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호주의 ANZ 은행이 이르면 8월 마지막주, 실사단을 국내에 파견할 것으로 알려져 외환은행 매각, 인수 작업이 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번 과정이 매각 과정 본격 시동이 될 것인지 눈길을 끌고 있다.
앞서 지난 16일 ANZ 은행은 외환은행 지분 57.27%와 인수 관련 실사를 시작했다고 공개한 바 있으며, 로이터 등 외신들은 ANZ 은행이 외환은행 지분 인수여부를 10월 중순 이전에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ANZ 은행은 자료 요청 등을 통한 접근은 한 바 있으나, 실사단이 국내로 파견돼 외환은행에 대한 현장 실사를 벌이는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현장 실사 이후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와 매각 가격에 대해 접점을 찾아낸다면 인수 작업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번 실사에서는 외환은행의 최근 재무현황, 구체적 기업 가치 등을 따져볼 것으로 보이는데, 근래 여건이 외환은행(을 매각하려는 쪽)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더욱이, 25일 KB금융 어윤대 회장이 "외환은행이나 우리금융보다 외국 은행과의 M&A가 낫다"고 어느 강연회에서 발언, 외환은행에 대한 메리트를 낮게 인식하는 기류가 금융권 주요인사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이미 흐르기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외환업무 독보적 지위 점차 약화 가능성
론스타는 근래 주당 매각가격 '1만8000원+α' 입장을 고수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NZ은행은 1만원선 안팎의 인수가를 제시하고 있어 어느 선에서 의견 조율이 될지도 관심 사항이다. 참고로, 론스타(외환은행 대주주)의 자회사인 LSF-KEB홀딩스는 2007년 6월 주당 1만3600원에 지분 13.6%(8770만 주)를 매각한 바 있으며, 25일 오전 11시 기준 주가는 1만3000원이다.
오는 10월부터 '외화이체공동망'이 가동되면서, 외환은행이 한국 시장에서 누려온 외국환 독점은행으로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ANZ은행과의 매각 협상이 본격화되면, 기업가치 감소 요인으로 지적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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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외환업무,기업금융 등에 강점을 가진 은행으로 군림해온 외환은행은 위상이 앞으로 격하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시각을 받고있다. 아울러 론스타와 당국의 세금 분쟁으로 매각협상 지형에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 ||
외환업무의 우위를 가르는 중요성이 해외송금에 있기 때문에 다른 은행으로 이 업무가 분산될 경우 외환은행의 위상 약화가 우려된다는 것.
◆국세심판원 결정 한방에 5000억 우발채무 발생한 격
문제는 또 있다. 조세심판원은 이달 초, LSF-KEB홀딩스(론스타 자회사)가 세금을 돌려달라고 낸 과세불복 청구를 기각했다. LSF-KEB홀딩스는 론스타가 벨기에에 설립한 법인인데, 2003년 10월 외환은행 주식 64.62%(4억1675만 주)를 취득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어 2007년 6월 주당 1만3600원에 지분 13.6%(8770만 주)를 팔면서(매각대금은 1조1928억원), 당시 매각주관사가 주식 양도가액의 10%인 1192억8000만원을 원천징수해 국세청에 신고, 납부하자 이를 되찾겠다는 소송을 냈다.
이중과세 방지를 위한 한국-벨기에 조세조약에 따르면,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한국 국세청이 세금을 부과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벨기에에 설립된 LSF-KEB홀딩스를 조세조약 적용 대상이 아니라, 세금을 탈루하기위해 설립된 가짜 회사라는 논리로 접근했다(일명 도관회사 이론). 실상은 뒤에 도사리고 있는 론스타이며, 론스타는 우리 나라에 이른바 고정사업장을 둔 자이므로, 론스타가 올린 소득은 주식 양도차익이 아니라 사업소득으로 인정돼 국세청이 법인세를 물릴 수 있다고 국세청은 주장했고 이 주장이 국세심판원에서 인정됐다.
앞으로 행정소송으로 비화될 공산이 크나, 이같은 논리가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의미는 이미 낸 세금에 대한 환급 거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나머지 지분을 매각할 때에도 론스타에 고장사업장 논리를 적용, 과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투자펀드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양도세나 법인세를 거의 내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외국계 펀드들은 기업 매각차익,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지만, 조세피난처 등록(넓게 보면 우리 나라와 이중과세 방지협약이 돼 있는 나라에 페이퍼 컴페니를 설립하는 일도 포함될 것이다), 자산담보부증권(ABS) 발행을 통한 부동산 매각 등의 방법을 활용해 절세를 해 왔고, 이에 대한 여론이 나빴기 때문에 국세청은 세금 추징 방안을 고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 향후 이같은 국세청의 공격 기술을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 정리하고 한국을 떠나려고 준비할 때 적용해 보자. 론스타가 부담하게 될 세금은 얼마나 될까?
우선 매각 대금을 특정해야 하는데, 24일 교보증권 황석규 애널리스트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외환은행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1.02배로 은행평균 0.91배를 상회하고 있다. 또 "외환은행 PBR은 M&A 이슈가 본격적으로 반영된 경우 은행평균 대비 0.3배의 프리미엄을 받은 바 있다"는 설명이다.
황 애널리스트는 PBR을 1.2배로 적용하는 경우, 5조원대로 매각될 것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위의 결정에서 인용된 과세 비율을 적용하면, 매각시 5조원에 '주식 양도가액의 10%'인 5000억원을 과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드러난 조세 부담은 대체로 회계상 우발채무와 유사하게 이해된다. 이는 M&A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외환은행과 론스타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갑자기 등장한 5000억원짜리 우발채무를 안은 은행을 매물로 하여 실사단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거액 稅추징 가능성에 매각협상 불리해진 사례 있어
우발채무는 기업의 매각 협상(해외매각 협상의 경우도 포함)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컨대, 한보 철강 매각협상에서는 우발채무를 전액 인수자가 책임지는 것으로 합의했고, 반면 대한생명 인수를 추진했던 미국의 메트라이프생명은 우발채무를 정부가 보전하도록 요구했다가 예금보험공사측이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하자 협상을 중단해 버렸다(이후 대한생명은 인수자격 시비가 불거졌음에도 한화그룹 품에 안겼고 지금은 공적자금 회수의 모범적 케이스로 현재 꼽히고 있다).
해외매각 추진 사례 외에 국내 기업간에 매매를 하려는 중에도 우발채무 격으로 등장한 세금 부담이 매각 단가 할인 요인으로 작용한 사례가 있다.
현대종합상사가 현대중공업에 칭다오 조선소를 매각할 때, 수백억원대 세금 추징 가능성이 부각됐다. 국세청은 현대종합상사에 금지금(金地金: 순도 99.5 이상의 금괴를 말함) 부가가치세 반환 징수 가능성을 타진했고, 실제로 이 문제가 확정되기 전 매각을 마무리짓고 싶었던 현대종합상사 채권단의 채무 부담 방침으로 매각 단가가 할인됐다. 협상 과정 끝에 당초 2500억원대를 호가하던 매각 단가는 금지금 관련 과세 부담감으로 2350억원까지 떨어졌다. 단순 대비로는 6% 가량이 할인된 효과다.
해가 바뀌어 올해 2월 5일 공시내용을 보면, 서울지방국세청에 이 금지금 문제로 관련, 납부키로 된 추징세액은 514억8859만원(부가가치세 등)이었다. 500억원대를 넘나드는 과세 가능성이 150억원 할인 효과를 갖는다면, 이를 외환은행 건에 바로 적용하기엔 무리겠지만, 5000억원 가량의 세금 부과 가능성이 있고 승소 여부를 장담키 어려운 경우엔 당초 물밑 협상가액보다는 1500억원 정도 낮춰 잡아야 할 부담이 론스타 측에 생긴다는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현대종합상사 칭다오 조선소 건의 가격 할인에 주도적으로 활동한 채권단에는 이번에 매물로 나온 외환은행도 끼여 있다. 스스로가 닦은 게산법에 따라 인수가액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을 목도하게 된 셈이다.
◆이미 투자금 대부분 회수한 상황, ANZ에 우발채무 부담조건 붙여 넘길지 눈길
한편 론스타는 이미 배당을 통해 투자금을 거의 대부분 회수한 상황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2006년부터 매년 예외 없이 거액의 배당을 챙겨간 론스타는 그동안 외환은행에서 배당만으로 8889억원을 빼갔다. 2007년 외환은행 지분 13.6%를 매각한 1조1928억원까지 포함하면 지금껏 2조817억원을 챙기며 투자금의 96.6%를 회수한 셈이다. 더욱이, 이달 4일 외환은행은 올 2분기 당기순이익이 전 분기보다 무려 33.7% 감소했지만 당기순이익 2109억원 중 30% 정도인 645억원을 분기배당금('중간배당' 명목)으로 결정한 바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당국은 과거보다 한층 해외 펀드의 이익에 세금 부과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국세청이 2000년대 초반 학술적 관점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고정사업장 과세 논리나 도관회사 이론 등을 적극적으로 채용한 것이나, 한미조세협정 개정 노력, 24일 나온 정부의 펀드 파트너십 기준 정리 등을 보면 론스타로서는 한국 시장과 외환은행을 계속 보유하는 일에 지금보다 더욱 급속히 흥미를 잃을 공산이 크다.
론스타의 '스타타워 매각 관련 사건'에서는 사실상 판정패 평가를 받아온 당국이(8월 현재 이 사건은 2심에서 세무당국이 패소한 상황) 주식매각 이익 과세 건이라는 다른 사건으로 반격을 시작했고 이같은 상황 변화는 론스타가 바라보는 '배당금 자판기' 외환은행의 매력도를 감소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칭다오 조선소 매각 사례 등처럼, 아직 확정되지 않은 세금 부담을 인수인계하는 조건으로 외환은행이 매각될 가능성이 존재하고, 외환은행 매각 시나리오는 그 어느때보다 흥미롭게 흘러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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