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대학 선택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보다 얼마나 높은 성적으로 서울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가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졸업 후에는 대기업과 전문직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한다. 연구자와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학회와 세미나, 산업별 포럼과 전문인력 교류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지식과 인적 네트워크 역시 수도권에 축적된다. 지역에도 우수한 인재는 존재하지만 이들이 서로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환경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지역이 잃고 있는 것은 청년 인구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나 토론하고 협력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지적 활력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지식인의 수도권 집중은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이 모인 곳에서는 학술행사와 기업회의, 창업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이는 식당과 카페, 숙박시설과 문화공간의 경제활동으로 이어진다. 반면 지역에서는 전문가를 만나거나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서울로 이동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지역의 지식인조차 지역보다 서울에서 만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결과 지역 상권은 소비 인구뿐 아니라 지적 교류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기회까지 잃을 수 있다. 지역소멸을 단순한 인구감소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람이 줄어드는 것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지역에서 새로운 생각과 사업이 만들어질 기회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종시 행정기능 이전과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방향에 동의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오는 2031년까지 44개 기관, 공무원 정원 기준 9929명을 세종시로 단계적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지역 거점국립대학의 교육·연구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정책 역시 지식과 인재의 기반을 지역으로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기관을 옮기고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만으로 지역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국토연구원이 소개한 전문가 조사에서 균형발전의 핵심가치로 지속가능성을 선택한 응답은 67.5%에 달했다. 세종시 역시 행정기관 이전으로 성장했지만 올해 1분기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27.0%에 이르는 등 상권 활성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제 균형발전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기관과 인구를 분산했느냐보다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이 만들어지고 있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도 인력경영의 관점에서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인재를 확보하고 배치하는 것만으로 조직의 성과가 만들어지지 않듯, 지역에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는 것만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지는 않는다. 국토연구원이 소개한 조사에서 전문가의 60%가 중점 육성이 필요한 공간으로 비수도권 대도시를 선택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 지역 거점을 강화하면서 대학 교수와 연구자, 공공기관 전문가, 기업의 기술인력과 경영자, 청년 창업가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지적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은 지역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공공기관은 연구자와 기업인을 연결해야 한다. 학회와 산업별 세미나도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기관 이전 인원이나 대학 지원액뿐 아니라 공동연구, 산학협력, 전문가 교류와 지역 상권의 연계 성과까지 평가해야 한다.
지역을 살리는 것은 서울의 인구와 기관을 지방으로 나누어 보내는 일만이 아니다. 지역에서도 지적 교류가 일어나고, 그것이 연구와 사업, 일자리와 소비로 이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대학이 있어도 졸업생이 떠나고, 공공기관이 있어도 전문가들이 서울에서만 교류한다면 지역의 미래는 밝아지기 어렵다. 세종시 이전과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건물과 조직의 분산을 넘어 지식인들이 지역에 머물고 연결되는 정책으로 발전해야 한다. 지역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한 사람의 뛰어난 지식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커뮤니티의 힘이다. 국가균형발전의 성패도 기관 이전 규모가 아니라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만남과 협력, 경제적 기회로 평가해야 한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