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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컨텍스터 선언 22] 텍스터는 손을 놓고, 컨텍스터는 손을 벼린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 | press@newsprime.co.kr | 2026.08.26 11:33:20
[프라임경제] 실력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본인도 모르게 새어나간다.

내시경실의 한 장면을 가정해보자. 전문의가 대장 내시경을 진행하는 동안, 화면 한쪽에는 늘 인공지능(AI)이 대장 점막에 돋아난 혹, 즉 폴립의 위치에 노란 테두리를 그려줬다. 그런데 오늘은 그 장비가 고장 났다. 전문의는 평소와 같은 속도로 내시경을 밀어 넣지만, 테두리가 뜨지 않는 그 순간 어딘가 낯설다. 늘 보조등이 먼저 가리켜주던 자리를, 이번에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것은 가상의 장면이지만, 지금 여러 나라의 병원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프랑스 리옹의 암 전문 병원 레옹 베라르 센터(Centre Léon Bérard) 산하 의학종양학부와 정보시스템·데이터관리부 등이 함께 참여한 연구팀은 2026년 3월, 의료 현장에서 보고된 AI발(發) 탈숙련화 사례를 검토한 결과를 제시했다. 

가장 뚜렷한 수치는 대장 내시경에서 나왔다. 폴란드의 한 다기관 관찰 연구를 인용한 대목에 따르면, 내시경 시술자들은 AI 보조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뒤 AI 없이 시술했다. 그러자 방치하면 암으로 진행할 수 있는 혹인 선종을 찾아내는 비율(adenoma detection rate)이 28.4%에서 22.4%로, 6%포인트 떨어졌다.

레옹 베라르 센터 연구팀은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흔적을 짚었다. AI가 잘못된 권고를 제시했을 때, 경험 있는 영상의학과 의사를 포함해 판독 오류율이 12~15% 늘었다. 병리학에서도 AI의 오답은 의사의 처음 판단을 바꾸고 진단 오류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내시경·영상의학·병리 세 분야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였다. AI와 나란히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AI 없이 혼자 서는 순간의 실력은 조용히 깎여 나간다.

이 현상의 원리를 먼저 이론으로 짚어낸 연구가 있다.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교(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에모리대학교(Emory University), 오하이오주립대학교(The Ohio State University)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2024년 7월, AI 어시스턴트가 기존의 단순 자동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숙련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연구는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 하나를 짚는다. 비행기 자동조종장치 같은 재래식 자동화는 정해진 입력에 정해진 결과만 내놓는다. 반면 AI는 전문가의 판단 과정 자체를 흉내 낸다. 패턴을 읽고, 다음 수를 예측하고, 특정 결론으로 사용자를 이끈다. AI와 반복적으로 상호작용할수록, 인간이 그 판단 과정을 직접 훈련할 기회는 줄어들 수 있으며, 연구팀은 그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연구가 짚은 대목 중 더 무거운 것은 따로 있다. 실력이 줄어드는 것 자체보다 무서운 것은, 그 사실을 당사자가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예 일을 손에서 놓은 사람은 자신의 감이 무뎌졌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그러나 AI와 함께 매일 그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다르다. 수술은 여전히 성공적으로 끝나고, 판독은 여전히 정확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손이 여전히 예리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이 가리키는 것은 AI와 함께 낸 결과일 뿐, AI 없이 홀로 낼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이 연구는 배우는 사람 쪽에서 벌어지는 비슷한 함정도 짚었다. AI와 함께 배운 사람은 자신이 실제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착시(illusion)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잘 해내고 있다는 감각과 실제로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은 서로 다른데, AI가 그 둘 사이의 간극을 가려버린다.

이 연재에서 텍스터는 AI가 내놓은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멈추는 사람을, 컨텍스터는 그 결과를 발판 삼아 스스로 맥락과 판단을 더하는 사람을 가리켜왔다. 실력의 문제에서도 이 구분은 그대로 이어진다. 텍스터는 결과가 좋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AI와 함께 낸 오늘의 결과물이 매끄럽다면, 자신의 실력도 그만큼 매끄럽다고 믿는다. 그 결과물에서 AI가 만든 부분과 자신이 만든 부분을 애써 나누어 보지 않는다. 

컨텍스터는 다르게 묻는다. 지금 이 결과에서 AI를 걷어내면,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다. 매일 확인할 수도 없고, 확인한다고 당장 눈에 띄는 보상이 따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만이, 자신의 실력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도구에게 빌려온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

이 구도는 병원 밖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신입 기자가 AI로 기사 초안을 뽑는 데 익숙해지면, 취재원 앞에서 스스로 질문의 갈피를 잡는 감각은 훈련받을 기회를 잃는다. 번역가가 AI 초벌 번역을 다듬는 데만 익숙해지면, 백지 앞에서 문장을 처음부터 짓는 근육은 서서히 풀린다. 개발자가 AI에게 코드를 맡기는 데 익숙해지면, 오류의 뿌리를 손으로 더듬어 찾아내는 감각은 무뎌진다. 이 모든 경우 겉으로 보이는 결과물의 품질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르고 매끈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위험하다. 실력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신호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물을 만든 사람의 손끝에서만 감지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논리를 곧이곧대로 따라가 AI를 멀리하라는 결론으로 가는 것은 성급하다. 문제가 아직 데이터로 정리되지 않은 낯선 상황, 이를테면 전에 없던 바이러스나 예상 밖의 합병증 앞에서는 결국 사람의 훈련된 판단이 최후의 보루로 남는다. 정기적 숙련 유지 훈련과 판단 과정 중심의 평가를 교육·보수훈련에 어떻게 통합할지는 지금 연구와 교육 현장에 남은 과제다.

텍스터는 AI가 손을 잡아줄 때만 걷는다. 그 손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잘 걷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컨텍스터는 가끔 그 손을 스스로 놓아본다. 불편하고, 느리고, 때로는 틀린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통과한 사람만이 손이 사라진 진짜 위기의 순간에도 넘어지지 않는다. 실력은 대신 써주는 존재가 생기는 순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의 거리는, 평온한 날에는 보이지 않다가 위기의 날에만 비로소 드러난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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