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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CEO·이사회 분리’ 도저히 불가능?

사외이사 권한강화 검토에 은행 긴장…대안 여부 관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1.11 09:52:48

[프라임경제] 최근 은행 이사회 제도의 독립성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었다. 금융당국이 10년 만에 금융권 사외이사제도 손질을 기본으로 해 이사회 운영의 기본틀을 뒤집을 논의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3일. 모 세미나에 발표자로 나선 금융연구원 이병윤 연구위원은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을 경우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내놓으며 은행계를 긴장시켰다. 관행상 금융사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곳이 많은데, 이 경우 경영진 견제라는 이사회 존재 목적이 무력화된다는 점을 짚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나 가장 중요한 지배구조로서 기능하는 것은 상법에서 정해진 대로 이사회다. 한국외국어대 김세호 박사는 논문에서 “특히 기업이 상장돼 소유구조가 분산될 경우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다. 특히 은행의 경우 은행지배구조를 제대로 작동시키도록 하는 것은 이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회의 대부분이 경영진으로 구성되고 사외이사도 그들을 임명하는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이사회는 다시 대부분의 의사결정에서 금융당국과 밀접한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행의 경우 일반기업보다 사외이사 비율 등에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지만, 이것이 곧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지적한 바 있다(기업지배구조 변화가 경영실적제고에 미치는 효과, 한국외국어대 박사학위 논문, 2007년 2월). 

금융연구원 이시연 연구위원의 은행 이사회의 독립 필요성 지적은 더 날카롭다. 이 연구위원은 이미 이번 11월 세미나에 앞서 지난 6월 “은행의 경우 소유규제 등으로 인해 실질적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영진이 실질적 지배주주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은 부채비율이 매우 높으며 예금주 등의 채권자가 은행의 자금 조달에 있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 외에도 은행이 갖는 공공성과 공적 상정망의 존재에 의해 정부와 납세자 또한 잠재적 이해 당사자로 포함될 수 있어 은행은 일반 기업보다 훨씬 폭넓은 이해당사자와 연결되어 있다”면서 은행 이사회가 은행이라는 준공공재가 최소한의 독립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기능해야 함을 강조하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사진=경영진과 이사회간의 인적 혼재로 인하여 사실상 은행의사 결정에서 이사회는 단순한 통과의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사회와 CEO 혼재 상황

하지만 은행업을 주도하는 4대 금융지주들을 살펴보면 이 같은 이론적 지적과는 괴리가 있어 문제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때문에 이달 초에 나온 이사회 제도의 개편에 관한 문제제기가 큰 폭발력을 가질 것임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현재 하나금융지주·신한지주·우리금융 등에서 경영진, 그중에서도 최고책임자(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KB금융만 양자를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이사회 의장직을 겸임하는 상황에서 만일 이번 문제제기가 실제로 시한폭탄의 작동으로 현실화되면, 이들의 행보는 물론 주요 은행권의 인사 폭풍 등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된다.

◆사외이사 강화 추진도 논점

사외이사 관련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선 논란이 되는 대목은 인재풀 도입 부분이다. 금융연구원이 은행권 전·현직 사외이사 36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사외이사로 추천한 인물로 경영진(36.1%), 정부 및 금융당국 인사(19.4%), 주요 주주(16%) 등을 꼽았다는 것이다. 그 만큼 경영진으로부터 사외이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 방안을 간접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그 대안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 것이 바로 인재풀 제도다.

사외이사 다년 임기제와 총 임기 상한제도 대안으로 떠올랐다. 사외이사의 임기가 너무 짧으면 전문성이 떨어지고, 너무 길면 경영진과 유착 내지 자리에 집착하는 폐단이 생겨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절충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위원의 발제문은 “최초 임기 2~3년을 보장하고 총 재직기간을 5~6년으로

   
  <사진=KB금융 이사회는 사외이사 권한이 비교적 잘 보장되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제한하는 사외이사 임기제가 필요하다”는 안을 제시했다. 현재 은행권의 사외이사 임기보다 확실히 장기간이다. 보통 1년의 임기를 기한으로 하고 있고, KB금융의 사외이사 임기가 3년임을 감안하면 이는 확실히 파격적인 연장이라는 지적이다.

◆美은행도 ‘사외이사 역할’ 고민 흔적

금융연구원 차백인 연구위원이 이미 2001년에 “이사회와 경영진의 역할 구분, 정부소유 기관 경영진에 대한 평가를 위한 경영개선협약 체결 등을 통해 책임경영체제 도입을 위한 각종 제도적 개선이 진행 중”(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성과와 향후 과제-금융부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는 것처럼, 이 이사회과 경영진의 분리 문제는 오랜 시간 한국 은행계의 화두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직도 경영진과 이사회가 혼재돼 있는 상황은 극복되지 못하고 제왕적 금융기관 운영이라는 오명을 여전히 남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외에서도 이사회와 경영진의 분리를 하는 것은 일반적 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보통 유럽식 은행 경영에서는 이사회와 경영진을 분리하는 추세이고 미국식 경영방식으로는 양자를 혼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영미식과 유럽식(대륙계)의 운영방식 차이쯤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나, 우리나라 은행계가 밀접한 영향을 받는 미국계 은행기관에서는 경영진의 이사회 겸임을 당연시한다고 일반화해서도 곤란하다.

우선 영미식 금융 시스템이 이미 2008년 국제금융위기에서 완전무결한 시스템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데다, 미국 은행권에서도 이사회의 기능 강화와 독립성 보장을 위한 노력이 적잖게 이뤄진 실례가 있기 때문이다.

트래블러스그룹과 합병을 선언한 씨티코프는(이후 씨티그룹이 됐음) 1998년 합병 전에 모두 17명의 이사를 둔 바 있다. 이중 상임이사는 6명으로 전체 이사의 3분의 1 수준이다.

씨티코프는 감사위원회, 이사선임위원회, 자회사 및 자본위원회, 자문위원회, 운영위원회, 인사위원회, 공공정책위원회 등 7개의 위원회를 이사회 산하에 뒀으며, 운영위원회(Executive Com―mittee)는 이사회를 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회장이 직접 위원장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이사회 회의 중간에 요구되는 긴급한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을 이사회를 대신해 수행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은행의 경영진 권한이 센 보통 미국식으로 볼 여지가 많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감사위원회(Audit Committee)는 전원이 외부, 즉 사외이사로 구성됐다. 자문위원회(Consulting Com―mittee)도 씨티코프 이사 중 씨티은행의 이사가 아닌 사람들로 구성됐던 점이 특이점으로 꼽을 만하다. 아울러 공공정책위원회(Public Issues Committee)도 대표적인 사외이사 몫으로 분류됐다.

대표적 상업은행(소매은행)인 BOA(Bank of America)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2인, 사외이사 12인, 명예이사 2인 등 총 16인의 이사로 구성됐다. BOA의 경우 이사회 내부의 소위원회는 경영위원회, 경영진 인사·보수위원회, 추천위원회, 공공정책위원회, 감사위원회 등 5개로 구성된다. 소위원회 중에서 사내이사가 참여하는 것은 경영위원회와 공공정책위원회에 불과하며, 위원장은 모두 사외이사가 맡았다.

사외이사는 제조업이나 공기업의 전·현직 대표이사, BOA 전직 대표이사, 금융기관 대표이사, 학교 총장 및 학장, 변호사, 컨설턴트 등 해당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로 구성 되어 있다. 또한 BOA 전직 대표이사와 사장을 명예이사로 위촉하여 은행경영상 중요한 문 제에 대한 자문을 주기능으로 지정했다.

◆전문성 핑계로 사외이사 제한 안 돼 

물론 사외이사에 대한 업무 참여폭을 넓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반감이 없지 않다. 특히 은행 업무의 특수성상 금융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일천한 사외이사 비중을 높이고 또 이들이 이사회를 주도하도록 하면 곤란하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실제로 OECD의 보고서는 한 연구를 인용해 미국의 대형 은행들에서 이사회 구성원 대다수, 특히 사외이사들이 충분한 금융관련 경험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며, 또한 이들이 전문성이 요구되는 감사위원회나 리스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이사회와 리스크위원회 구성의 문제점이 심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2009년에 나온 ‘The Corporate Governance Lessons from the Financeial Crisis’ 같은 보고서가 이런 내용을 담은 것으로 금융연구원 이시연 연구위원은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가 있더라도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외이사 풀 제도를 도입하면서 인적자원에게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최저자격으로 부여하는 안이 가능할 수 있다. 이른바 Positive List라는 제도다(이 제안에 긍정적인 학자로는, 금융연구원 이시연 연구위원이 있음).

이렇게 은행 이사회에 사외이사 비율 확대, 궁극적으로는 은행에서만 잔뼈가 굵은 내부인사인 은행 경영진과 이사회를 분리하는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마찰음이 있고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영미권과 유럽권을 막론하고 이같은 고민이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고, 각종 보완책 역시 제기되고 있는 점은 눈길을 끌고 있다. 수술을 은행계 반발을 도외시하고 강행하는 것도 문제지만, 여러 가지 대안이 싹트고 있는 상황에서 관례 고수를 외치는 것 역시 설득력이 점차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적어도 이 문제를 찬반양론이 서로 장기간 논의해 볼 여지는 마련된 셈이라 향후 이 논의 과정에서 Positive List 같은 신선한 보완책이 얼마나 더 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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