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기술·제조·EPC(설계·조달·시공)를 아우르는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정기선 HD현대(267250) 회장이 14일 서울에서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 겸 회장을 만나 밝힌 말이다.
이날 정 회장, 게이츠 회장 외에도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5월 3사가 '차세대 나트륨 원자로 사업 협력을 위한 3자 업무협약'을 맺은 이후 최고경영진이 다시 만난 첫 자리다.
회동에서는 그간의 진전 상황을 점검하고 육상 원자로 상용화를 위한 협력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 3사는 앞선 업무협약을 통해 역할 분담을 이미 마쳤다. 테라파워는 나트륨 기술을, HD현대는 주기기 제조를, 현대건설은 EPC를 각각 맡는 구조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 겸 회장과 지난 2025년 8월22일 만나 SMR 사업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HD현대
이들이 개발하는 것은 소듐냉각고속로(SFR·나트륨을 냉각재로 쓰는 차세대 원자로) 기반의 나트륨 원자로다.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중에서도 유망 모델로 꼽힌다.
HD현대와 테라파워의 인연은 짧지 않다. 지난 2022년 투자로 첫발을 뗀 이후, 2024년 12월에는 나트륨 원자로에 들어가는 원통형 원자로 용기를 수주해 직접 제작해왔다.
2025년 3월에는 제조 공급망 확장을 위한 전략적 협약을 맺고 1년여간 제조 타당성과 가격 경쟁력, 인도 일정까지 꼼꼼히 따져봤다. 그 결과물로 올해 5월에는 나트륨 원자로 주기기의 핵심 설비를 만들어 공급하는 우선 협상 대상자 자리까지 꿰찼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실제 물량이다. HD현대는 연간 원자로 용기 2~3기 공급을 목표로 잡았다. 상용화 시점보다 앞서 생산 설비 투자부터 서두르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95GW 규모로 세계 원전 설비의 약 25%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문제는 노후화다. 상당수 원전이 1970년대 가동을 시작했기에 교체 수요가 조만간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증가로 전력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원자력 발전이 다시 주목받는 분위기다. 3사가 미국 시장을 정조준한 배경이다.
정 회장은 "자체적인 기술 개발과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SMR 발전 수요 증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조선업 기반의 제조 역량을 원전 사업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HD현대가 테라파워와의 우선 협상 대상자 지위를 발판 삼아, 향후 SMR 공급망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