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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기름 ‘한국의 눈꽃물’ 되어 태평양을 넘다

[50대 기업해부] 아모레퍼시픽…① 태동과 성장

전지현 기자 | cjh@newsprime.co.kr | 2011.04.15 11:59:31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50대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아모레퍼시픽을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오늘 이 자리에 오셔야 했으나 오실 수 없게 되신 아버님을 기리기 위해… 앞으로도 아버지의 집념을 이어 아시아의 아름다움을 담은 글로벌 명품을 만든다는 소명을 다해 세계 최고의 뷰티 기업으로 정진(精進)하겠습니다"

2006년 7월 한불 교류 및 양국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수훈 받는 자리에서 서경배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손에는 47년 전인 1960년 서성환 창업주가 처음 프랑스를 방문할 때 가지고 갔던 여권이 들려 있었다. 아버지가 태평양을 넘어 품었던 청사진이 아들의 손에서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66살 해방둥이 태평양의 최초 화장품은 동백기름

1930년 개성, 일제 강점기 시절 창업주 서성환 회장의 모친인 윤독정 여사는 가내수공업 형태로 동백기름을 짜 머릿기름을 만들어 팔았다. 윤

   
1930년 개성, 일제 강점기 시절 창업주 서성환 회장(사진 좌측)의 모친인 윤독정 여사(사진 우측)는 가내수공업 형태로 동백기름을 짜 머릿기름을 만들어 팔았다.
여사는 동백기름이 좋은 특성을 갖췄지만 제조하기 어렵고 공급량이 한정돼 값이 비싼 점을 노렸다.

서 창업주 가족은 개성의 상업 중심지에 자리 잡으며, 여성들이 필수품처럼 사용하던 머릿기름 장사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지금의 스킨로션에 해당하는 미안수, 구리무(크림), 백분 등으로 화장품 제조의 종류와 품목도 넓혀간다.

1937년에 윤독정 여사는 '창성상점'이라는 가게 간판을 올린다. 어머니와 아들, 스승과 제자로 원료 구매에서 상품 제조,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을 돕던 서성환 회장은 1943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사업의 전면에 나선다. 하지만 이도 잠시, 21세의 나이에 발발한 2차 세계대전으로 징용을 당해 신의주, 만주, 베이징으로 중국을 관통한다.

서 회장은 해방 후에야 개성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후 1946년 3월, 창성상점에서 태평양 상회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을 설립, 현재의 아모레퍼시픽을 향한 본격적인 출항을 시작한다.

서성환 회장은 해방 이후인 1947년에 사업의 거점을 서울 남대문시장 부근으로 옮기면서 품질 향상에 힘쓴다. 품목도 포마드 등으로 늘린다. 어머니의 동백기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포마드로 바뀌며 가업으로 이어졌다. 독자 상표를 붙인 메로디크림(영양크림)도 판매하며 혼란기 날림으로 만들던 제품사이에서 품질로 두각을 보이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하지만 이렇듯 착실하게 창업초기의 성장기반을 구축하던 태평양은 한국전쟁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다. 서 회장은 부산으로 피난한 상황에서도 화장품 제조를 지속한다. 서경배 대표이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버지는 당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직원들과 한집에 살면서 아침 다섯시 반부터 밤 열한시까지 하루 다섯 끼를 먹으며 일했다. 하지만 일을 거듭해도 피곤한 줄도 몰랐던 시절이라며 오히려 그 때가 큰 추억이라고 회고하셨다"고 말했다.

1951년 말, 태평양은 국내 최초 순 식물성 'ABC 포마드'를(남성용 정발료, 윤기나는 반고체상태의 머릿기름-오일, 향료 등으로 제조) 출시한다. 그리고 이 포마드는 여느 제품과 다른 향과 디자인, 품질로 메로디 크림의 뒤를 잇는 공전의 히트상품이 돼 시장을 석권한다.

   
1953년 서울로 돌아온 서성환 회장 일가는 후암동에 새 사업장을 마련한 후 1956년 들어 현재 사옥인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다.사진은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전경
◆용산으로의 이전 그리고 이어진 외형성장과 내실

1953년 서울로 돌아온 서성환 회장 일가는 후암동에 새 사업장을 마련한 후 1956년 들어 현재 사옥인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다. 이때부터 태평양은 외형 성장과 내실을 동시에 갖춰갔다. 인재 발탁 및 육성, 현대적 마케팅의 도입 등이 이어졌다.

1958년에는 동양 최초로 에어스푼을 도입했는데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늘고 부드러우면서도 고운 가루를 제조할 수 있는 제분기로, 업계 생산시설의 현대화를 앞당겼다.

1959년에는 프랑스 코티사와의 기술제휴를 성사시켜 국산 화장품의 품질 개선을 가속화했다. 이는 국내 화장품 업계가 외국과 체결한 최초의 기술제휴로 승인 철차나 양식 등 모든 과정을 관계 당국과 조율하며 하나하나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듬 해 1960년 업계 최초로 해외 프랑스 코티사를 직접 방문한 서성환 회장은, 태평양도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1962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현대적 설비를 갖춘 대규모 신공장을 짓는 승부수를 던진 서성환 회장은 그러나 자금난과 함께 이로 인해 태평양이 망한다는 소문이 도는 등 안팎에서 거듭되는 우려와 비난을 받는다. 태평양 창업 이후 처음 맞는 힘들고 어려운 고비였다.

하지만 서 회장의 신용을 믿었던 원료 공급상들과 거래상들이 자진해서 태평양을 지원하고 나섰고 황해도 출신 개성상인들도 힘을 보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후 완공된 영등포공장은 국내 화장품 업계를 상징하는 공장이 된다.

◆방문·지정 판매소 제도 ‘아모레’ 도입…화장품 유통의 혁명

이어 1964년에는 화장품 유통에 일대 혁명을 일어난다. 기존 도매상들의 ‘제살깎기 식’ 난매가 화장품산업의 발전은 물론 고객의 이익과 산업 전반의 고용창출에도 장애가 된다는 결론 하에 방문판매 제도와 지정판매소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전쟁 미망인 등 여성의 사회진출을 촉진한 방문판매제도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면서 국내 서비스 유통분야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화장품 산업이 단순 소비산업이 아니라 국민 경제에 큰 보탬이 되는 창조적 산업으로 재인식되는 계기였다.

서경배 대표이사는 "이때 만들어진 아모레퍼시픽의 ‘상생의 기업생태계’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97년 IMF위기 때 그 진가를 발휘해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이끌어 왔다"며 "현재도 아모레 카운셀러라 불리는 3만7000명에 달하는 여성 방문판매원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아름다움과 건강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말 아모레퍼시픽은 전국에 1200여개 아리따움 매장 등에서 3500여 명의 직접고용을 창출했다. 방문판매와 함께 선보인 아모레 화장품은 당시 이탈리아 영화 ‘형사’에 삽입되어서 유행하던 노래의 가사(아모레 미오, amore mio-나의 사랑)에서 따온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고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친근한 이름이 됐다.

◆2015년 글로벌 톱10 도전은 계속

1973년 기업공개를 단행한 태평양은 이듬해 법인 기업 외형액 순위 84위에 오르고 70년대 말, 산업계 전반에 불던 비관련부문으로의 다각화도 추진한다. 하지만 이는 90년대에 적지 않은 짐으로 돌아온다. 화장품시장 완전개방에 따른 다국적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

당시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며 경영 일선에 나선 서경배 대표는 "회장님은 '만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고민했고,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만들겠다', '화장품 외길이야말로 당신의 꿈이고 삶 자체여서, 화장품 없는 자신의 인생은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국내 기능성화장품의 시초가 된 '아이오페 레티놀', 설화수(사진), 헤라 등 히트상품이 이어지며, 글로벌 브랜드들과 경쟁을 펼치는 한편, 중화권, 프랑스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한다.
이에 서경배 대표는 건강이 악화된 서성환 회장을 대신해 미와 건강분야로의 구조조정,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체질 개선, 유통환경 변화에 따른 대처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도 건실한 경영 성과를 이루게 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국내 기능성화장품의 시초가 된 '아이오페 레티놀', 설화수, 헤라 등 히트상품이 이어지며, 글로벌 브랜드들과 경쟁을 펼치는 한편, 중화권, 프랑스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한다. 2002년에는 '아모레'와 '퍼시픽'을 결합한 새로운 CI '아모레퍼시픽'을 도입하고 선진 시장인 미국, 일본의 백화점에 국내 화장품 브랜드로는 최초로 당당히 입성한다.

올해로 창사 66주년을 맞은 아모레퍼시픽은 66년 동안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며 한국 화장품 업계를 지켜왔다. 아모레퍼시픽 2010년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조585억원, 3402억원, 국내 화장품 시장 점유율은 39.0%(2010년 말 관계사 포함기준)로 2위 업체의 점유율(16.9%)과 현격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1위 화장품 회사에 만족하지 않고, 2015년 글로벌 TOP 10화장품 회사를 목표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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