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명이 인공지능(AI)에게 아이디어를 묻고 있다. 그 답들은 놀랍도록 서로 닮았다. 제미나이(Gemini)에게 물어도, 챗지피티(ChatGPT)에게 물어도, 클로드(Claude)에게 물어도, 모델이 달라도 아이디어는 같은 곳으로 모인다.
각자 다른 AI를 쓰고 있다고 믿는 동안 우리의 생각은 조용히 한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창의성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역사상 가장 비슷한 생각을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2026년 3월, 미국 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 NAS)이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 OUP)와 협력해 출판하는 PNAS 넥서스(PNAS Nexus)에 실린 리서치 보고서를 살펴보자.
「거대언어모형은 동질하게 창의적이다(Large language models are homogeneously creative)」를 제목으로 하는 이 보고서는 인간 102명과 거대언어모형(LLM, Large Language Model) 22개에게 동일한 창의성 과제를 내고 그 결과를 비교했다. 과제는 세 가지였다. 포크, 망치, 책 같은 일상 사물을 원래 용도 이외의 방식으로 최대한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떠올리는 것, 서로 가장 관련 없는 단어 열 개를 고르는 것, 그리고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해 연상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개별 답변만 놓고 보면 AI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세 가지 과제를 종합하면 평균적인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창의성을 보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여러 LLM들의 답변을 한자리에 모아 비교했더니, AI들의 답이 인간들의 답보다 서로 훨씬 더 닮아 있었다. 연구팀은 이것이 특정 모델 하나의 특성이 아니라고 밝혔다. 모든 LLM은 비슷하고 동질한 창의적 산출물을 낸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 결론이다. 우리가 저마다 다른 AI를 쓰고 있다고 믿는 동안, 그 AI들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한 세기 전의 통찰이 도움이 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미디어학의 선구자인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은 1922년 저서 『여론(Public Opinion)』에서, 인간은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대신 머릿속에 미리 만들어진 "그림(pictures in our heads)"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지적했다. 그가 '고정관념(stereotyp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외부에서 먼저 제시된 틀이 인간의 인식과 판단을 구조화한다. 리프만이 경고한 것은 남이 그린 그림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시대에는 신문이 그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AI가 그린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신문은 수십 종이 서로 다른 그림을 그렸다. AI는 수백만 명에게 동시에, 놀랍도록 비슷한 그림을 건넨다. 리프만이 경고한 문제가 규모를 바꿔 되돌아온 것이다.
이 지점에서 AI를 다루는 두 가지 방식이 갈린다. 이 칼럼에서 말하는 '텍스터'는 AI가 먼저 내놓은 답을 출발점으로 삼아 다듬는 사람이다. 결과물은 그럴듯해지지만, 생각의 방향은 AI가 먼저 정했다. AI가 그린 그림을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믿는 것이다.
반면 '컨텍스터'는 AI를 열기 전에 먼저 스스로 묻는다. 이 전제가 맞는가, 다른 방향은 없는가, 아직 아무도 꺼내지 않은 질문이 있는가. 그 탐색을 먼저 하고, AI는 그 결과를 정리하는 도구로 나중에 불러들인다. 순서가 다를 뿐이지만, 그 순서가 생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른다.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기획 회의를 떠올려보자. 각자 다른 AI에게 아이디어를 물어보고 들어온 팀원들의 안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 서로 다른 모델을 썼는데도 결론은 같은 지점을 향해 있다. 학교도 다르지 않다. AI가 써준 초안을 고쳐 제출한 과제들이 문체는 달라도 논지의 뼈대가 서로 너무 흡사하다. 모두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같은 AI의 그림 위에서 색만 바꿔 칠한 셈이다. 우리가 맥락 없이 AI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평균의 답을 받는다. 평균의 답이 쌓이면 평균의 생각이 된다. 독창성의 위기는 표절이 아니라 이 수렴에서 온다.
발명은 평균 밖에서 시작된다. AI가 아직 충분히 학습하지 못한 것, 아직 패턴으로 굳지 않은 것에 가닿으려면 AI가 제시하지 않은 방향을 먼저 탐색해봐야 한다. 텍스터는 AI가 그린 지도를 들고 출발한다. 컨텍스터는 지도가 없는 곳을 먼저 걷고, 나중에 AI에게 그 길을 그려달라고 한다. 두 사람이 같은 AI를 써도 결과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AI에게 넘긴 첫 질문을 떠올려보라. 그 질문을 입력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물어본 것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우리는 AI를 도구로 쓴 것이다. 없었다면, 생각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