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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차체를 다시 짠 제네시스 GV90, 시작은 B필러 숨기기

듀얼 모션 힌지·히든 롤케이지부터 eMP·루프 에어백·NVH까지…플래그십 기준 맞춰 재설계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6.10.29 09:15:30
[프라임경제] 제네시스 GV90 개발진이 처음부터 차체를 새로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출발점은 넓게 열린 실내 공간이었다. 프런트 도어와 리어 도어 사이 B필러를 보이지 않게 만들고 두 도어를 독립적으로 열겠다는 구상이 도어와 차체 구조를 바꿨다. 이후 플랫폼과 안전 시스템, 디자인 공법, 주행성능과 정숙성까지 기존 설계를 다시 검토하는 작업으로 번졌다.

제네시스는 지난 28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GV90 테크 데이(GV90 Tech Day)'를 열고 초대형 플래그십 전동화 SUV GV90의 개발 과정과 핵심 기술을 공개했다. 연구개발·제조 실무 책임자 12명이 바디 구조와 디자인, 플랫폼·안전, 주행·정숙성 개발 과정을 직접 설명했다.

'기술로 완성한, 새로운 장인 정신(Engineered Craftsmanship).'

행사를 관통한 문구다. 손으로 다듬는 전통적인 장인정신보다는 원하는 경험과 디자인을 정한 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설계와 제조 공법을 다시 손보는 개발 방식을 가리킨다. GV90 개발 과정에서 그 성격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곳이 '네오룬 아치 게이트'다.

◆디자인 요구가 바꾼 구조와 공법

GV90 네오룬은 B필러를 도어 안으로 숨기고 앞뒤 도어를 독립적으로 여는 코치도어 구조를 채택했다. 최동욱 제네시스클로저설계팀장에 따르면 개발 초기에는 구조적으로 유리한 대향형 슬라이딩 도어도 검토했지만, MPV나 상용차 이미지가 강하다는 판단에 따라 스윙 방식의 독립 개폐 코치도어를 택했다. 공간과 플래그십 이미지를 함께 가져가겠다는 선택이 더 어려운 구조 설계로 이어졌다.

GV90 테크 데이에 전시된 GV90 네오룬. ⓒ 제네시스 브랜드


그 선택부터 기존 부품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연이어 생겼다. 리어 도어를 바깥쪽으로 이동시킨 뒤 회전시키는 '듀얼 모션 힌지'를 새로 개발했고, 70㎏이 넘는 리어 도어를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공작기계와 산업용 로봇에 사용하는 리니어 모션 가이드까지 끌어왔다.

남진우 제네시스클로저설계팀 파트장은 "스윙과 슬라이딩을 하나로 묶어 자동으로 구현한 사례는 어디에도 없었다"며 "메커니즘의 기본부터 다시 검토하기 위해 담당자와 대학교 기구학 교재를 펴봤고, 쓸 만한 구조가 있을까 해서 가구 박람회까지 갔다"고 설명했다. 리니어 모션 가이드는 1000분의 3㎜ 수준의 공차를 갖춰 무거운 리어 도어가 슬라이딩하는 동안에도 흔들림을 억제할 수 있었다.

B필러가 보이지 않게 되면서 그동안 B필러가 맡던 구조적 역할도 다른 곳으로 나눠야 했다. 도어 상·하단에는 각각 래치를 배치하고 두 래치를 동시에 해제하거나 잠그는 별도 제어 기술을 만들었다. 차체에는 A필러와 루프 주변 골격을 따라 고강도 스틸 튜브를 넣은 '히든 롤케이지'를 적용했고, 도어 안의 초고강도 듀얼 스틸 빔은 문이 닫힌 상태에서 하중을 전달하는 구조물 역할까지 맡는다.

채석준 제네시스차체설계팀 파트장은 개발 초기 천장에 큰 하중이 들어올 때 상단 래치 연결부가 이탈하는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래치 주변을 보강해 하중이 도어의 듀얼 스틸 빔으로 전달되도록 수정했지만 T카 단계에서 진행한 첫 천장 강도 시험도 목표치에 못 미쳤다.

GV90 테크 데이에 전시된 GV90 네오룬. ⓒ 제네시스 브랜드


채 파트장은 "T카 단계에서 천장 강도를 시험한 첫 결과는 실패였고, 해석이 맞지 않았다"며 "해석과 수정을 반복한 결과 두 번째 T카에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완성된 GV90 네오룬은 연구소 자체 시험에서 14톤포스(tf) 이상의 천장 강도를 확보했다.

B필러리스 구조에 따른 불확실성은 검증량 증가로 이어졌다. 안세진 제네시스프로젝트2실 상무에 따르면 개발 각 단계에서 통상적인 경우보다 약 3배 많은 평가가 진행됐다. 원리평가 단계부터 B필러의 역할을 도어로 옮겼을 때 달라지는 하중 전달 경로를 분석했고 다양한 실사고 상황을 가정한 충돌평가까지 범위를 넓혔다.

◆플래그십 기준이 바꾼 공간과 주행

차체에서 나타난 이런 개발 방식은 플래그십 전용 전동화 플랫폼 eMP(Electric Mobility Prime)에서도 반복됐다. 제네시스가 원한 것은 1열부터 2열까지 단차 없이 이어지는 바닥이었다. 기존에 바닥과 대시보드에 자리하던 통합 충전 제어 장치와 공조 장치를 전방 PE룸으로 옮기고 2열 시트 레일까지 카펫 아래 차체 안으로 숨겼다.

후방에서는 공간과 주행성능을 동시에 확보해야 했다. 고출력 모터와 서스펜션, 후륜 조향 시스템을 넣으면서 2열 공간도 넓혀야 했기 때문이다. 김동환 제네시스차량아키텍처패키지개발팀 파트장은 후방을 "실내공간과 주행성능이 가장 복잡하게 만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GV90 테크 데이 전시 공간. ⓒ 제네시스 브랜드


전동화와 아키텍처 부문은 수개월간 배치를 조정한 끝에 L형 모터를 뒤쪽 위로 기울이고 크로스멤버를 상하로 나눈 '3차원 PE 모듈 구조'를 만들었다. 성능을 위해 공간을 줄이는 대신 부품의 위치 자체를 바꾼 셈이다.

대형 전기차 특유의 무게는 충돌 안전에서도 기존 접근법을 바꿨다. GV90는 차체 구조물 상당 부분에 알루미늄을 적용해 무게를 줄이는 동시에 충돌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까지 설계 대상으로 삼았다. 스몰오버랩 충돌에서는 차량을 옆으로 밀어내고, 정면 고속 충돌에서는 뒤로 밀린 서브프레임과 PE 시스템이 배터리 아래로 지나가도록 하중 경로를 구성했다.

박지웅 제네시스바디아키텍처개발팀장은 3톤이 넘는 차량에서 기존처럼 탑승공간을 보강하는 접근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에 충돌 에너지를 의도한 방향으로 분산시키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고, 스몰오버랩 충돌과 관련해서만 수백 차례 해석과 수십 차례 시스템·완성차 평가를 진행했다.

차체가 지켜낸 공간 안에는 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이 들어갔다. 전복 상황에서 루프 글라스 쪽으로 탑승자가 이탈하거나 머리가 천장에 부딪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장치다.

GV90 테크 데이 전시 공간. ⓒ 제네시스 브랜드


손유지 승객안전시스템설계팀 책임연구원은 실제 사고 데이터를 검토하면서 전복 사고가 발생 빈도에 비해 중상 위험이 높다는 데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개발팀은 기존 90도 기울임 방식보다 실제 사고에 가까운 전복 시험을 별도로 마련했고 실차 40대, 에어백 단품 300회 이상을 평가했다. 손 책임연구원은 "평가 등급이 아니라 고객이 겪을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개발 방식은 외관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의 달항아리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게 하겠다는 디자인 요구가 램프 제조와 도장 공정을 바꿨다. 헤드램프 바깥 면에 차체색을 입힌 뒤 빛이 나오는 부분만 레이저로 깎아내는 '컷리스(Cut-less)' 공법을 만들고, 16종 외장 컬러마다 레이저 출력과 주파수, 가공 속도를 별도로 조정했다. 마이크로 렌즈 어레이(Micro Lens Array, MLA) 기술도 기존 G90보다 램프 상하 크기를 약 20% 줄이면서 배광 성능을 높였다.

울산 EV공장에는 컬러 매칭 전용 공간과 AI 비전 검사 설비를 마련하고 색감을 컬러당 48차례 조정했다. 퍼스트 에디션의 투톤 외장은 세 차례 도료와 코팅층을 입혀 색 경계의 단차를 줄였다. 리얼 우드와 리얼 스톤, 울 캐시미어 역시 소재별 가공 방식과 품질 기준을 별도로 마련해 질감과 내구성을 함께 확보했다.

GV90의 무게와 크기는 주행 개발에서도 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제네시스는 급가속 때 차체 앞부분이 들리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 안티 리프트 성능을 경쟁차 대비 19.5% 높였고 쇽업소버 리바운드 스프링 강성도 30% 강화했다.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과 듀얼 밸브 전자제어 쇽업소버, 전·후륜의 좌우 구동력을 각각 제어하는 듀얼 e-LSD도 적용했다.

GV90 테크 데이에 전시된 BIW 및 플랫폼 전시물. ⓒ 제네시스 브랜드


정성기 제네시스시험1실장은 GV90의 주행 개발 방향을 "편안한 승차감과 바디의 정제되고 플랫한 거동, 다이내믹한 핸들링 성능을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톤이 넘는 초대형 SUV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제네시스의 '역동적인 우아함'을 차의 움직임에서도 느끼도록 만드는 게 목표였다.

전동화 시스템에서는 출력과 효율을 높인 변화가 새로운 NVH 과제를 만들었다. 전·후륜 모터에 2스테이지 인버터를 적용한 뒤 모터 소음이 커지자 하드웨어 대신 제어 방식에서 해법을 찾았다.

하태원 제네시스전동화소음진동시험팀 파트장은 "하드웨어를 바꾸지 않고 이 문제를 풀 방법을 찾았고, 소프트웨어 제어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모터 입력 전류에 소음 유발 성분과 반대 위상의 전류를 넣어 서로 상쇄시키면서 가진력을 최대 40% 줄였다. 구조 설계와 소프트웨어 제어, 흡차음재를 적용해 동력원에서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도 낮췄다.

실내 정숙성을 높이는 과정에서는 생산 순서까지 바뀌었다. 모든 유리에 차음 유리를 적용하고 전·후석 도어 글라스의 차음 필름을 두껍게 만들었으며, 차량 배선보다 흡차음재를 앞서 장착해 적용 면적을 넓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강풍 조건을 반복 검증했고 독일 아우토반에서는 시속 240㎞ 고속주행까지 진행해 윈드노이즈를 초기 목표보다 2dB 낮췄다.

GV90 테크 데이에서 발표하는 제네시스개발담당 허광훈 상무. ⓒ 제네시스 브랜드


이준수 제네시스소음진동시험팀 책임연구원은 차가 조용해질수록 기존에는 묻혀 있던 다른 소리가 더 두드러지는 문제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잔향실과 투과음 평가를 거쳐 승객 간 대화 명료도까지 확인한 것도 실제 탑승자가 느끼는 정숙성을 함께 다루기 위해서였다.

테크데이에서 공개된 기술을 한데 놓으면 'Engineered Craftsmanship'이라는 표현의 성격도 분명해진다. B필러를 숨기기 위해 힌지와 래치, 차체의 하중 전달 구조를 다시 손댔고 평평한 바닥을 위해 전장 부품과 섀시 배치를 옮겼다. 달항아리 같은 외관은 램프와 도장 제조법을 바꿨고, 주행과 정숙성에서는 3톤이 넘는 차체를 다루기 위해 구조와 제어를 다시 조율했다.

허광훈 제네시스개발담당 상무는 "엔지니어링은 흔히 타협의 기술이라고 하지만 GV90는 그 순서를 뒤집어 고객을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준부터 먼저 세우고 이를 끝까지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B필러를 숨기겠다는 요구에서 시작된 재설계가 플랫폼과 안전, 램프·도장, 주행 제어와 NVH까지 번지면서 제네시스에는 새로운 설계·제조 경험도 쌓였다. 이번 테크데이에서 말한 '새로운 장인정신'은 눈에 보이는 장식보다 원하는 기준을 양산차에 구현하기 위해 기존의 설계와 제조 방식을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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