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부는 최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서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800조원 규모의 투자 구상을 제시했다.
수도권에는 생산능력을 조기에 확대하고, 서남권에는 메모리 반도체 팹(Fab) 4기를 구축하며, 충청권에는 81조원 규모의 첨단 패키징 거점을 조성하는 등 대한민국 전체를 하나의 반도체 클러스터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과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 투자까지 포함되면서 국가 산업지도를 다시 그리는 수준의 청사진이 제시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5년 내 메모리 생산능력을 두 배로 확대하고, 반도체 특별법과 특별회계, 대통령 직속 추진체계를 기반으로 국가 차원의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투자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던 이유도 공장만 많이 지었기 때문이 아니다.
신주 과학단지는 대학과 연구소, 장비기업, 소재기업, 협력업체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성장했고, 최근 가오슝 생산거점 역시 주거, 국제학교, 교통, 생활환경을 함께 조성하며 인재가 장기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 역시 CHIPS and Science Act를 통해 약 527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제조와 연구개발 지원 정책을 추진하며 공장 건설뿐 아니라 연구개발과 인력양성까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이 시설 경쟁에서 사람 중심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AI 시대의 반도체는 전력과 용수만으로 생산되지 않는다. 정부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서남권 메모리 팹 4기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약 6GW 이상의 전력과 대규모 산업용수 공급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확보하기 어려운 자원은 반도체 전문인력이다. 공정개발, 소자설계, 패키징, 장비 유지보수, AI 기반 생산혁신 등 고급 인력은 세계적으로 부족하며, 국가 간 인재 확보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팹 하나를 짓는 데 수년의 시간과 수십조원이 투입되지만, 이를 운영할 숙련된 엔지니어와 연구인력은 단기간에 양성할 수 없다. 결국 앞으로의 반도체 경쟁은 누가 더 많은 공장을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가 진정한 국가 전략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계약학과를 몇 개 신설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대학이 산업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로 전환돼야 한다.
AI와 반도체 융합교육, 기업 공동 프로젝트, 장기 현장실습, 산학 공동 연구를 통해 졸업과 동시에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인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인력경영학에서 말하는 경쟁력은 우수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사람이 계속 성장하고 머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번 800조원 프로젝트 역시 성공의 열쇠는 공장 부지나 투자 규모가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생태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반도체는 설비가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산업이며, 대한민국 반도체의 다음 30년은 결국 인재에 대한 투자 규모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