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 사흘째인 7일 프로야구 시구자로 나선다. 동시에 두산그룹과 국내 주요 게임사 경영진을 잇달아 만나면서 이번 방한이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한국 산업계와의 인공지능(AI) 협력 확대를 상징하는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
스포츠·게임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두산 베어스 홈경기에서 시구자로 마운드에 오른다. 황 CEO는 엔비디아 창립 연도인 1993년을 의미하는 등번호 93번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국 야구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날 시타는 두산 베어스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맡는다. 박 회장은 두산 창립 연도인 1896년을 뜻하는 96번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잠실서 만나는 젠슨 황·박정원…두산 협력 부각
재계에서는 이번 만남을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 이상의 장면으로 보고 있다. 두산(000150)과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공급망부터 로봇·자동화, 피지컬 AI 분야까지 협력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어서다.
두산은 AI 산업 확산에 필요한 소재·장비·로봇 사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 전자BG는 AI 반도체에 쓰이는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을 생산한다. CCL은 인쇄회로기판(PCB)의 기초 소재로,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수록 중요성이 커지는 분야다.
협력 가능성은 공급망을 넘어 산업 현장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두산은 건설기계, 발전설비, 로봇 등 주요 사업 영역에 AI 기술을 접목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엔비디아의 AI 컴퓨팅 기술과 두산이 축적한 산업 데이터를 결합해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AI 서비스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AI 반도체 넘어 로봇으로…두산 '피지컬 AI' 접점
특히 두산은 엔비디아가 미래 성장축으로 강조하는 '피지컬 AI' 분야의 잠재적 협력 파트너로 거론된다. 피지컬 AI는 AI가 로봇이나 기계에 적용돼 현실 세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도록 하는 기술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발전설비와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을 넘어 산업용 휴머노이드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AI 기술을 실제 제조·전력·로봇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접점을 두산이 갖춘 셈이다.
올해 들어 양사 간 접점도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4월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분야 관계자가 두산로보틱스를 찾아 산업용 휴머노이드와 지능형 로봇 개발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로보틱스는 2027년 AI 기반 로봇 솔루션, 2028년 산업용 휴머노이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황 CEO가 입국 직후 한국의 차세대 유망 산업으로 로보틱스를 언급한 점도 주목된다. 그는 한국이 제조 기술과 AI 역량을 모두 갖춘 만큼 로보틱스가 다음 핵심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낸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두산과의 만남은 AI 반도체를 넘어 로봇과 산업 AI 생태계로 협력 범위를 넓히는 행보로 풀이된다.
◆게임사 수장 연쇄 회동…엔비디아 생태계 확장
황 CEO는 이날 국내 주요 게임사 경영진과도 별도 회동을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김택진 엔씨(036570)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259960) 의장 등과 만나 AI 게임 개발, 디지털 휴먼, 시뮬레이션, 피지컬 AI, AI 컴퓨팅 기반 게이밍 협업 등을 논의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게임업계와의 만남도 로보틱스 협력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게임사는 3차원 가상공간 구현, 캐릭터 행동 설계, 시뮬레이션 데이터 구축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로봇이 현실에서 시행착오를 겪기 전 가상 환경에서 학습하도록 하는 피지컬 AI 구조에서는 이러한 게임사의 기술력이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
엔씨소프트는 엔비디아와 오랜 기간 게임 분야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지난해 황 CEO 방한 당시 서울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 '아이온2'와 '신더시티'를 출품하며 접점을 넓혔다. 최근에는 AI 자회사 NC AI를 중심으로 국방·조선 등 산업 영역에서 피지컬 AI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크래프톤 역시 엔비디아와의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크래프톤은 생성형 AI 기반 캐릭터와 게임 콘텐츠 기술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휴머노이드 로봇과 온디바이스 AI 분야에서도 협력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표작 '배틀그라운드'와 신작 게임에 AI 캐릭터·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도 이어가고 있다.
황 CEO는 오는 8일에도 국내 AI·로봇 스타트업, 재계, 학계 관계자들과 만남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 AI연구원과 로보틱스 연구소, LG(003550)그룹, 현대차(005380)그룹, 네이버(035420) 등과의 일정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오후에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업스테이지, 노타 등 AI 스타트업과 리얼월드, 에이로봇 등 로봇 스타트업 경영진이 참석하는 비공개 간담회도 예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만나 GPU 공급 등 AI 협력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황 CEO의 이번 방한이 한국 기업들과의 AI 생태계 협력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엔비디아와 한국 기업 간 협력이 GPU 공급과 AI 반도체 인프라에 집중됐다면, 이번에는 로봇·게임·전력·제조 현장까지 논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다만 구체적인 계약이나 투자 발표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일정은 당장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라기보다 엔비디아와 한국 주요 기업들이 향후 협력 방향을 확인하는 상징적 만남에 가깝다"며 "피지컬 AI와 로보틱스가 실제 사업 협력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