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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냐,보존이냐 '루비콘강' 앞에선 서울시

시청新청사 공사장서 유물…개발·보존사이 번뇌 이제끝낼때?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1.30 15:56:36
프라임경제] 서울특별시가 고민에 빠졌다. 문화 시정에 애정을 표명하고 있는 데다 각종 관련 정책으로 시민들의 눈길을 끌어당기며 재선을 노리고 있는 오세훈 시장의 가도 앞에 최근 여러 난제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오 시장이 문롸 정책을 어떻게 펴고 어떻게 표를 잃고 얻느냐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서울시 자체가 앞으로 도시 개발 현상에 있어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주요 명제를 택하는 결정적 기로에 선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전임 시장의 토목 시정과 그 성과물인 청계천을 능가하는 성과를 당장 내고 싶은 욕망과, 문화 시장으로서 '경국대전' 이래 500년 넘게 조선조는 물론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 영욕을 함께 누려온 서울시의 역사를 보존한다는 명분 사이에 고뇌하게 하는 문제가 여럿 발생하고 있다.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이제는 루비콘 강 앞에서 카이사르가 주사위를 던졌듯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광화문 광장. 과거 정치와 행정의 축이자 여론 중심지였던 육조거리를 되살리는 대신 제한된 광장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서울시 신청사 건립 '결국엔'

30일 서울시는 시청 신청사 공사현장에서 조선시대 화포 등 유물이 발견돼 고증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신청사 건립부지 지하층 굴토공사를 시행하던 중 옛 주차장부지에서 화포와 소총통, 장군전의 날개와 촉 외에 철환(둥근 쇠덩이) 등이 발견된 것이다.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시청사 건립부지는 1926년에 경성부 청사가 완공돼 기존 지층이 이미 훼손된 지역으로 지하 문화재류 발견을 기대하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오면서, 시는 일단 마무리 조사와 유구이전을 거쳐 전체 지하층 골조공사를 본격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특히 이번 유물 출토는 출토된 화포는 보물 861호 불랑기자포(조선시대 유일한 후장식 화포)와 동일한 형태여서 주목을 뜬다는 점 등 외에도 큰 맥락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는 이미 2008년에도 문화재 보호 문제를 놓고 유관부처와 알력 시비를 빚으며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 신청사 건립 예정지 유물 출토와 향후 처리 과정이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이다.

서울시와 문화재 당국은 서울시청 본관 건물을 해체하는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인 바 있다. 서울시는 문화재위원회가 태평홀을 포함하는 시청 청사 본관을 사적으로 가지정했음에도 본관 건물 보호 문제와 인근 신청사 공사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물론 서울시로서는 문화재 당국의 오락가락 행정이 내심 불만이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2002년 서울시청 본관의 보존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등록문화재' 등재에서 탈락했지만, 1년 만인 2003년 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고,또 5년 만에 사적으로 가지정되는 등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

그러나 당시 서울시의 이런 방침은 '특정 건물을 사적으로 지정하면 반경 100m 이내에서는 모든 건축행위를 중단한다'는 문화재보호법 관련 규정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한편 이후 공사는 서울시의 의욕적 추진 아래 착착 진행, 현재 서울시청 본관은 파사드(건물 전체의 인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정면부)와 중앙홀만 남긴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은 마치 오랜 역사를 가진 스카라극장이 문화재 지정을 피하기 위해(개발 이익 등 문제로) 전격 해체되는 비극을 맞이한 것과 비견되면서 도마에 올랐다.

결국 당시 문화재 가지정 건물 해체라는 극단의 수를 뒀던 서울시 신청사 건립 계획이 이번에는 제대로 '직격탄'을 맞은 터라, 서울시의 입장이나 처리 방향에 향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가 주목된다는 점이 흥미를 돋우고 있다.  

   
  <사진=2008년 피맛골. 피맛골은 서민 문화의 보고라는 점 외에도 그 밑에 조선시대 유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도 있는 특수한 지역이다.>  
◆계속 유물 나오는 피맛골 놓고 우물쭈물

서울시가 종로 피맛골 보전 추진에 나서면서, 뒷북 행정 논란을 낳고 있다.

서울시는 10월 19일 종로 구도심의 명물인 피맛골의 원형 보전에 대한 어젠다를 제시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방식이 진행 중인 곳을 제외한 피맛골은 철거하지 않고 원형을 지킨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피맛골은 조선 시대 고관대작들의 행찻길을 피해 서민들이 좁은 길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공간. 광복 이후에는 선술집과 식당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서울시민의 애환이 담긴 공간으로 이름이 높았다.

서울시에 내놓은 안에 따르면, 전체 길이 3.3km인 피맛골 중 이미 재건축이 끝났거나 추진 중인 청진구역과 공평구역 0.9km를 제외한 2.2km는 재개발 구간으로 지정돼 원형을 보전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종로2∼3가와 종묘∼종로7가, 돈화문로 등 3곳 등을 그 대상으로 하고 내년에 구체적 정비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피맛골 파괴 문제는 오세훈 현 시장만의 책임은 아니다.  피맛골 재개발은 현 시장 취임 이전인 2001년, 이명박 전 시장 시대에 이미 사업이 인가되면서 본격 추진된 이후 원형 파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라도 원형을 보존할 길이 마련됐으니 다행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하지만, 오 시장이 지금처럼 협의 계획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에서 너무 늦게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 또한 나오고 있다. 철거 후 재건축이 예정된 지역에 대해서도 기존의 골목길을 최대한 살리도록 건축주와 협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력이 충분했지만 의지가 없어 그간 방치했던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극히 최근까지도 피맛골에서 공사를 앞둔 지표 조사 등에서 유물 발견이 이뤄지면서 이같은 만시지탄의 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것.

단지 정취 보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문화재 파괴라는 극단적 '반달리즘'과의 싸움에 오 시장과 서울시가 한 발 물러섰다 나섰다를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미 2006년 피맛골 인근 6지구 '르메이에르' 신축 당시에도 지표조사 없이 공사를 진행하다 한 문화재 위원이 장대석과 기와 등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뒤늦게 발굴조사를 했고, 최근에도 1지구에서 백자가 출토된 바 있다. KT와 가까운 1지구 쪽은 조선시대 육조거리가 있던 근방. 더욱이 이 부근에는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이 있었다는 점도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서울시 문화정책이 결국 불러들인 것은 '경복궁 코앞 호텔'?

최근 고궁 앞 호텔 건립 추진이 뉴스거리가 된 것도 이렇게 그간 서울시정이 보여준 문화인식에 편승한 대기업의 시도가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대한항공측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 일대(옛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부지)에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을 지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 땅은 미 대사관이 쓰지 않고 방치하다 삼성생명에 매각한 바 있으며, 이후 2009년 연초에 한진그룹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사진=위는 현재 경복궁 복원 상태. 밑은 과거 경복궁 원형 조감도. 결국 광화문 인근에 고층 빌딩이나 호화 시설을 짓는 자체가 문화재 보호와 재건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한항공은 호텔의 콘셉트를 '부티크 호텔'로 정하고 다목적 공연장을 세워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서울의 문화 아이콘으로 설계할 예정이라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이곳은 경복궁 인근이고 북촌 한옥마을과도 가까운 지역이다. 문화재 보호는 물론 국민정서상 민감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향후 구청측은 물론 서울시가 이를 어떤 시각으로 주시할지 관점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 문화(재) 관련 정책 적극 변화 없나?

결국 이같은 고궁 앞 호텔, 문화재 유구를 파헤치는 개발이 어디서든 재발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피맛골 케이스 등 여러 건의 사례와 그에 대한 불안감이 한꺼번에 표출된 곳이 바로 서울시 신청사 건립예정지 유물 출토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서울시가 이제는 더 이상 모호한 태도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개발 행정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발이냐 보전이냐의 기조를 확실히 택하는 경계선이 될 것으로 호사가들의 화제와 문화 관련 인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고궁 앞 호텔, 문화재 유구 의심이 특히 높은 지역에서의 개발 행위 등을 막기 위해서는 사실상 시장 등 시정 최고위층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 현재의 제도가 빚는 엄연한 현실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고궁 앞 호텔 추진에 대해 "고궁 앞이라고 호텔이 들어서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일단 원칙적으로 대한항공측의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화재법에 따르면 동일한 목적으로 분할해 연차적으로 개발하거나 연접하여 개발할 경우 이를 합쳐 면적이 3만㎡를 넘으면 지표조사 의무 대상이 된다. 더욱이, 문화관광부령 등에 따르면 과거 문화재가 출토된 바 있는 지역이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일 경우 지자체장(즉, 여기서는 오 시장이나 작게는 해당구청장)이 지표조사를 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피맛골 문제에 있어서는 이 점에서의 지자체장의 적극적 개입이 부족했고 이후 뒤늦은 보전 추진안만이 나왔다.

이런 인식 부족 현상은 서울시처럼 땅값이 비싸, 사업 부지가 여럿으로 쪼개기저나 사업 시행자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경우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법 조문 자체가 모호해 사업자와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경우일 수록 지자체장 등의 책임있고 일관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

결국 이번 서울시청 신청사 건립 예정지 유물 출토를 계기로, 서울시는 더 이상 문화재 정책, 문화 관련 어젠다를 모호하게 넘길 수 없게 됐다고 종합할 수 있다.

더욱이, 오 시장이 집권 2기를 바라보는 마당에 터진 이 소식은, 앞으로 서울시가 개발과 보전 사이에서 어떻게 도시 전체의 기본 밑그림의 강조점을 두는가를 지자체장 선거를 앞둔 시민들에게 소명할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도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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