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AGV가 이동하고 있으니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수신기 너머로 안전 안내가 끝나자 화성 EVO Plant East 차체공장 안으로 발을 옮겼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천장보다 바닥으로 향했다. 부품을 실은 AGV(Automated Guided Vehicle, 자율주행 운반 로봇)가 공장 안을 오갔고, 좌우에는 PV5의 뼈대를 만드는 바디빌드 라인이 길게 펼쳐졌다.
일반적인 차체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장 부품 이송설비는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었다. 기아(000270)는 지하와 2층 공간을 활용해 물류를 분산하고 내부 공간을 열었다. 회색 설비 사이사이에는 노란색 안전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당초 회색으로 통일하려 했지만 신공장에 적용되는 강화된 안전 규정에 따라 노란 안전설비가 추가됐다.

기아 PBV 생산 허브 테크 데이에서 참가자들이 전시차를 관람하는 모습. ⓒ 기아
기아는 지난 8일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오토랜드(AutoLand) 화성에서 '기아 PBV 생산 허브 테크 데이'를 개최했다. 이곳에서는 기아의 첫 전용 전동화 PBV인 PV5가 생산되고 있다. 패신저와 카고, 섀시캡, WAV(Wheelchair Accessible Vehicle)까지 같은 PV5에서도 형태와 제원이 제각각이다. 공장 밖 PBV 컨버전 센터에서는 오픈베드와 탑차, 캠핑용 차량 등으로 다시 나뉜다.
한 모델을 빠르게 생산하는 능력보다 서로 다른 차량을 같은 생산 체계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소화하느냐가 PBV 생산의 관건인 셈이다. 공장을 따라 걷다 보면 기아가 이날 강조한 '유연성'이 생산라인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제원 달라도 한 라인서…4-벅으로 만든 유연생산
바디빌드 라인을 따라 이동하다 공정 영상 패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PV5의 차체 생산 방식이 여기서 보다 선명해졌다. 일반적인 차체 조립에서 하나의 주요 공정이 맡던 작업을 이곳에서는 네 단계로 나눴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EVO Plant East 차체 공장. ⓒ 기아
인너벅(Inner Buck)과 레일벅(Rail Buck)에서 내부 골격과 측면 구조를 만들고, 아우터벅(Outer Buck)과 루프벅(Roof Buck)을 거치며 외관 패널과 루프 구조를 완성하는 '4-벅(Buck) 순차 조립 공법'이다. 패신저밴과 카고밴, 섀시캡, 하이루프처럼 차체 제원이 달라도 조립 단계를 세분화해 변화 폭을 흡수한다.
라인 끝으로 이동하자 두 대의 로봇이 완성된 차체를 옮기고 있었다. PV5는 사양마다 길이와 무게중심이 달라 고정된 운반 장치로 대응하기 어렵다. 앞뒤 로봇이 동시에 움직이며 차체 위치를 자동으로 맞추는 '로봇 협조제어 이송 시스템'을 적용한 이유다. 각 로봇은 최대 600㎏을 들어 올릴 수 있다.
바디리스폿 라인을 따라 걷던 중 인솔자가 노란색 용접 부스를 가리켰다. 안쪽에는 길이 2m짜리 대형 용접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철도나 지하철 조립에도 쓰이는 크기다. PV5는 2열 도어 유무에 따라 일반 용접건이 닿지 않는 부분이 생기는데 이를 처리하기 위해 도입했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EVO Plant East 차체 공장. ⓒ 기아
몇 걸음 더 옮기자 용접 방식이 다시 달라졌다. 기존 용접건 자체가 들어가지 못하는 폐구간에서는 L.S.S(Laser Seam Stepper) 용접 공법을 사용한다. 네 대의 로봇이 레이저 빔 헤드를 장착해 한쪽 면에서 차체를 접합한다. 같은 PV5 안에서도 사양 변화가 용접 장비와 방식의 변화로 이어진다.
바닥에서는 AGV가 쉬지 않고 오갔다. 기아는 공장 설계 단계부터 통로 폭을 6m로 확보해 AGV들이 서로 지나갈 수 있게 했다. 높은 곳에는 자동창고도 자리 잡았다. 5개 라인에 설치된 자동창고는 250개 팔레트를 보관할 수 있고 최고 높이는 11.5m다.
◆사람 손 덜고 오차 줄여…로봇이 맡은 조립공정
차체공장 투어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조립공장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 카메라는 넣어야 했다. 보안상 조립라인 촬영은 전면 금지. 프리트림에서 트림, 검차라인으로 이동하며 눈앞에서 움직이는 로봇을 직접 따라갔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EVO Plant East 차체 공장. ⓒ 기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PV5 특유의 검은색 후드였다. 세 대의 로봇이 역할을 나눠 공급부터 정렬, 체결까지 처리한다. 한 대가 후드를 센터링 장치에 올려놓으면 나머지 로봇이 볼트를 집어 상단과 하단 순으로 체결한다. 차체공장이 아닌 조립공장에서 후드를 자동 장착하는 방식은 현대차·기아 최초 적용이다.
조금 더 이동하자 도어를 떼어내는 로봇 6대가 움직였다. 비전카메라로 힌지 위치를 확인해 프론트 도어를 분리하고, 도어서브라인에서 유리와 모터, 트림 등을 조립한 뒤 다시 차량에 장착한다.
엠블럼도 로봇 몫이다. 엠블럼을 집어 이형지를 제거하고 비전카메라로 위치를 확인한 뒤 후드와 테일게이트에 붙인다. 엠블럼 자동 부착 역시 현대차·기아 생산공장 가운데 이곳에 처음 적용됐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EVO Plant East 차체 공장. ⓒ 기아
프리트림을 지나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자 65㎏짜리 C/PAD가 로봇 앞에 놓여 있었다. C/PAD는 Crash pad의 약자로 계기판과 공조장치, 에어백 등이 모여 있는 대시보드 부품이다. 제품과 차체를 각각 3D 비전 카메라로 촬영한 뒤 로봇이 위치를 조정해 장착하고 볼트 체결까지 마친다.
실내 천장을 덮는 헤드라이닝도 프론트와 리어 부분은 로봇이 장착한다. 바코드로 사양을 확인한 뒤 제품을 집어 위치를 맞추고 차량 내부로 넣는다. 커넥터와 공조 덕트 작업이 필요한 센터 부분은 작업자가 맡는다.
◆±0.2㎜까지 잡아낸다…데이터로 맞춘 품질관리
공장 후반부에 접어들자 로봇의 역할은 조립에서 검사로 옮겨갔다. 완성 단계의 PV5가 검사 부스에 들어서자 상단 3D 비전 카메라가 차량 전체를 스캔했다. 생성된 좌표를 토대로 차량의 틀어진 정도를 계산하고 로봇이 측정 각도를 스스로 보정한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EVO Plant East 조립 공장. ⓒ 기아
검사 지점은 차량 좌우 각각 21곳이다. 도어와 펜더 등 외장 부품 사이 간격과 단차를 ±0.2㎜ 수준으로 측정한다. 이어 18개의 카메라가 아웃사이드 미러와 도어 가니시, 펜더, 도어 핸들 등 24개 부품의 사양과 누락 여부를 확인한다.
마지막에는 로봇이 차량 후드를 열고 헤드램프의 광도와 광축을 자동으로 맞췄다. 차를 만드는 로봇이 완성된 차량의 품질까지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모든 차량에는 위치와 생산정보를 식별하는 '스마트 태그'가 붙는다. 차량에 맞는 공구와 설비가 연결돼야 작업이 진행되고 비전 검사 결과와 작업 이력은 서버에 저장된다. 사양이 많아져도 차량마다 맞는 부품과 공구를 골라내고 검사 결과까지 개별 이력으로 남기는 구조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EVO Plant East 조립 공장. ⓒ 기아
현재 EVO Plant East는 9만9976㎡ 규모로 연 1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시간당 생산능력은 29대다. 올해 8월까지 PV5는 글로벌 시장에서 3만9000대 이상 판매됐고 '2026 세계 올해의 밴(IVOTY, International Van of the Year)'에도 선정됐다.
East 인근에서는 EVO Plant West 건설도 진행 중이다. 2027년 6월 준공 예정으로 13만6671㎡ 규모에 연 10만대 생산능력을 갖추고 PV7 생산을 담당한다. East와 West를 합친 연간 생산능력은 20만대다.
West에는 East에서 구축한 유연생산과 자동화 기술이 확대 적용된다. 조립공장에는 AMR(Autonomous Mobile Robot, 자율 부품 이송 로봇)을 활용하고 높은 차체에 맞춰 루프 안테나와 쿼터 글라스 자동 장착, 터널형 외관 비전검사와 주행 검사 자동화 등을 도입할 예정이다.
◆기본부터 맞춤형까지…컨버전으로 넓힌 생산체계
EVO Plant에서 생산된 기본차의 다음 행선지는 인근 PBV 컨버전 센터다. 이곳에서 고객의 사용 목적에 맞는 차량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EVO Plant East 조립 공장. ⓒ 기아
PBV 컨버전 센터는 6만3728㎡ 규모로 연 4만대 생산능력을 갖췄다. 연구개발과 생산, 출고 기능을 한 장소에 모았으며 조립센터에는 98개의 작업셀과 14개의 검사셀이 설치됐다. PV5 프라임과 오픈베드, 크루밴, 내장·냉동탑차 등을 생산한다.
특징은 컨버전을 기본차가 완성된 뒤 시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아는 기본차 개발 단계부터 컨버전 모델을 함께 설계해 부품 장착용 홀과 브라켓, 제어기와 와이어링 등을 미리 반영한다. 쓰지 않는 시트와 트림, 격벽 등은 생산 단계에서 장착하지 않아 이후 탈거 작업도 줄였다.
외부 특장사에 공급하는 도너모델도 불필요한 시트와 플로어 매트를 덜어내고 PIM(PBV Interface Module)과 전력 공급용 조인트 블록을 적용한다. 기본차 3D CAD 데이터와 바디빌더 매뉴얼을 제공하고 1:1 테크니컬 핫라인(Technical Hotline)도 운영한다.

기아 PBV 생산 허브 테크 데이에 전시된 PV5 라인업. ⓒ 기아
PBV가 늘어날수록 완성차 공장의 생산 공식도 달라진다. 차량 길이와 차체 구조, 내장 구성, 사용 목적이 달라지는 주문을 얼마나 빠르게 소화하면서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느냐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화성에서 본 기아의 해법도 그 방향에 맞춰져 있었다. 4-벅 순차 조립으로 차체 변화에 대응하고 로봇과 AGV가 서로 다른 사양을 옮긴다. 생산과 검사 결과는 데이터로 관리하고 공장을 나온 기본차는 컨버전 센터에서 물류차와 캠핑카, 특수 목적 차량으로 달라진다.
PV5로 시작한 생산 방식은 곧 더 큰 차체를 가진 PV7, PV9으로 확대된다. 이날 공장을 돌아보며 확인한 화성 PBV 생산 허브의 방향은 선명했다. 더 많은 종류의 차를 같은 생산 체계에서 만들면서 품질은 같은 수준으로 맞추는 것. '유연성'이 이 공장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