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1~2%대의 상승세를 보였으나 다시 하락전환해 6000선 아래로 내려왔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코스피와 코스닥이 사상 처음으로 이틀 연속 동시에 멈춰 섰다. 중국발 반도체 충격과 인공지능(AI) 투자 수익성 우려가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한 가운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 편중 구조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낙폭을 키우며 코스피는 장중 5300선, 코스닥은 630선까지 추락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후 1시57분 기준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575.92p(-9.56%) 급락한 5447.74를 기록했다. 기관이 2조4385억원을 순매수하고 있지만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1조9633억원, 4753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같은 시각 코스닥은 전장보다 58.92p(-8.35%) 떨어진 646.93을 나타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3163억원, 335억원을 순매수한 반면 개인은 3484억원을 순매도하고 있다.
전날 급락장에서도 대규모 저가 매수에 나섰던 개인투자자가 이날 양 시장에서 순매도로 돌아서면서 손절성 매물이 출회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사상 초유의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
시장 안정장치는 이날도 잇따라 작동했다. 오전 10시55분 유가증권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1분 뒤인 오전 10시56분 코스닥시장에서도 프로그램매매 매도호가의 효력이 5분간 정지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코스피200 선물이 기준가격보다 5.15% 하락하면서 올해 23번째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닥시장에서도 코스닥150 선물과 현물지수가 각각 6.21%, 6.30% 떨어지며 올해 13번째 매도 사이드카가 작동했다.
사이드카로도 투매가 진정되지 않자 양 시장의 거래가 차례로 중단됐다. 낮 12시19분 코스닥지수가 전일 대비 8.05% 내린 649.00까지 밀리며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이어 낮 12시32분에는 코스피도 8.15% 급락한 5532.33을 기록하며 20분간 거래가 멈췄다.
이번 서킷브레이커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올해 아홉 번째이자 역대 15번째, 코스닥시장에서는 올해 네 번째이자 역대 14번째다.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동시에 발동한 것은 국내 증시 사상 처음이다.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2거래일 연속 거래가 중단됐으며, 코스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이후 세 번째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7월 들어 시장 안정장치 발동도 집중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이달 매도 사이드카 6회와 매수 사이드카 5회 등 총 11차례의 사이드카가 작동했다. 서킷브레이커도 지난 7일과 13일, 28일, 29일 등 네 차례 발동돼 이달에만 총 15차례 시장에 제동이 걸렸다.
◆ 中 반도체 굴기·AI 수익성 우려에 투자심리 '꽁꽁'
급락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자립 속도와 AI 투자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꼽힌다.
중국 장비업체가 액침형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생산에 나섰다는 소식과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의 생산능력 확대가 맞물리면서 메모리 공급 부족을 전제로 이어졌던 AI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가 흔들렸다.
중국산 DUV가 당장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대체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이 설계부터 장비·생산·메모리까지 아우르는 독자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자본지출로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반도체 기업이 고객사의 AI 인프라 투자까지 금융 측면에서 지원하는 순환금융 구조가 확대되면서 신용위험에 대한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하이퍼스케일러뿐 아니라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등 반도체 기업들의 신용부도스와프(CDS) 스프레드도 확대되고 있다"며 "당분간 시장은 AI 사업의 수익화와 투자 기업들의 재무 안정성에 더욱 주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삼전닉스' 편중·레버리지 ETF가 낙폭 증폭
시장 기대치를 밑돈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도 이날 반도체주 낙폭을 키웠다.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시장 예상치에는 못 미치면서 반도체 업황이 정점을 지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재차 부각됐다.
오후 1시57분 기준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9.86% 급락한 19만8300원, SK하이닉스는 15.81% 폭락한 130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SK스퀘어(-13.95%)와 삼성전기(-12.39%)도 두 자릿수 낙폭을 기록했다.
반도체주에서 시작된 매도세는 현대차(-4.26%), LG에너지솔루션(-5.89%), 삼성바이오로직스(-5.62%), 삼성생명(-11.05%) 등 다른 업종으로도 확산됐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알테오젠이 8.09% 떨어진 가운데 에코프로비엠(-9.82%)과 에코프로(-9.49%)가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장비주인 주성엔지니어링(-14.05%)과 원익IPS(-13.41%), 리노공업(-9.58%)도 크게 밀렸다.
같은 반도체 충격에도 국내 증시가 유독 크게 흔들린 배경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높은 지수 의존도가 지목된다. 두 종목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안팎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주가가 동시에 급락하자 개별 종목 조정이 지수 전체의 붕괴로 직결됐다는 분석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도 변동성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해당 상품은 기초 종목의 하루 등락률을 2배가량 추종하도록 설계돼 있어 주가가 급락하면 운용사가 배수를 맞추기 위해 현물을 추가로 매도해야 한다. 하락이 기계적인 매도를 부르고, 매도가 다시 낙폭을 키울 수 있는 구조다.
지난 5월27일 상품 출시 이후 개인투자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14조1000억원 순매수해 전체 누적 순매수액의 87%를 차지했다. 반면 기관은 같은 기간 16조3000억원을 순매도해 기관이 내놓은 물량을 개인이 대부분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 외환위기 넘어선 '잔인한 7월'…외인 복귀가 반등 열쇠
이달 코스피 하락률은 28.9%로 지난 1990년 이후 월간 기준 최대 수준까지 확대됐다. 이는 1997년 10월 외환위기 당시 27.3%와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3.1%를 모두 넘어선 수준이다. 지난달 기록한 고점과 비교한 낙폭도 30%를 웃돌았다.
다만 월간 지수 하락률이 외환위기 당시보다 크다는 것이 국내 경제 전반의 위기 수준까지 당시를 넘어섰다는 의미는 아니다.
증권가는 과거 코스닥의 연속 거래중단이 글로벌 금융위기나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서 비롯된 반면, 이번에는 중국 반도체 추격과 AI 투자 수익성 우려에 국내 증시의 반도체 편중·레버리지 구조가 맞물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다.
향후 반등 여부는 외국인 수급 복귀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잔고 축소에 달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급락 이후 국내 수급 주체들의 매수 여력이 약화된 만큼 지수 반등에는 외국인의 순매수 전환이 필요하다"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잔고가 충분히 줄어들지 않으면 기계적인 리밸런싱 매도가 반복되며 낙폭을 키우는 구조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