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JTBC가 보도한 대한축구협회 심판 관련 의혹은 조직경영의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대목이 많다.
보도에서는 심판을 둘러싼 부적절한 접대 의혹이 제기됐고, 이른바 '마사지' 비용과 관련해서는 조직 내부에서 기안이 이뤄지고 부회장 결재까지 거쳤다는 정황이 전해졌다.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는 향후 조사와 절차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조직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담당자가 기안하고 상급자가 결재했다면 그 결정은 정당한 것인가. 여러 사람이 검토하고 승인했다는 사실이 그 결정이 옳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승인된 결정'과 '정당한 결정'은 다르다.
경영학에서 조직의 정당성은 조직의 행동이 사회의 규범과 가치, 기대 속에서 적절하고 받아들일 만하다고 인식되는 것을 의미한다. 법과 규정을 지키는 것은 기본일 뿐이다.
구성원과 고객, 사회에 "왜 그런 결정을 했는가"를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조직에서는 오랫동안 반복된 '관행'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예외였던 일이 반복되고 전임자의 방식을 후임자가 따르며 상급자의 승인까지 이어지면 어느 순간 정상적인 업무가 된다. "예전부터 이렇게 했다", "다른 곳도 한다", "결재까지 받았다"는 논리가 잘못된 관행을 정상적인 절차로 포장할 수 있다.
그래서 조직에는 공식 조직도에 없는 하나의 결재선이 더 필요하다.
"이 결정을 구성원과 고객, 사회 앞에 그대로 공개해도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면 규정상 문제가 없더라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는 내부의 의사결정이 조직 안에서만 머물지도 않는다. 구성원의 제보 하나, 고객의 게시물 하나가 순식간에 사회적 이슈가 되고 오랫동안 쌓아온 조직의 신뢰가 하나의 결정으로 흔들릴 수 있다.
이때 "규정상 문제가 없다"거나 "내부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가 묻는 것은 절차의 존재보다 그 결정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다. 기업들은 채용, 인사배치, 성과평가, 고객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AI 에이전트가 조직에 더 깊숙이 들어오면 정보 분석을 넘어 의사결정까지 지원할 것이다.
그러나 효율적인 결정과 정당한 결정은 동일하지 않다. AI가 지원자를 탈락시키거나 성과 데이터를 통해 인력 조정을 추천할 수 있다고 해서 그 결정이 자동으로 공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결정'과 조직이 '해도 되는 결정' 사이에는 여전히 인간의 판단이 필요하다.
책임도 마찬가지다. AI가 대안을 추천하고 알고리즘이 순위를 정한 뒤 인간이 승인하는 조직에서는 책임의 경계가 오히려 흐려질 수 있다.
"AI가 추천했다"는 말이 새로운 시대의 "결재받았다"가 돼서는 안 된다. AI의 판단 기준을 검토하고 그 결과가 조직의 가치와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며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다.
따라서 AI 시대 리더와 HR에게 필요한 역량은 단순한 기술 활용 능력을 넘어 '정당성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누가 결정에 참여하고 어떤 기준을 적용했으며 결과를 어떻게 설명하고 책임질 것인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생산성이 경쟁력이었고 디지털 시대에는 속도와 혁신이 강조됐다. AI 시대에는 여기에 '정당성'이라는 조건이 더해져야 한다. AI는 더 많은 선택지와 더 빠른 결정을 제공하지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선택이 옳은지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이제 조직은 "우리는 할 수 있는가"를 넘어 "우리가 이것을 해도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좋은 조직은 결재가 끝난 조직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을 구성원과 고객, 사회 앞에서 설명하고 책임질 수 있는 조직이다. AI 시대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은 결국 사람들이 그 결정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정당성'에서 시작된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