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 회사의 마케팅팀 직원이 있다. 인공지능(AI) 도구로 시장 조사와 콘텐츠 초안을 뽑기 시작한 뒤로 그가 처리하는 프로젝트 수는 눈에 띄게 늘었다. 상사의 평가도 좋아졌고, 승진도 동기들보다 빨랐다. 누가 봐도 유능한 직원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팀 전체가 내놓는 기획안을 모아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브랜드, 다른 캠페인을 맡았는데도 제안하는 전략의 결이 서로 닮아갔다. 참고하는 사례도, 꺼내드는 키워드도 겹치는 일이 잦아졌다. 개인은 더 빨리, 더 많이 일했지만, 팀이 내놓는 아이디어의 폭은 오히려 좁아진 것이다.
이 엇갈림이 한 팀의 우연한 인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학계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데이터가 뒷받침한다.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지식연구소(Knowledge Lab)와 칭화대학교(Tsinghua University) 베이징국가정보과학기술연구센터(BNRist) 연구팀이 2026년 1월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리서치 아티클은, 1980년부터 2025년까지 생물학·화학·물리학·의학·재료과학·지질학 여섯 개 자연과학 분야에서 나온 논문 4130만편을 분석했다. 언어모델을 훈련시켜 AI 기법을 활용한 논문과 그렇지 않은 논문을 가려낸 뒤 두 집단이 남긴 흔적을 나란히 견주는 방식이었다.
결과는 두 층위에서 정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개인 차원에서 AI를 연구에 활용한 과학자는 그렇지 않은 과학자보다 논문을 3.02배 더 많이 냈고, 인용은 4.84배 더 많이 받았으며, 연구책임자가 되는 시점도 1.37년 더 빨랐다. 이 패턴은 초기 머신러닝 시대부터 딥러닝, 지금의 생성형 AI 시대까지 세 시기 모두에서 일관됐다.
그런데 연구팀이 이 논문들을 하나의 공간 위에 흩뿌려 놓고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진 주제를 다루는지 재보자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났다. AI를 많이 쓴 연구들이 차지하는 지식의 확장 범위는 그렇지 않은 연구들보다 4.63% 줄어 있었고, 서로 다른 연구가 주고받는 후속 학문적 교류는 22% 감소했다. 개인은 더 넓어졌는데 그들이 모인 학문 전체는 더 좁아진 것이다.
이 역설의 뿌리는 AI가 무엇을 잘하는가에 있다. AI는 이미 데이터가 두텁게 쌓인 곳, 문제의 윤곽이 뚜렷한 곳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정답이 있는 곳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주는 것, 그것이 지금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새로운 발견은 데이터가 성기고 질문조차 아직 여물지 않은, 지도 밖의 자리에서 태어난다. AI에게 그런 자리는 애초에 보이지 않는다. 근거로 삼을 데이터가 없으니 추천할 수도, 안내할 수도 없다.
AI는 늘 이미 걸어본 사람이 많은 길, 성과가 눈에 띄게 나오는 길로 우리를 이끈다. 그 길을 먼저 걷는 사람은 확실히 남들보다 빨리 도착한다. 문제는 모두가 같은 안내를 받는다는 데 있다. 각자 다른 곳에서 출발했다고 믿지만, 결국 같은 길로 수렴한다. 그 길 밖의 자리는 아무도 밟지 않은 채로 남는다.
이 연재가 텍스터와 컨텍스터를 계속 구분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성공과 집단의 진전이 같은 방향을 향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개인의 성과만을 보고 판단한다. 논문이 늘고, 인용이 늘고, 승진이 빨라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 성과가 남들과 얼마나 같은 자리에서 나온 것인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이 질문을 던지느냐 아니냐가, 텍스터와 컨텍스터를 가르는 지점이다.
텍스터는 AI가 가리키는 곳에서 일한다. 데이터가 풍부하고, 정답이 잘 드러나고, 결과가 확실히 나오는 자리다. 거기서 나오는 성과는 실재하고, 그 성과는 텍스터 개인에게 실적과 평가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다만 텍스터는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이 밟고 있는 길이 얼마나 붐비는 길인지 헤아리지 않는다. 개인의 성공이 언제나 집단의 진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텍스터는 굳이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컨텍스터는 다르게 계산한다. AI가 가리키는 길이 잘 닦여 있을수록 그 길 위에 이미 얼마나 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을지를 먼저 셈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그 길에서 비켜선다. 데이터가 성기고 질문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자리, AI가 안내하지 못하는 바로 그 공백에 자신의 시간을 놓는다. 점을 모으는 일은 이제 AI가 인간보다 잘한다.
그러나 어떤 점과 점을 이어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낼 것인가는, 정답이 없는 만큼 인간에게 여전히 남겨진 질문이다. 안내가 있는 곳에서는 안내를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합리성이 모두에게 똑같이 쌓이면, 지도에 없는 자리는 영영 비워진다. 컨텍스터의 몫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잘 닦인 길을 벗어나 걷기로 하는 선택, 그것이 이제는 의지가 아니라 판단력의 문제가 됐다.
우리의 자리에서도 같은 구조가 매일 반복된다. AI에게 자료 조사를 맡기면, AI는 이미 많이 언급된 것, 이미 잘 정리된 것부터 촘촘히 이어 보여준다. 그 결과물은 매끄럽고 효율적이지만, 그 매끄러움이 가리는 자리가 있다. 아직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성긴 여백이다. 그 여백을 알아채고 굳이 찾아 나서는 사람과, 잘 닦인 길 위에서 속도만 높이는 사람의 차이는 오늘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전자만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닿는다.
길은 이미 나 있는 곳을 따라가면 편하다. 그러나 새로운 길은 언제나, 아직 아무도 걷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오늘 손에 쥔 점들을 보라. 그 점들을 AI가 이어준 대로 걸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다른 선을 그어볼 것인가.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