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차그룹의 3세 경영 그림 그리기엔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현대차가 정의선 부회장을 '공동 대표이사'로 선택하지 않고 등기 임원으로만 등재한 12일 상황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12일 현대차는 아침 정기 주주총회에 이어, 이사회를 열었다. 이를 종합하면, 현대차 주주총회는 정 부회장을 현대차 등기이사로 뽑는 안건을 가결시켰지만 곧이어 열린 이사회는 정 부회장의 공동 대표이사(현재 공동 대표이사는 정몽구 회장 외 2인이 있는 3인 체제다) 인선을 하지 않았다. 이사회가 세간의 '12일 등기이사+공동 대표이사 등극' 시나리오를 깬 셈이다.
따라서, 3세 경영 체제 본격화 작업은 아직 화룡점정이 되지 못했다.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승계 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직 오리무중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번 등기이사 선출 건으로 정 부회장을 위한 그림 그리기가 한층 가속화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의선, 대외활동은 많지만 곳간열쇠 장악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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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제공:현대차)> |
대외활동의 보폭은 앞으로도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부회장은 대기업 후계자로는 이례적으로 이달 초 제네바 모터쇼에서 직접 회사의 미래를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해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속도를 더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 부회장의 그룹내 위상이 높아지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승계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황에 '허울만 좋은 공동 대표이사'는 괜한 시비를 불러오기에 족하기에 굳이 서두르지 말자는 현실론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결국, 아직 지분 장악이 미미하다는 정 부회장의 상황을 언젠가는 풀어야 한다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번 공동 대표이사 등극 불발로 인해 문제 해결에 대한 열망은 더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 형태의 순환출자구조에서 정 부회장의 지분이 미미한 점을 감안할 때, 정 부회장이 보유한 글로비스 지분(31.88%) 등의 파괴력을 키우는 방향을 그룹 측이 빨리 찾아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의선은 떳떳하게 상속' MK의지 굳건?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움직임 하나가 최근 포착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주주대표소송과 관련해 항소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현대차는 재판 중인 글로비스사건 관련 주주대표소송도 자진배상을 통해 선고 이전에 미리 끝내고,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경제개혁연대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등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9일이 기한인 현대차 주주대표소송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다. 700억원 배상판결(1심)의 확정을 감수하기로 한 셈이다.
정 회장과 김동진 전 부회장은 부실 계열사인 현대강관과 우주항공의 유상증자에 현대차 등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해 손해를 입힌 협의로 700억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지난달 8일 받았는데 이같은 현대차 측의 항소 포기는 총수일가의 배상책임을 다투는 주주대표소송의 경우 통상 대법원까지 가던 관행을 탈피하겠다는 대국민 선언으로 읽힌다.
즉 대기업들의 변칙 상속과 경영권 방어를 위한 비리 문제에 관한 세간의 비판을 의식, 정의선 체제만큼은 의혹을 피하면서 구축하고 싶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이미 삼성그룹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건으로 홍역을 치르면서 법적 책임은 모면했을 망정 여론의 질타를 받은 상황에서 삼성을 답습하기 보다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하는 게 바로 이번 항소 포기 건이다.
◆순환출자 고리 끊고 지주회사로 가는 길 닦는 게 '과제'
앞으로 언젠가는 올 '정의선 공동 대표이사 선포'가 3세 경영의 외부적 간판이라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 형태의 순환출자구조에서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매듭짓는 것은 내부적 장악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현대차와 이하 그룹 계열사들간 순환출자 상황 정리를 위한 테이프를 끊은 바 있다.
과거에 현대차그룹의 지분구조는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지분이 얼키고 설킨 순환출자 구조를 띠고 있었다. 현대차(36.44%)는 기아차를, 기아차(16.88%)는 현대모비스를, 현대모비스(14.95%)는 현대차를 각각 지배하고 있었다. 여기에 현대제철이 현대차 지분 5.84%를 보유하면서 또 다른 고리로 개입돼 있었다.
하지만 현대모비스가 현대제철이 갖고 있던 현대차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현대제철은 순환출자 구조에서 제외됐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를 정하면 현대차를 자회사, 기아차를 손자회사로 거느리는 형태의 지배구조로 바꿀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지주사 역할을 할 만한 회사로 가장 유력하게 언급되는 것은 현대모비스. 그러므로 지주사 전환을 통한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는 정몽구 부자의 현대모비스 지분 확대가 필수적이다. 다만 이 경우, 글로비스가 이 지분을 매입할 자금 여력이 충분하냐는 의문이 아직 정확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현대차그룹의 3개 회사 지분을 현대모비스에 출자하고, 그 반대급부로 현대모비스의 신주를 인수하는 시나리오가 언급되고 있다. 이 경우 현재 7.0%에 불과한 현대모비스 보유지분을 27%까지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무리한 분할(모비스의 사업부분과 지주사업을 맡을 부분을 분리하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을 할 경우, 글로비스 부당 지원 논란과 같은 비판을 다시 정면으로 받아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이번에 현대차 주주대표소송의 항소를 포기한 것도 빛이 바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현대차 3세 경영 체제 확립은 에버랜드 사례에서 보인 삼성그룹의 이재용 띄우기보다는 상당한 오너 일가의 사재 사용을 동반할 것으로 보인다. 사재를 턴 지분 확대분을 줄이면서 비교적 모범적인 승계 케이스라는 평도 잃지 않는 묘수를 현대차그룹이 찾아내는 날이, '정의선 공동대표이사 체제의 첫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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