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005380)의 국내 수소전기차 누적 판매량이 지난 9월 5만대를 넘어섰다. 2018년 넥쏘 출시 이후 8년 만이다. 2020년 1만대였던 누적 판매는 2022년 2만대, 2023년 3만대를 지나 올해 5만262대까지 늘었다. 수소차가 국내 도로에 등장한 시간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볼 숫자는 아니다.
5만대라는 숫자 뒤에는 현대차가 오랫동안 쌓아온 수소전기차 기술이 있다. 1998년 수소연료전지 연구를 시작한 뒤 2013년 투싼 ix FCEV를 양산했고, 넥쏘와 대형 수소트럭 엑시언트까지 제품군을 넓혔다. 지난해 나온 디 올 뉴 넥쏘는 1회 충전 주행거리를 기존 609㎞에서 최대 720㎞로 끌어올렸다. 2026년 상반기 글로벌 수소전기차 판매에서 현대차가 차지한 비중도 약 70%다.
그런데 5만대 시대라는 말에 비해 수소차는 아직 일상에서 익숙한 선택지가 아니다. 차를 살 때 가격이나 디자인, 성능에 앞서 충전소 위치부터 따져야 하는 자동차라는 사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현대차가 공개한 수치가 그 간극을 잘 보여준다. 넥쏘 구매 고객의 86%는 거주지 반경 평균 7.5㎞ 안에 수소충전소를 두고 있다. 충전 편의성이 확보된 지역에서 실제 구매가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숫자다.
수소차 시장에서는 차량이 팔린 뒤 충전소가 따라오는 일반적인 수요 확대 과정과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가까운 곳에 충전소가 있어야 차량 구매를 고려할 수 있고, 차량이 충분히 보급돼야 충전소도 운영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충전망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수요가 커지기 어렵고, 수요가 적으니 다시 충전소 투자가 쉽지 않은 구조로 이어진다.
전국 충전망이 당초 계획에 미치지 못한 것도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정부는 과거 2022년까지 전국 수소충전소를 310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2026년 현재 운영되는 충전소는 250곳 남짓이다. 부지 확보와 운영 사업성 문제가 겹치면서 계획했던 속도로 늘지 못했다.
차량 경쟁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넥쏘 핵심 부품 국산화율은 90%를 넘었고 60여개 협력사가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 수소사업체는 2024년 기준 약 3000개, 종사자는 약 3만7000명이다. 완성차와 부품 공급망이 오랜 시간 성장했지만 소비자가 수소차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은 그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다.
차량 보급을 지원하는 예산에서도 비슷한 간극이 생긴다. 올해 수소전기승용차 국비는 6000대분이 편성됐지만 9월 말 지방비가 확보된 물량은 5093대, 84.9%다. 수소버스 등 상용차는 차이가 더 크다. 국비는 1800대분을 확보했지만 지방비 매칭 물량은 약 1270대, 70.6%에 그쳤다.
정부가 보조금을 마련해도 지자체가 대응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실제 구매 단계에서는 쓸 수 없는 돈이 된다.
더 큰 문제는 낮아진 집행률이 다음해 예산 규모까지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7년 수소전기차 보조금 예산안은 집행률 부진 등을 이유로 5762억원에서 4457억원으로 23% 줄었다. 지방비 부족으로 집행하지 못한 예산까지 수요 부족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지원 여력이 다시 줄어드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
상용차는 이 구조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축이다. 버스와 트럭은 승용차보다 주행거리가 길고 연료 사용량도 많아 일정한 수소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해진 노선이나 물류 구간을 반복해서 운행하는 만큼 충전 거점을 중심으로 수요를 모으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충전소 사업자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이용 물량은 운영 경제성을 좌우한다. 상용차가 꾸준한 수소 수요를 만들면 충전소 운영 여건이 나아지고, 충전망이 늘어나면 승용 수소차를 선택할 수 있는 지역도 넓어질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지방비 매칭률은 승용차보다 상용차에서 더 낮았다. 수소차 보급 정책은 차량 대수와 함께 충전망을 유지할 수 있는 수요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5만대 판매는 그래서 두 가지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20년 넘게 이어진 기술 투자와 차량 개발이 만들어낸 성과이자, 수소차 시장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무엇이 부족한지도 드러낸 숫자다. 차는 1회 충전으로 700㎞ 넘게 달릴 수준까지 발전했지만 전국 충전소는 과거 세웠던 목표에도 아직 닿지 못했다.
5만대 이후에는 차량 숫자보다 시장이 스스로 커질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해진다. 충전소가 있는 지역에서만 수요가 생기고, 지방비 확보 여부에 따라 보급량이 달라지며, 집행률 부진이 다음해 예산 감액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반복되면 수소차를 선택할 수 있는 지역과 소비자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수소차는 5만대가 팔렸지만 여전히 사는 곳에 따라 접근성이 크게 달라진다. 집 가까이에 충전소가 있어야 하고, 지역에서 보조금이 실제 집행돼야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다. 상용차 보급이 늘어 안정적인 수소 수요까지 만들어져야 충전망 확충에도 힘이 붙는다. 현대차가 5만대 판매로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다음 5만대를 만드는 조건은 수소차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이용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