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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근의 밥 한 끼 하시죠 ⑧] 우리는 식사를 하는가, 끼니를 해결하는가

 

김봉근 잇더컴퍼니 대표 | press@newsprime.co.kr | 2026.11.02 10:37:10
[프라임경제] 얼마 전 며칠 병원 신세를 질 일이 있었다. 끼니때마다 밥이 나왔지만, 솔직히 맛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간은 옅고 영양은 꼼꼼히 계산된 상. 몸에 좋은 밥인 줄은 알겠는데, 먹는 내내 식사를 한다기보다 처방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지금 나는 밥을 먹는 걸까, 그저 끼니를 해결하는 걸까.

병원 밖이라고 크게 다를까. 요즘 많은 이들의 밥상이 그렇다. 탄수화물 몇 그램, 단백질 몇 그램을 따지고, 혈당을 생각해 흰쌀밥을 덜어 낸다. 건강을 위한 노력이니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숫자로 관리되는 밥은 어느새 맛보다 수치가 앞서는, 끼니를 해결하는 일에 가까워진다. 밥이 즐기는 것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바뀐 셈이다.

먹는 모습도 달라졌다. 끼니를 앱에 기록하고, 한 손에 쥔 채 화면을 보며 먹고, 서둘러 넘긴다. 밥을 앞에 두고도 정작 밥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먹는 일이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일과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재료로 지은 밥이라도 맛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끼니를 해결하는 데는 음미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밥만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효율로 바꿔 왔고, 밥도 그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더 빨리, 더 간편하게, 더 정확하게. 그 사이 밥은 '얼마나 잘 먹었나'가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했나'의 문제가 되었다. 끼니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먹는 일에까지 효율을 들이댄 결과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밥이 작아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밥때에 누가 찾아오면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그만이었다. 밥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었고, 상 앞에 둘러앉는 일 자체가 하루의 한 장면이었다. 지금은 대개 밖에서 사 먹고, 각자 계산하고, 혼자 먹는다. 나누던 밥이 사 먹는 밥이 되는 사이, 밥에는 가격표가 붙었다.

밥에서 빠진 것은 나눔만이 아니다. 함께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 자리에서 밥은 점점 혼자 빠르게 때우는 것이 됐다. 빠르게 때우는 밥은 맛을 따질 겨를이 없다. 나눔이 빠지고 맛이 빠지면, 밥에 남는 것은 영양이라는 기능뿐이다. 그 끝이 바로, 해결해야 할 끼니다. 우리는 밥이라는 말에서 함께도 덜어 내고 맛도 덜어 내며, 어느새 해치워야 할 끼니만 남긴 셈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우리는 식사를 하는가, 끼니를 해결하는가. 그리고 하나 더. 우리가 맛있다고 할 때의 그 맛은 과연 진짜 맛일까. 혀가 어느새 강한 양념과 첨가물이 만든 자극을 맛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아닐까. 자극이 빠지면 밋밋하다 느끼고, 밋밋하면 맛없다 여긴다. 병원밥이 맛없게 느껴진 데는 내 혀가 이미 자극에 길들여진 탓도 있었을 것이다.

자극은 자극을 부른다. 강한 맛에 익숙해질수록 혀는 더 강한 맛을 찾고, 그만큼 본래의 맛은 심심하게만 느껴진다. 어릴 적 먹던 밥이 유난히 맛있게 기억되는 것은, 특별한 양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때 우리 입이 아직 자극에 덜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맛의 기준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자극을 빼고도 맛을 살리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찰음식이 그 오랜 증거다. 강한 양념을 물리고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내는 이 음식은, 화려하지 않아도 깊다. 

좋은 재료를 제철에, 과하지 않게 다루면 맛은 더하지 않아도 배어 나온다. 덜어 낼수록 또렷해지는 맛이 있다는 것을, 이 음식은 수백 년 동안 말해 왔다. 맛이란 보태는 것이 아니라 끌어내는 것이라는, 오래된 지혜다.

요즘 솥밥이 다시 주목받는 것도 비슷한 흐름으로 읽힌다. 갓 지은 밥에 제철 재료를 얹은 솥밥은 요란한 양념 없이도 밥 그 자체의 맛을 보여 준다. 사람들이 그 담백함에 눈을 돌린다는 것은, 자극에 지친 입맛이 본래의 맛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밥을 되찾는다는 것은 결국 두 가지를 되찾는 일이다. 하나는 맛이다. 숫자로 해결하는 끼니가 아니라, 혀로 느끼고 마음으로 음미하는 식사로 돌아가는 것. 또 하나는 함께다. 맛있는 밥은 혼자 먹기 아깝다. 좋은 한 끼 앞에서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고, 숟가락 하나 더 놓고 싶어진다. 어쩌면 맛을 되찾는 일이 사라진 나눔을 되찾는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오늘 한 끼는 해결해야 할 끼니가 아니라 식사이기를 바란다. 숫자가 아니라 맛으로 채운, 혼자라면 나를 위한, 곁에 누가 있다면 함께 나누는 한 끼이기를.

다음 끼니에 뵙겠습니다.

- ㈜ 잇더컴퍼니 대표
- 제주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
- 서울대학교 푸드테크 최고책임자과정
  수료 및 월드푸드테크협의회 정회원
전) 매일유업 조리식품 브랜드매니저
전) WK 마케팅그룹 브랜드컨설팅 컨설턴트
전) 한화 S&C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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