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023년 유럽연합(EU)에서 발생한 포장폐기물은 7970만톤에 달했다. 1인당 177.8kg꼴이다. 플라스틱 포장폐기물은 1인당 35.3kg이었다. 재활용된 양은 14.8kg에 그쳤다.
오는 12일부터는 EU 포장·포장폐기물규정(PPWR)이 적용된다. 규정은 포장재의 생산과 사용, 폐기 전반에 지속가능성 기준을 부과한다. 유럽에 제품을 판매하는 국내 기업도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포장재 전환은 쉽지 않다. 기업은 소재업체와 디자인사, 금형·사출업체, 생산공장을 각각 찾아야 한다. 친환경 소재의 물성 한계와 높은 가격도 풀어야 한다.
리베이션(대표 이민성)은 이 과정을 하나로 묶은 기업이다. 플라스틱 용기와 완충재를 종이 성형품으로 바꾼다. 플라스틱이 필요한 제품에는 바이오·재생 소재를 적용한다. 소재 선정부터 디자인과 생산까지 맡는다. 플라스틱과 탄소 감축 효과도 계산한다.
이민성 대표는 "친환경 소재를 제조하는 회사는 많지만 실제 제품을 만들고 적용 효과까지 증명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며 "리베이션은 제품과 환경적 효과를 함께 제공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설립된 리베이션은 뷰티와 식품, 전자, 주류, 생활용품, 항공 분야를 공략하고 있다. 주요 제품은 페이퍼몰드와 바이오플라스틱이다. 재생 플라스틱도 활용한다.
◆EU 규제 앞두고 빨라진 포장재 전환
이 대표는 LG생활건강(051900)에서 약 12년간 패키지 개발자로 근무했다. 현장에서 글로벌 소비재 기업과 국내 기업의 격차를 확인했다. 글로벌 기업은 환경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제품 소재와 구조를 바꿨다. 에코디자인 기준도 선제적으로 적용했다. 반면 국내 패키징 산업은 소재 연구개발(R&D)과 디자인, 생산 공정이 나뉘어 있었다.
기업이 친환경 제품 하나를 개발하려면 여러 업체를 직접 찾아야 했다. 업체마다 생산 조건도 달랐다. 수정 작업이 반복되면서 시간과 비용이 늘었다.
이 대표는 "글로벌 기업들은 관련 규정이 나오기 10년 전부터 에코디자인 기준에 맞춰 제품을 개발했다"며 "국내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였고 소재와 디자인, 생산도 각각 분리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흩어진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면 국내 기업의 친환경 전환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베이션을 창업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수출기업의 문의도 늘었다. PPWR 대응 방법을 묻거나 제품과 포장재를 함께 바꾸려는 기업이 리베이션을 찾고 있다.
이 대표는 "과거 친환경은 마케팅 요소였지만 지금은 수출과 납품을 위한 기본 조건"이라며 "판매 국가의 규정에 맞춰 제품과 1·2차 포장재를 함께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종이는 성형하고, 플라스틱은 재생소재로
리베이션은 폐기물을 수거·선별하는 재활용업체가 아니다. 고객사의 제품과 포장재를 친환경 소재로 다시 설계하는 개발사다.
해법은 두 갈래다. 종이로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완충재에는 '페이퍼몰드'를 적용한다. 플라스틱의 강도와 가공성이 필요한 제품에는 바이오·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페이퍼몰드는 종이 소재를 금형으로 성형해 만든 포장재다. 리베이션은 밀도와 강도를 높였다. 내수성과 내유성도 확보했다. 기존 플라스틱 용기와 완충재를 대체하기 위해서다. 표면에는 직접 인쇄할 수 있다. 별도의 플라스틱 라벨 사용을 줄이는 방식이다. 회사 측은 라벨을 따로 제거하지 않아도 분리배출이 쉽도록 설계한다고 설명했다.
식품 용기에는 별도 기준을 적용한다. 물과 기름을 견뎌야 한다. 식품과 직접 접촉해도 안전해야 한다. 리베이션은 제품 용도와 식품 접촉 기준에 맞춰 코팅과 수지를 달리 적용한다.
모든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 화장품 용기 등은 플라스틱의 성형성과 강도가 필요하다. 이 경우 석유계 신재 플라스틱 대신 바이오매스나 재생원료를 적용한다. 신재 플라스틱 투입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리베이션이 유한킴벌리와 개발한 페이퍼 클리너. 손잡이와 본체를 종이 소재로 제작했다. ⓒ 리베이션
대표적인 사례는 유한킴벌리와 개발한 페이퍼 클리너다. 손잡이와 본체를 종이 소재로 제작했다. 종이만 사용한다고 제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반복해서 잡아도 견딜 강도가 필요하다. 손잡이와 본체가 연결되는 구조도 설계해야 한다.
이 대표는 "종이만으로 필요한 강도를 확보하려면 소재와 엔지니어링을 함께 개발해야 한다"며 "페이퍼 클리너에는 일반 제조사가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이 담겼다"고 말했다.
티웨이항공(091810)과는 친환경 기내식 용기를 개발했다. 리베이션은 소재와 구조를 설계했다. 항공사의 정체성을 반영한 디자인도 맡았다. 생산과 납품까지 담당했다.
기내식 용기는 온도 변화에 견뎌야 한다. 음식의 수분과 기름에도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리베이션은 페이퍼몰드의 밀도와 내열·내수·내유성을 높였다.
◆소재부터 양산까지 묶은 '리스튜디오'
리베이션의 핵심 서비스는 '리스튜디오(RESTUDIO)'다. 고객사의 제품과 판매 국가에 맞는 소재를 추천한다. 디자인과 구조 설계도 맡는다. 견적과 생산 일정도 관리한다.
기존 방식은 공정마다 담당 업체가 달랐다.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수정 작업이 반복됐다. 개발 기간과 비용도 늘었다. 리스튜디오는 이 과정을 하나로 관리한다. 회사 측은 제품 개발 기간을 기존 방식보다 평균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리스튜디오는 단순한 업체 연결 서비스가 아니다"라며 "소재 기술과 시스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실제 양산까지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리베이션 매출의 약 80%는 제품 생산과 납품에서 나온다. 나머지 20%는 소재 R&D와 디자인 등 개발 서비스 매출이다. 누적 고객사는 약 110곳이다. 대다수가 시제품을 넘어 양산까지 이어졌다. 기존 고객이 다시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약 50%다.
이 대표는 "B2B 고객은 각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홍보 문구만으로 회사를 선택하지 않는다"며 "제품을 실제 양산하고 고객사의 사업으로 연결한 사례가 리베이션의 기술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리베이션은 제품을 납품한 뒤 감축 효과도 계산한다. 친환경 제품을 기존 플라스틱 제품의 규격·기능과 비교한다. 생산량과 소재별 탄소배출계수도 반영한다. 완제품은 전과정평가(LCA) 방식으로 관리한다. 제품 중량과 제조 공정, 운송·가공 조건 등을 포함한다. 외부 전문기관과 산정 기준도 검토한다.
이 대표는 "기업이 친환경 제품을 도입해도 증빙자료가 없으면 ESG 보고나 거래처 대응에 활용하기 어렵다"며 "제품개발과 효과 증명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 리베이션의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리베이션이 페이퍼몰드로 설계한 신발용 친환경 패키지 이미지. 종이 성형 구조로 신발을 보호하고 플라스틱 완충재 사용을 줄였다. ⓒ 리베이션
◆투자·IBK창공 발판으로 해외 공략
리베이션은 지난 2023년 프리A 투자를 유치했다.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와 한양대학교기술지주회사 등이 참여했다. 유한킴벌리 그린임팩트 펀드와 에스큐빅 엔젤스 개인투자조합, 프리즘 청년창업 개인투자조합도 투자했다.
2024년 12월에는 프리A 브릿지 투자를 받았다. 기존 투자사인 엠와이소셜컴퍼니(MYSC)가 후속 투자에 참여했다. 신용보증기금과 로우파트너스도 신규 투자자로 합류했다.
이 대표는 "리베이션은 특정 제품 하나만 만드는 제조사가 아니다"라며 "기업이 소재 선택부터 제품개발과 양산, 환경 효과 증명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한편 IBK기업은행(024110)의 창업 육성 플랫폼 'IBK창공 마포 17기' 기업이다. 공동운영사인 신기술금융회사 시너지아이비투자가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