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국의 저출산이 양육비 부담을 넘어 사교육 경쟁과 출산 이후 여성의 소득 감소 등 복합적인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출산 5년 뒤 여성의 소득은 자녀가 없는 여성보다 43% 낮았다. 이로 인해 사교육을 둘러싼 경쟁이 없었다면 평균 자녀 수가 실제보다 28% 많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은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이날부터 이틀간 서울 중구 한은에서 '인구 고령화와 장수의 경제학: 도전에서 기회로'를 주제로 공동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 사교육 경쟁 없었다면 평균 자녀 1.92명→2.45명
이날 발표에서는 한국의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자녀 교육을 둘러싼 '지위 경쟁'이 지목됐다.
염민철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 교수 등 연구진은 부모가 자녀의 교육 성취를 다른 가정과 비교하면서 교육 투자를 경쟁적으로 늘리는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과 싱가포르, 칠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교육 경쟁에 대한 우려가 큰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낮고 하락 속도도 빨랐다.
한국에서는 저소득 가구의 사교육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소득 대비 사교육비 지출 비중은 8.4%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5.1%보다 높았다.
고소득 가구의 교육비 지출이 다른 계층의 지출까지 자극하는 효과도 확인됐다. 상위 15% 가구의 사교육비가 10% 줄어들 경우 하위 50%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 비중도 평균 6%에서 0.4~0.9%포인트(p)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지위 경쟁 효과가 없었다면 1970~1975년생 여성의 평균 자녀 수가 실제 1.92명에서 2.45명으로 28% 늘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비교의 기준점이 되는 고소득층의 사교육 지출에 과세하고, 이를 출산장려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정책 조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출산 이후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제적 부담도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황지수 서울대 학부대학 교수가 1976~1985년 출생 여성 가운데 2005~2015년 첫 출산을 경험한 여성을 분석한 결과, 출산 5년 뒤 어머니의 소득은 자녀가 없는 여성과 비교해 43% 낮았다.
소득 감소는 출산 이후가 아닌 임신 시점부터 시작됐다. 특히 출산 12개월 뒤 소득 감소폭은 1976~1980년생 여성에서는 40%, 1981~1985년생 여성은 46%로 확대됐다. 아버지의 소득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황 교수는 "여성의 교육과 노동시장 참여 기회가 크게 확대된 것과 달리 직장문화와 가정 내 성 역할 변화는 이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육아휴직뿐 아니라 유연근무와 재택근무 등을 확대해 돌봄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고령화에 성장·금리도 하방 압력
저출산·고령화 충격은 가계를 넘어 거시경제와 통화정책 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됐다. 황인도 한은 금융통화연구실장은 "고령화가 성장과 물가, 금융안정 등 통화정책 여건 전반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고 짚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 오는 2045년에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고령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출산율과 기대수명이 각각 1991년 수준인 1.71명과 72.2세에 머물렀다면 지난해 기준 균형 실질금리는 실제보다 1.4%p 높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인구 고령화가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면서 장기적인 금리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후미오 하야시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GRIPS) 명예교수도 "일본의 30년 장기침체 상당 부분이 이른 고령화에 따른 성장 둔화로 설명된다"며 같은 압력이 한국과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로 확산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수도권 집중과 저출산이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도 문제로 꼽혔다. 폴커 지만 OECD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총인구가 오는 2050년까지 약 500만명, 10%가량 감소하고 생산연령인구는 35% 이상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고령화의 성장 제약이 단순한 노동력 부족보다 총요소생산성(TFP) 둔화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에 "정년 연장이나 고령층 노동 참가 확대에 그치지 않고 노동·이민·혁신정책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영상 개회사를 통해 "인구구조는 강력한 힘이지만, 흔히 말하듯 '인구가 곧 운명'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생산성과 장기 성장은 지식의 창출과 확산에 크게 좌우돼 왔다"며 인공지능(AI)을 인구 감소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기회 요인으로 제시했다.
신 총재는 "인구구조 변화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지만, 다가오는 것을 미리 볼 수 있고 그만큼 늦지 않게 대비할 수 있다"며 "지금은 미룰 때가 아니라 대비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