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답이 뭐야?" 채팅창에 이 여섯 글자를 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초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3초짜리 습관이 한 학기 동안 쌓아야 할 배움을 통째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한 현장 실험으로 드러났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와 헝가리 부다페스트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스쿨(Budapest British International School)이 함께 참여한 연구팀이 2025년 6월 논문으로 발표한 실험이다. 연구팀은 튀르키예의 한 대형 고등학교에서 9·10·11학년 학생 약 1000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대조 실험을 벌였다.
수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고, 한 집단에는 일반 챗지피티와 다를 바 없는 인공지능(AI)을, 다른 집단에는 정답을 곧바로 알려주지 않고 단계별 힌트만 주도록 설계된 AI를 줬다. 나머지 한 집단은 AI 없이 교과서만 보고 문제를 풀었다. 문제 풀이 연습에서 일반 AI를 쓴 집단은 이 AI 없는 집단보다 48%, 힌트형 AI를 쓴 집단은 127%나 성적이 올랐다.
그런데 AI 없이 치른 시험에서는 다른 그림이 나타났다. 일반 AI를 썼던 집단의 성적은 애초에 AI를 쓰지 않았던 집단보다 오히려 17% 더 낮았다. 반면 힌트형 AI를 썼던 집단은 AI 없는 집단과 성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
연구팀이 학생들의 대화 기록을 들여다보니 이유가 드러났다. 일반 AI를 쓴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낸 메시지는 "답이 뭐야"였다. 심지어 그렇게 물어서 받은 답조차 절반 가까이는 틀린 답이었다. 정답률은 51%에 그쳤다. 틀릴 확률이 반이나 되는 지팡이에 학생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몸을 기댔다. 연구팀은 이를 '목발(crutch)'이라 불렀다. 짚고 있을 때는 걷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치워지는 순간 다리는 이미 걷는 법을 잊어버린 뒤였다.
그렇다면 AI 앞에서 학생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목발에 기대는 것뿐일까. 미국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연구팀이 2025년 6월 발표한 논문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물리학 강좌 수강생 194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같은 내용을 한 주는 교실 수업으로, 다음 주는 AI 튜터로 바꿔가며 배우게 했다. 이 AI 튜터는 정답을 곧바로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강의실 수업과 똑같은 순서를 따라 학생을 한 단계씩 이끌었고, 막힌 부분에서는 근거를 갖춘 설명을 들려줬다.
AI 튜터로 배운 학생들의 시험 점수 중앙값은 4.5점으로, 교실에서 배운 학생들의 3.5점보다 높았다. 원래 알던 지식을 기준으로 따진 학습 향상폭도 AI 쪽이 두 배 넘게 컸는데, 우연으로 보기 어려운 차이였다. 걸린 시간도 더 짧았다. 학습에 주어진 시간은 60분이었지만, AI 튜터로 배운 시간의 중앙값은 49분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 몰입감과 학습 의욕을 물었을 때도, AI로 배운 쪽이 더 몰입했고 더 의욕적이었다고 답한 비율이 뚜렷하게 높았다. 같은 기술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두 실험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 연재가 매회 짚어 온 텍스터와 컨텍스터의 차이가 다시 보인다. 목발형 AI 앞에서 학생들은 손쉽게 텍스터의 자리에 섰다. 정답만 받아 적었고, 그 정답이 사라지자 남은 것이 없었다. 반면 단계를 밟게 만드는 AI 앞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컨텍스터의 자리에 섰다. 매번 스스로 생각을 거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텍스터와 컨텍스터를 가른 것은 학생 개개인의 의지나 성실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람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마주한 AI가 허락하는 행동의 폭이 달랐을 뿐이다. 컨텍스터가 되고 싶어도 정답만 내주는 AI 앞에서는 그러기 어렵고, 텍스터로 남고 싶어도 단계를 밟게 만드는 AI 앞에서는 사고를 피하기 어렵다.
이 사실이 알려주는 것은 간단하다. AI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같은 사람도 텍스터가 되기도 하고 컨텍스터가 되기도 한다. 정답만 던져주는 AI는 아무리 성실한 사람도 서서히 텍스터로 만든다.
반대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AI는 게으른 사람마저 컨텍스터 쪽으로 이끈다. 그러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 더 늘어난다. 지금 내가 쓰는 이 AI는 나에게 답을 곧장 건네는가, 아니면 내가 답을 찾아가도록 이끄는가. 그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도구를 고르는 힘도 비로소 우리 손에 남는다.
목발은 다리가 다쳤을 때 잠시 짚는 것이다. 걸을 수 있는데도 습관처럼 짚고 다니면, 다리는 서서히 걷는 법을 잊는다. 오늘 우리가 손에 쥔 AI는 목발인가, 아니면 함께 걷는 법을 가르쳐주는 동행인가. 그 물음이 우리를 텍스터에서 컨텍스터로 데려간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