고통은 과거와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정황이 여러 군데서 나와 위기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리먼사태를 회상, 향후 국면을 비교예측할때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환율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번 국면이 리먼사태 혹은 그 이상의 위기가 될 징후로 발전할 가능성을 따질 때 가장 대표적인 가늠자라는 이야기다.

우선 2008년 당시 환율은 ‘패닉장’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한 차례 강한 폭등 장세을 거쳤기 때문에 노련해졌다는 기대감이 존재한다. 리먼사태 조금 전인 2008년 초봄, ‘환율 주권론자’이자 ‘고환율론자’로 회자되는 강만수 현 산업은행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나설 무렵, 우리 나라 외환 보유고는 2600억달러 수준이었다.

지금은 외환 보유액이 3122억달러(8월 기준)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환율 급등이 외국인 이탈 주가 약세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던 2008년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이러한 외환 보유액 규모나 관리 능력의 학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존한다. 우선 정부의 정책이 지난 번 리먼사태 전후와 마찬가지로 고환율 정책에 머물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국정감사에서는 당국의 강력한 개입(한나라당 이종구 의원) 요청이 나오는 등 고환율 정책 논란이 거세다. 상황이 급박한 23일의 경우에는 정부가 환율에 개입했다는 풀이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전반적으로는 고환율 정책에 따라 환율 상승을 오히려 즐기지 않겠느냐는 의혹이 존재한다.

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당국은 외환 보유액을 푸는 외에도 23일 주요 기업과 간담회를 갖고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쌓아놓고 환전을 미룰 경우 기업들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기업 역시 매도 물량을 적절히 내놓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리먼사태 당시에 기업의 외화 보유 물량 매도를 당국이 이끌어 냈던 점과 유사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 말이고, 야권의 MB정권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기업들이 과연 이 같은 당국의 기대치에 부응해 움직여줄지에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환율 변동성에 대한 관리 능력에 의문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외 변수 악화에 따른 자금 이탈 상황이 증폭되는 경향이 제거되지 않고 있다. 23일까지 이틀새 외국인 자금이 1조원 빠져 나간 점은 한국 시장에 대한 신뢰성 문제도 적잖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여러 지표들이 좋아졌음에도 근래 CDS 프리미엄(국가부도 위험 등을 가늠하는 지표로 유용)이 2009년 5월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오른 문제도, 과거 위기설이 여러 번 불거질 때처럼 지표 이면의 의외로 허약한 바탕과 관리 능력을 우려하는 시각을 받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위기징후 2: 고물가, 저성장 고통 우려 ‘데자뷰’

고물가와 저성장으로 시달렸던 리먼사태 무렵의 경험이 한 번 더 반복될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

환율 불안 문제는 현재로서는 우리 당국이 완전히 콘트롤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 이 같은 상황에서는 수입물가 불안으로 인한 물가 상승 가능성을 차단하기 곤란하다는 점으로도 귀결된다.

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에 무리를 주면서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달성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차 방미한 김 총재는 22일(현지시간) 물가 문제에 대해 “3년 정도의 중기적 목표가 3±1%”라고 전제하고, “(최근 물가관리 목표치 달성 여부 논란에 관련해) 목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지 (목표를) 조정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 총재는 “어떤 비용을 지출하고서라도 맞추느냐 아니면 적절한 정책조합으로 갈 것인가”라는 선택 문제에 대해 “경제에 무리를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세계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소규모 개방 경제인 우리나라는 대외 여건을 잘 살펴보며 정책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며, 경제 구조상 무리수를 두면서 당장의 수치 달성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20일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4.5%에서 4.0%로 크게 낮춰 잡고, 올해 물가상승률을 기존 전망치 4.3%보다 높은 4.5%로 올렸다. 이는 우리 경제가 ‘저성장·고물가’의 이른바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코리아 구상을 위한 연구원 조혜경 기획위원은 이미 2월, “정부가 금리와 환율의 통상적인 정책수단을 외면하고 물가단속이라는 ‘미시적 정책’을 밀어붙여 일시적인 물가안정을 강제해낸다 하더라도 환율경쟁력이 경제금융정책의 잣대로 작용하고 성장은 중국에 의지하며 통화정책은 미국만 쳐다보는 한국경제의 허약성을 감출 수는 없다(코리아연구원 특별기획 33-7호)”고 지적했다.

중국마저 실물경제 본격 침체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기업 팔비틀기 논란’이 거세 그 부작용이 우려(예컨대, 민주당 우제창 의원의 22일 국감장 발언 “대기업과 같이 뒹굴던 당국이 추상같은 재판관 노릇을 하려 든다”)되고 있는 상황은 조 기획위원의 비판적 시각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위기징후 3: 수출에 희망 걸었던 2008년보다 나쁜 국내외경제 여건

위에서 언급된 2008년의 여러 문제가 일부 용인될 수 있었던 분위기는 리먼사태 당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수출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수 활성화로 경제적 위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비판과 한나라당 박순자 당시 최고위원이(2009년 3월) 환율폭등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최악의 저성장-고물가 연결 상황을 의미하는 남미형 스태그플레이션 발발을 우려할 정도였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출을 통한 위기 타개라는 명분과 실제 효과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수출길이 그나마 틔여 있는 숨통이라는 위안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기초적인 원인이었던 리먼사태 당시에는 수출 드라이브가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유럽이 재정적자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데다 일본 역시 허덕이고 있으며, 중국 실물 위축 등 여러 상황이 겹쳐 있다. 유로존 채권을 사들이는 문제에 있어 브릭스 국가들도 당초 기대와 달리 소극적인 태도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당분간 더딘 회복세를 보이다가 수요회복 저해요인이 점차 해소될 경우 금융위기 이전의 성장률로 수렴하는 경로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어디에서도 소비와 성장이라는 기대를 걸 견인차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가 내부적으로 소비 진작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현재 가계부채 규모는 작년 말 현재 가처분소득 대비 132%에 달한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생했던 미국보다 높은 수준(22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미국 워싱턴 포럼 강연 자료)으로, 점진적인 축소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김 총재는 포럼의 강연자료를 통해 “글로벌 금융불안에 대응해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는 가계부채 문제의 연착륙과 금융안정 시스템의 확충”이라고 강조했다). 저축률은 이미 OECD 국가들의 평균적인 수수준에서도 밑돌고 있다.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 규모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유도해야 할 당위성은 있으나, 자칫 부채조정이 소비를 위축시키는 사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셋값 불안으로 인한 부동산 소비심리 상승 상황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소비심리는 얼어붙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소비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인 소비자심리지수의 경우. 지난 2009년 12월에는 113, 2010년 8월엔 110로 하락해 왔고 2010년 12월은 109, 2011년 8월에는 99로 떨어지는 등 좀처럼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세계경제 측면에서 보나,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및 대응 능력면에서 보나 이번 미국 경제위기 및 유럽발 재정위기 상황은 2008년 리먼사태 당시의 파도보다 그 파장 크기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으며, 우리 국민들의 체감 고통 크기 역시 같거나 오히려 클 수 있다. 따라서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그 파괴력을 줄이는 데 중지를 모을 필요성은 더욱 높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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