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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퇴직연금, 손질 논점은 무엇?

과당경쟁·계열사 몰아주기 개선 위한 당국지도·법안 속속 등장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0.04.14 12:45:14

[프라임경제] 퇴직연금이 아직 완성 단계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2005년 12월 도입된 퇴직연금제도는 2008년 연말 기준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3년여 만에 어느 정도 정착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퇴직보험(신탁)을 들어뒀던 업체들이 아직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기대 이하로 나타나고 일부 유치전(과당 경쟁), 몰아주기 등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다.

◆퇴직보험(신탁) 업체들 전환신청 느리고 몰아주기 등 문제多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는 최근 '퇴직보험(신탁)의 퇴직연금 전환 활성화 방안' 보고서에서 퇴직보험(신탁) 폐지가 현시점 기준 1년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기업들의 퇴직연금 전환은 매우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에 따르면 퇴직보험을 도입한 기업 중 퇴직연금으로 전환한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2.1%에 불과했다. 한국의 퇴직보험(신탁)과 유사한 일본의 '적격퇴직연금'의 전환 문제와 비교할 때 상당히 낮다는 지적이다. 적격연금은 2012년 3월말 폐지 예정으로 전환에 여유가 있지만, 현재 계약건수기준 65.4%가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해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인다.

대기업들이 대거 퇴직연금을 들면서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몰아주기 관행으로 분위기 띄우기가 일부 식은 것도 문제로 언급되고 있다.

한나라당 조문환 의원은 14일 대규모 기업집단의 퇴직연금 계열사 몰아주기에 대한 현황자료를 제시했다.

조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5개 퇴직연금 운용사들이 유치한 총 금액이 5조1532억원에 이르렀는데 이 중 계열사로부터 유치한 금액은 2조5034억원으로 거의 50%에 가까운 금액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 기업집단의 하이투자증권은 유치금액의 98.5%, 한화 기업집단의 한화손해보험은 유치금액의 80.6%가 계열사에 의해 이뤄졌고, 삼성의 경우 퇴직연금에 가입한 43개 계열사 중 기업집단내 금융사에 가입 계열사 수가 무려 42개 계열사에 이르는 등 거의 100%에 가까운 계열사 몰아주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시장 분위기가 기대와 다르게 가입 증가세에 제동이 걸리고 나눠먹기로 흘러가면서 유치전이 치열해지고 과다 경쟁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서 역마진의 위험까지도 무릅쓰고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당국의 우려마저 사고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최근 "퇴직연금시장에서 일부 연금사업자의 역마진을 초래하는 고금리 상품 제시 등으로 인한 관련사업자의 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며 퇴직연금사업자(은행 15, 보험 21, 증권 17) 전체에 각각 지도 공문을 발송하는 등 제어에 나섰다.

자영업자가 퇴직연금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나, 규모가 적은 중소기업의 경우 퇴직연금 사엄자를 선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등 문제도 남아 있다.

   
  <사진=퇴직연금은 기존의 근로자 노후대책 근간인 퇴직금 제도를 대체할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계열사 몰아주기나 과도한 유치전 등 문제점이 드러난 데다 관련법 정비에 시간이 걸려 관심 대상 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계열사 몰아주기 의혹을 자주 받는 삼성생명의 퇴직연금 관련 자료>  

◆관련법안 핵심 아이디어 속출, '제도개선 여부에 촉각'  

결국 현재 퇴직연금 시장의 문제의 원인은 업계 자정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는 점과, 퇴직연금 가입을 유도할 만한 매력요인을 제시하는 게 부족하기 때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금감원이 최근 지도에 나서면서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상품 제안시에는 사내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사전심사를 받도록 하고, 심사내용을 정리한 리스크평가보고서를 작성·보관하라"고 한 것은 과당 경쟁으로 인한 리스크 관리 부실 우려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이외에 퇴직연금을 가입하는 데 매력을 느낄 만한 요인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과 근로자(개인) 모두에게 사실상 강제 대신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과거 퇴직보험을 운영하면서 납입 보험료 전액의 손비인정으로 절세효과와 부채비율 감소에 따른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누려왔으나 이런 혜택은 퇴직연금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기업들이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려면 40%만 적립하던 퇴직급여 충당금을 60% 이상으로 올려야 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부담을 순차적으로 나눠 처리해 줄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근로자 개인에게도 외국 사례처럼 퇴직연금에 소득 공제를 줘 가입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도 간접적으로 전환 확대(제도 안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다. 호주에서는 근로소득에 대한 최고 세율이 48.5%에 이르지만 퇴직연금소득에는 최저세율인 15%가 적용되도록 혜택을 주고 있는데, 세수 확보에 지장이 없는 한 최대한 세제 혜택을 줄 필요도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중소기업 공동가입제나 특정 금융기관의 계열사 연금계약 독점 등 공정거래를 깨는 문제에 대한 규제 방안 마련이다.

우선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것이 중소기업 등 재력이 약한 회사 근로자들이 사실상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퇴직 전 도산이나 재정 곤란으로 인한 퇴직금 적립 곤란 등) 사각지대를 없게 하는 것이었으니만큼,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가입 문호를 현재보다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제출 법안에서 이미 짚고 있지만, 아직 처리가 안 된 채 장기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벌 그룹 소속 금융기관들이 계열사의 퇴직연금을 불공정거래 논란까지 빚으면서 독차지하는 것에 대한 규제도 이미 아이디어는 무르익은 상태다.

한나라당 이화수 의원은 퇴직자연금법 일부개정안을 제출하면서 특정 금융기관이 계열사 퇴직연금 물량의 25%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고, 이미 유치한 계약의 경우에도 경과기간(법안에는 1년)을 거쳐 이 비율을 떨어뜨리도록(포기하도록) 돼 있다. 사실상 삼성생명의 독주(몰아주기 논란)을 겨냥한 법안이다.

이렇게 퇴직연금에 대한 당국과 정치권이 메스를 들면서, 향후 제도 개선이 당초 도입 취지처럼 전체 근로자 보호에 보다 가까운 방향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다만 정치적 악재들로 인해 이번 4월 국회마저 더딘 업무처리 속도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는 퇴직연금 제도 수술에 대한 기대감을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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