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2006년 출판계에는 칙북(chick-book) 열풍이 불었다. 20~30대 여성 독자들을 재조명하며 사회문화 트렌드의 중심으로 이끈 칙북 열풍의 중심에는 『여자생활백서』가 있었다. 40만 부 이상 팔리며 올해의 책(북새통 선정)으로 선정된 이 책은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소설 ‘칙릿(chick-lit)’과 함께 현재까지 많은 여성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자생활백서』의 저자 안은영은 이제 ‘여성자기계발서’를 통해 일방적인 충고를 늘어놓는 것을 거부한다. 대신 ‘여성을 위한 소설’, 『이지연과 이지연』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쿨하고, 짜릿하고, 공감되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이 책은 기존의 정형화된 여성성공담에서 벗어나 쿨하면서도 다정한 조언을 건넸던 그녀답게, 딱 현재 20~30대 여자들의 풍경을 담은 상큼한 소설이다. 가식과 무게를 벗어던지고 이 시대 20~30대 여성들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던 전작과 같이 그녀들의 고민과 속내에 귀 기울이고, 모두가 성공할 수 없지만 열심히 살아갈 뿐이라는 전작의 따뜻한 눈높이는 유지하되,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좀더 술술 읽히면서 더욱 짜릿하고 재미있게 구성했다.
누군가 물었다. 당신의 20대는 어땠나요? ‘그것은 이랬습니다’ 식으로 자신의 20대를 허심탄회하게 진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황홀했다가, 팽팽했다가, 지루했다가 불현듯 스물아홉이 되고 서른 살이 돼버린다. 당황스러운 일이다. 쉼표 사이마다 이끼처럼 뿌리내리는 오만가지 감상과 에피소드는 어쩌라고. 당신의 30대는 행복한가요, 라는 물음도 비슷하게 무책임하다. ― 저자의 말 중에서
특히 더욱 빛을 발하는 섹시하고 거침없는 입담과, 내면에 감춰둔 이야기를 누군가 대신 들려주는 듯한 카타르시스, 같은 이름에 다른 나이대를 살아가는 두 주인공이 번갈아가며 풀어내는 흥미진진한 일상사, 우리네 인생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주인공들의 다양한 변화들에 독자들은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유행처럼 쏟아지는 칙릿 중에서도 유독 여성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될 것이다.
■ 스물일곱의 절대사랑주의자와 서른넷의 사랑기피자가 만났다
“서른을 남긴 여자들은 자신이 가장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이십대를 건너왔으며 그 시간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십대는 어리고 세상을 잘 알지 못하며 불안하다고 마음대로 평가해버린다.” (19쪽) 20대 여자들은 30대 여자들을 보며 저렇게 늙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십대보다 삼십대가, 삼십대보다 사십대가 더 윤기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비로소 삼십대에 하게 되니까 삼십대 여자들이 말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십대엔 이십대가 영원할 줄 알기 때문에 주름이 늘고 노회해지는 삼, 사십대를 머릿속에 들이지 않는 것일 뿐.”(109쪽) 30대 여자들은 20대의 탱탱하고 맑은 피부, 그들에게 또래의 남자들을 빼앗기는 불쾌한 진실 앞에서 지나버린 청춘과 잃어가는 젊음을 실감하며 그녀들을 질투한다.
이 책에는 스물일곱 살의 이지연과 서른네 살의 이지연이 등장한다. 한 명은 결혼과 사랑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랑지상주의자, 한 명은 이제는 사랑보다 일이 편해진 사랑기피자. 이지연과 이지연은 요가 스튜디오에서 강사와 회원으로 처음 마주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이 차이보다 더 많이 차이나는 가치관과 세계관 때문에 서로 이물감을 느끼고 불편해한다.
스물일곱 살 이지연, 사랑밖에 난 모르는 절대사랑주의자
내 이름은 이지연. 스물일곱 살의 요가 강사다. 평범한 부모 밑에서 속 썩이는 일도, 그렇다고 자랑삼을 일도 없이 그럭저럭 커왔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 역시 무난하게 흘러갈 것 같다. 이를테면 2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그의 아이를 낳아 그의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 사는 것? 그런데 이 남자, 막상 결혼하기는 무섭단다.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책임져야 한다는 게 겁이 난단다. “사랑해, 지연아. 이건 믿어야 해.” 사랑하지만 결혼하기는 싫다는 건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나서 알았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하지만 너는 오로지 네 기분, 네 감정뿐이야! 나는 너와 사랑하는 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어.”
나는 이제 내가 믿었던 남자, 무난하고 평범하게 흘러갈 거라 생각했던 내 세계에서 완전히 소외돼 버리고 말았다.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또박또박 홀로 걸어가야 하는데, 내가 그렇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나는 아직 하나도 모르겠다.
서른넷 이지연, 사랑보다 일이 편해진 사랑기피자
내 이름은 이지연. 서른넷의 홍보대행사 실장이다. 미혼이고 애인마저 없다. 그렇다고 급하게 결혼하고 싶진 않다. 나는 오늘도 에스테틱에 가까운 원나잇 스탠드를 즐긴다.
성공을 하고 싶다거나 워커홀릭으로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 나이와 이 위치를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골드미스라고 하고 후배들은 독하다고 뒷담화를 하지만 알고 보면 옛날 남자친구는 열 살이나 어린 꽃미녀에게 장가가고, 결혼 전엔 나에게 학습 받아가며 연애하던 것들이 이젠 아이들 자랑 남편 자랑에 여념이 없고 “너는 결혼 안 하니?” 걱정스레 묻는다. 나는 연애에 진력이 났다고 말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사랑에 있어 내 문제점을 똑바로 목도하고 나니 모든 것이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내 손을 아무렇지 않게 쥐는 그 남자에게서 손을 빼지 못한 것은. 아, 어쩌면 좋아. 클라이언트와 잤다.
겨우 한 남자에게 심장이 떨린다고 느끼는 순간, 역시 세상은 서른네 살 먹은 올드미스에게 녹록치 않다. 그 남자에게는 결혼할 여자가 따로 있다고 하고, 어린 남자애가 좋다고 덤벼들고, 아끼는 후배와 삼각관계에 빠져들고, 자궁까지 망가져버렸다. 나이가 들면 온몸의 물기가 다 빠져나가서 다시는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눈물이 난다.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던 두 사람은 자신이 굳건히 지켜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죽 지속될 거라고 가치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건사고들을 거치면서 혼란에 빠진다. 사랑밖에 모르던 이지연은 더 이상 사랑을 믿을 수 없고, 사랑보다 일이 더 편해졌다고 믿었던 이지연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연애 감정에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일상과 현실을 되찾을 수 있을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지연과 이지연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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