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조선시대 한성부 개청 이래 오랜 세월 우리 나라의 중심도시로 기능해 온 역사도시 서울.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결정문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서울은 오랜 세월 수도이자 각영역의 허브로 기능하면서, 영욕을 누려왔다. 하지만 이같은 오랜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그 문화적 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데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비판은 오세훈 시장 치세 기간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10월말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개장과 이면의 논란을 계기로 오세훈 서울시의 문화감각 부재를 간략히 되돌아 봤다.
◆시민 애환서린 운동장 헐고 서민 생계 터전 몰아낸 동대문패션클러스터?
지난 10월 27일,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개장됐다. 2011년 말 완공을 계획으로 진행되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조선시대 성곽터와 유구 등이 나오면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조성으로 콘셉트 변경이 이뤄진 가운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조성에 앞서 공원 먼저 개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시정 방향은 서울시의 문화재복원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당초 녹지와 편의시설 위주로 계획됐다. 하지만 공사 과정에서 서울성곽과 조선시대 유구, 유물이 발견되면서 설계를 변경해 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성곽이 발굴됐던 142m는 그대로 복원하고 성곽이 멸실된 123m 구간은 추정성곽선을 통해 흔적만 표시해 둬 복원 의지가 굳건하지 않다는 논란의 소지를 남겨뒀다. 전면 복원이 추진될 것이라는 이야기만 있어 아직 복원 여부를 확신하기 힘든 것이다. 그동안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로 불렸던 명칭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바꾸는 등 이 자리에서 드러난 서울성곽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 실제 진행과정의 이야기가 좀 다르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자리는 동대문운동장을 헐어낸 자리다. 숨가쁜 개발로 일제 시대 이래 역사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서울의 사정상 동대문운동장을 남겨두자는 의견도 많았으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패션클러스터)에 대한 강한 추진론이 관철됐다.
문제는 또 있다. 동대문운동장이 헐리면서 이 곳에서 장사하던 이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는 것. 이들은 청계천에서 나가지 않는다고 버티다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주한 상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동대문운동장이 공원으로 바뀌면서 생계 터전이 흔들리는 상황을 맛보고 있다. DDP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 앞에 밀려다니던 이들은 결국 공권력과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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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 보존 계획이 너무 늦게 제시돼 빈축을 사고 있다. 사진=서민 애환이 담겨 있던 피맛골> |
◆피맛골 보존 나선 서울시, '만시지탄'
서울시가 종로 피맛골 보존에 나서면서, 뒷북 행정 논란을 낳고 있다.
서울시는 10월 19일 종로 구도심의 명물인 피맛골의 원형 보전에 대한 어젠다를 제시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방식이 진행 중인 곳을 제외한 피맛골은 철거하지 않고 원형을 보존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피맛골은 조선 시대 고관대작들의 행찻길을 피해 서민들이 좁은 길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공간. 광복 이후에는 선술집과 식당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서울시민의 애환이 담긴 공간으로 이름이 높았다.
서울시에 내놓은 안에 따르면, 전체 길이 3.3km인 피맛골 중 이미 재건축이 끝났거나 추진 중인 청진구역과 공평구역 0.9km를 제외한 2.2km는 재개발 구간으로 지정돼 원형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종로2∼3가와 종묘∼종로7가, 돈화문로 등 3곳 등을 그 대상으로 하고 내년에 구체적 정비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피맛골 파괴 문제는 오세훈 현 시장만의 책임은 아니다. 피맛골 재개발은 현 시장 취임 이전인 2001년, 이명박 전 시장 시대에 이미 사업이 인가되면서 본격 추진된 이후 원형 파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라도 원형을 보존할 길이 마련됐으니 다행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하지만, 오 시장이 지금처럼 협의 계획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에서 너무 늦게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 또한 나오고 있다. 철거 후 재건축이 예정된 지역에 대해서도 기존의 골목길을 최대한 살리도록 건축주와 협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력이 충분했지만 의지가 없어 그간 방치했던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이미 다시 지어진 건물이 주변 옛 건물과 어울리며 정취를 되찾을 수 있도록 최소한 골목길에 맞닿은 부분에는 새로운 설계를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낭비라는 지적 또한 따른다.
◆2008년 서울시청 본관 철거 논란, '문화재委과 맞짱뜨는 오세훈 시장'
2008년에는 아예 서울시가 문화재 보호 문제를 놓고 유관부처와 알력 시비를 빚으며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서울시와 문화재 당국이 서울시청 본관 건물을 해체·복원하는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인 것. 서울시는 문화재위원회가 태평홀을 포함하는 시청 청사 본관을 사적으로 가지정했음에도 본관 건물 보호 문제와 인근 신청사 공사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물론 서울시로서는 문화재 당국의 오락가락 행정이 내심 불만이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2002년 서울시청 본관의 보존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등록문화재' 등재에서 탈락했지만, 1년 만인 2003년 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고,또 5년 만에 사적으로 가지정되는 등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
실제로 이같은 서울시의 불편한 심기는 2008년 당시 본관 건물에 대한 공사를 중단하지만 인근에서 진행 중인 신청사 건립 공사 만큼은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당시 서울시의 이런 방침은 '특정 건물을 사적으로 지정하면 반경 100m 이내에서는 모든 건축행위를 중단한다'는 문화재보호법 관련 규정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한편 이후 공사는 서울시의 의욕적 추진 아래 착착 진행, 현재 서울시청 본관은 파사드(건물 전체의 인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정면부)와 중앙홀만 남긴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은 마치 오랜 역사를 가진 스카라극장이 문화재 지정을 피하기 위해(개발 이익 등 문제로) 전격 해체되는 비극을 맞이한 것과 비견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경희궁 욕 보인 '프랜스포머 가건물'?
한편 서울시는 지난 봄 프라다 재단과 손잡고 '프라다 프랜스포머 전시회'를 개최했다가 문화재 경시 풍조라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그것도 600년 서울의 유구한 역사를 안고있는 경희궁 앞마당에 독특한 천막구조의 파빌리온이 지난 봄 선보였다. 4월 25일 개관하고, 6월 25일에 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이 건물은 바로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 Seoul,Korea)'다.
임시 건축물임에도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 등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그림자도 만만찮았다. 행사 이후 철골 처리 문제로 프라다가 빈축을 샀다. 아울러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경희궁 현상변경 허가도 편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프라다와 함께 행사를 기획한 서울시는 도의적 면에서 공동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세계적 명품 업체와 공동행사를 치른다는 효과를 너무 크게 보고 사후 관리나 더 중요한 가치인 문화재 보호라는 면에 잠시 소홀한 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으면서 '포스트 오세훈 서울시'의 문화 정책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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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광화문광장> |
◆광화문 광장-육조거리 부활 대신 꽃동산 세웠나?
2007년 12월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설계안을 발표할 때 강조한 '육조(六曹)거리' 부활은 이번 광화문광장 개장에서 결국 없던 일처럼 돼 버렸다. 금년에 선보인 광화문광장에서 육조거리 관련 아이템은 광장 한쪽 바닥에 26×21m로 육조 거리 영역을 새겨넣은 정도. 결국 길이 162m, 폭 17.5m 규모의 꽃밭이 전부인 셈이다. 광화문에 육조거리를 재현하려던 당초 구상이 꽃으로 뒤덮여 버린 가운데, 이는 놀이동산(테마파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오세훈 서울시'가 각종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 많은 문제점이 노정된 것은 오 시장과 서울시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많은 부분에 개선을 꾀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 시장의 잔여임기 동안 이같은 문제가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을지, 노력과 성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시에서 알려왔습니다]
위 보도와 관련, 서울시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의 매력을 알리고자 '프라다 트랜스포머 전시회'의 유치에 성공해 패션·문화·예술 분야의 경쟁력 향상과 관광객 유치에 크게 기여했으며, 서울시 문화정책 중 문화재 관리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또한 동대문 운동장이 헐리면서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에 입점해 있던 점포 상인들이 이전할 수 있도록 신설동(옛 숭인여중 부지)에 새롭게 "서울풍물시장"을 조성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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