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부가 한국전력 산하 발전공기업 5개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라는 기대와 함께 재생에너지 확대와 지역균형발전에 역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전력 산하 발전공기업 5개사. ⓒ 프라임경제
공기업의 중복 조직을 줄이고 투자 여력과 정책 집행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현행 전력시장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거대 발전공기업부터 출범시킬 경우 민간 투자와 신산업을 위축시키고 석탄발전 폐지 지역에 또 다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일 국회 기후위기탈탄소경제포럼과 기후솔루션이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에너지전환기 발전공기업,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는 발전공기업 통합을 둘러싼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는 재생에너지 확대와의 충돌 가능성이다. 현재 송배전망을 독점 운영하는 한전이 발전공기업 5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구조에서 발전 5사까지 하나의 거대 공기업으로 통합될 경우 계통 접속과 전력시장 운영에서 통합법인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력망이 포화된 상황에서 통합 공기업의 기존 발전기가 민간 재생에너지보다 계통 접속이나 운전에서 우선권을 갖게 된다면 민간 사업자의 사업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유수 숭실대 교수는 발전 5사가 통합될 경우 통합 공기업이 도매전력 공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지배적 사업자가 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한전이 송배전망을 독점하고 발전공기업 지분까지 보유한 현 구조에서 거대 발전 자회사가 탄생하면 민간 재생에너지와 분산에너지보다 계열 발전소가 계통 접속과 운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세원 기후솔루션 연구원도 재생에너지와 다른 발전원 사이에 계통 접속과 운영 조건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호남지역 164개 변전소에서는 계통 보강이 끝나는 2031년까지 신규 재생에너지 접속이 제한되는 반면 액화천연가스(LNG) 등 대형 발전소에는 사업 허가와 계통 접속이 이뤄진 사례를 제시하며,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공기업 규모만 키울 경우 망 중립성 문제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투자 위축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희성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의장은 제한된 공공재원을 민간 자본이 진입할 수 있는 사업에 직접 투입하기보다 민간사업의 위험과 금융비용을 낮추는 '마중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유연성 자원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해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에너지전환을 앞당기는 데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전력시장의 가격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력 컨설팅사 '천천히 아름다운 생각' 대표는 통합사의 높은 시장점유율이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력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신호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을 경우 ESS 등 새로운 전력산업에 대한 민간 투자 유인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 문제는 더욱 직접적이다. 현재 발전 5사 본사는 진주·보령·태안·부산·울산 등 서로 다른 지역에 위치해 있다. 통합본사를 한 곳에 설치하면 유치 지역에는 인력과 소비, 관련 산업이 집중되지만 나머지 지역은 본사 직원과 협력업체, 상권 등 경제적 기반이 빠져나갈 수 있다.
특히,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일자리와 지방세 감소가 예상되는 지역의 경우 본사 이전까지 겹치면 지역경제에 '이중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중부발전 본사가 위치한 충남 보령시의 문혜경 그린에너지팀장은 토론회에서 본사 이전에 따른 지역경제 악화를 우려했다.
보령시는 중부발전 본사와 협력업체 종사자, 가족 등을 합하면 8000명 이상이 지역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본사 이전은 단순히 지방세 감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과 협력업체 기반, 지역 에너지전환 사업의 인력과 노하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발전 5사를 하나의 통합본사로 모으기보다 기존 발전사를 지역별 에너지전환 거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발전사별 평가 기준을 발전단가나 가동률 중심에서 탄소중립과 계통 유연성 중심으로 전환하고, 각 지역의 여건에 맞춰 해상풍력과 수소 등 새로운 에너지사업을 담당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섯 지역에 분산된 조직과 인력을 한곳으로 모으기보다 기존 인력과 조직을 지역의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균형발전과 정의로운 전환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발전공기업 통합에 앞서 전력시장 구조 자체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2001년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사로 분할한 이후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사실상 중단됐으며, 과도기적 제도로 도입된 CBP(Cost-Based Pool·변동비반영시장)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미래 전력시장의 청사진을 먼저 마련한 뒤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설정하고 발전공기업의 조직과 기능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수 교수는 "조직개편이 시장개혁의 기반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 집중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전력망 확충과 시장구조 개선, 석탄발전 좌초자산 처리, 공기업의 역할 등을 먼저 정한 뒤 조직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아직 통합안을 최종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강경택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력산업정책과장은 '1개사 통합안'이 삼일회계법인의 중간보고에서 권고된 안이라며 아직 정부안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장지배력과 망 중립성, 민간투자 위축 등의 우려를 "유념해서 검토하고 있다"며 "올해 안에는 정부 계획을 확정해 밝히고, 향후 일정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발전 5사 통합은 단순한 조직개편을 넘어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구조와 에너지전환의 방향, 지역의 미래까지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다. 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와 정책 추진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곳으로의 조직 집중이 다른 지역의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민간 에너지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정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결국 '한국발전'의 성공 여부는 몇 개의 회사를 하나로 합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통합 이후 공공과 민간, 수도권과 지방, 기존 발전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설계하는 데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