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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대그룹은 주채권은행 교체 재요청 등 체결 거절 의사를 재차 확인하고 있다. 외환은행에 대출금 일부를 상환하는 등 현대그룹의 초강수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그룹은 6일에는 예정보다 실적공시를 앞당겨 발표하는 등 현대그룹 주력기업인 현대상선에 대한 평가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괄목할 만한 최근 실적 개선 사실을 제시하고, 지난 번 실적 악화는 세계 해운업 업황에 따른 부득이한 손실이었음을 강조해 해운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그룹을 재무구조 개선 약정 대상에 올린 만큼 이를 숙고해 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현대그룹이 재고 요청이라는 읍소와 주채권은행에 대한 대출 상환 등 사실적 실력행사 뿐만 아니라 공정거래법 카드를 꺼냈다는 데 있다.
현대그룹은 6일 이례적으로 법조항까지 들면서 조목조목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 향후 상황 전개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현대그룹, 채권단 연대 압박은 '공동의 거래거절' 규정
현재 주채무계열의 경우 주채권은행이 해당 기업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고 재정 상황 개선에 나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금을 새롭게 융통하는 게 어려워져 신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기존 사업 중에서도 구조조정 등을 추진하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현대그룹의 경우 현재 현대건설 인수전에 나서기 직전에 이같은 개선 약정을 권고받아 '숙원사업'을 눈뜨고 포기하는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약정 체결을 거부하는 경우 주채권은행 뿐만 아니라 전체 채권은행들이 공동으로 신규 여신 취급 중단 및 기존 여신 회수 등을 통해 압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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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OU 체결시한인 7일이 밝았다. 외환은행이 이번 문제로 현대그룹과 결국 40년 거래를 접게 될지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외환은행 본점(서울 을지로)> |
즉 공정거래법상 공동의 거래거절(Group Boycott)로서, 공동의 거래거절은 정당한 사유 없이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특정사업자에 대해 거래의 개시를 거절하는 경우와 계속적인 거래관계에 있는 특정사업자에 대해 거래를 중단하거나 거래 수량이나 내용을 크게 제한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왕따도 정당하면 합법'…'하나은행 공동거래망 사건' 결국 흐지부지
현대그룹의 공정거래법 위반 대응은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까?
논리적 타당성은 차치하고라도 실질적 압박 대응책으로는 현명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은행들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메스를 들이댄 예가 일반산업군에 비해 많지가 않은 데다, 공동의 거래거절 행위에서 '정당한 이유' 해석 문제가 남아 있다. 더욱이, 실질적으로 장기간 분쟁을 이겨내면서 분쟁을 끌고 나가도 실익이 마땅찮다는 또다른 지적도 나온다.
현대그룹에 대한 압박이 공동의 거래 거절 행위로 위법한가에 대한 이번 논쟁과 관련, 참고할 만한 실제 사건으로는 하나은행 공동거래망 사용 거절 문제를 언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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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나은행 공동망 사용 거절 사건은 5년여에 걸친 공방 끝에 결국 시중은행들의 공동망 사용 거절행위가 위법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매듭지어졌다. 사진은 삼성카드와의 가상거래 건으로 시중은행들의 '공공의 적'이 돼 배척을 받았던 하나은행(본점)> |
시중은행들의 공동망 사용 불이익 논리는 전산망 구축과 유지에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한 참가은행들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므로, 하나은행이 문제가 되는 거래를 임의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은행도 하나은행에 '삼성카드와의 가상계좌를 통한 거래를 중단하라'는 요청을 했고, 결국 하나은행은 당시 김승유 행장(현 하나금융지주 회장) 명의로 금융결제원에 '삼성카드와의 거래를 끊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다음 해인 2002년 1월 이에 대해 공동의 거래거절로 규정해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은행들은 공정위에 이의신청을 하는 동시에 법원에 '집행정치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소송이 진행됐다.
결국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2006년 6월에 이르러서야 대법원이 시중은행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CD공동망 운영에 있어서는 전산망 구축과 유지에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한 참가은행들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는 점 등에 비춰 참가은행들의 공동의 거래거절행위는 거래거절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밝혔다.
◆'정당한 사유'에 발목?…금지청구권 없는 현대그룹 무릎 가능성↑
결국 재무구조 개선약정 압박책으로 주채권은행 외에 다른 은행들까지 같이 압박에 나서는 것은 공동의 거래행위의 외형을 구성하더라도, 또다른 요건 중 하나인 '정당한 사유'라는 다른 논점이 남는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등의 압박에 대해 현대그룹이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입증해 내야 하는데, 국가 경제 전반의 체질 개선과 체력 강화라는 '대의'를 뛰어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또 있다.
현대그룹이 이처럼 주채권은행 교체를 주장하면서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하지 않고 법정 공방으로 문제를 풀 경우, 현대그룹이 이를 버텨낼 체력이 되느냐는 것.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거부하는 최종 의사가 확인되는 7일 이후부터 채권은행들이 실력 행사를 단행할 경우 이를 배제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마땅찮다.
결국 돈줄이 죄어드는 압박 속에서 끝끝내 현대그룹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강경하게 주장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로 귀착된다.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금지청구권 도입 문제와 맞닿아 있다. 금지청구권은 일본과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외국에서는 이미 정착돼 있어, 만약 우리 공정거래법상에도 이 제도가 존재했다면 현대그룹은 이를 활용, 은행들에 채권 회수 등을 중단하도록 절차를 밟고 공정거래법 위반 문제에 대해 느긋하게 논쟁에 나설 여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지난 2004년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이 관련 문제를 입법발의했었지만 학계의 논의가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현실적으로 도입되지는 못했다. 지난 6월 29일 서울지방변호사회 산하 기구가 이 문제에 대해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재조명에 나서기는 했지만, 아직 학술적 논의 대상으로, 도입은 장기적인 숙제로 남아 있다.
결국 현대그룹 역시 공정거래법 카드의 이같은 치명적인 한계 때문에 강경한 태도를 끝내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과거에도 당국이 주채권은행을 통해 기업에 사실적으로 압박을 가한다는 평을 들었던 사례들을 살펴보면, 신규 대출을 주지 않고 기존 여신 회수를 일부 조절하는 방법으로 숨통만 틔워놓으며 항복 압박을 했고 결국 이에 기업이 굴복한 것으로 돼 있다. 현대그룹 역시 이같은 전례나, 가깝게는 한진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약정 줄다리기 끝에 시간을 버는 정도로 만족하고 상황을 종료한 바를 따를 것이라는 해석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현대그룹으로서는 이번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피하고 더 나아가 현대건설 인수를 매듭짓는 게 고 정주영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으로 이어지는 '적통성 확인' 문제라는 점에서 절실하다. 더욱이 '현대건설 보유 현대상선 지분확보를 통한 경영권 안전 다지기' 차원에서도 공정거래법 위배 지적이라는 초강수를 꺼낸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이처럼 속을 태우는 절실함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공동의 거래거절' 카드는 '속 빈 강정'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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