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회색 코뿔소가 오고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은 지난 7일 창립 65주년을 맞이해 이같이 말했다. 회색 코뿔소는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요인을 뜻하는데, 신창재 대표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룹 수장이 혁신을 주창하자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 채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기존 생명보험 중심 사업 영역을 넘어 비보험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신성장 동력 확보에 나섰다. 지주사 전환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3세 경영 승계구조가 마련되고 있다는 시각이 수면 위에 떠오른다.
◆자산운용사 인수는 1호 신호탄…손보사 매물도 만지작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내년 하반기 금융지주사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체투자 전문운용사 파빌리온자산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한 데 이어 MG손해보험, AXA손해보험 등 손해보험사를 꾸준히 인수 물망에 올리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주사 전환 과정은 교보생명이 보유한 자회사 주식과 현금을 분할해 지주사를 꾸린 뒤 유상증자를 통해 교보생명을 신설 법인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오는 16일 교보그룹은 금융복합기업감독법에 따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지배구조와 자본적정성 등을 점검받는다. 검사는 9월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금감원은 올해 첫 검사 대상으로 교보그룹을 꼽았다. 지주사 전환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업계는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다양한 포트폴리오 확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현재의 사업구조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주력사업인 생명보험 사업은 2015년 이후 꾸준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출산률 저하 등의 이유로 생명보험 사업의 저성장 장기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진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가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 교보생명
이에 교보생명은 지난 4월 파빌리온자산운용을 350억원에 인수했다. 사명을 교보AIM자산운용으로 새롭게 바꿔 달면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첫 발을 뗐다. 비보험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은 물론 주주 가치를 제고한다는 복안이다.
올해 교보AIM자산운용은 블라인드펀드 운용자산 규모를 1조5000억원을 설정했다. 부동산·인프라·기업금융 등을 투자 포트폴리오로 삼고 비보험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대체투자 시장에서 경쟁력을 크게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그룹 내 중점적인 역할을 담당할 전망이다.
신창재 대표는 윤리ESG 포럼에서 "파빌리온자산운용 인수가 1호 신호탄"이라며 "앞으로 비보험사 쪽 관계사로 교보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것이다"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나아가 교보생명은 손보사 인수카드도 꾸준히 만지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달 20일 이사회를 개최, 손보업 진출을 공식화한만큼 손보사 인수는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현재 교보생명은 MG손보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최근까지 교보생명이 카카오페이손보 지분을 인수한 후 양사가 함께 AXA손보(옛 교보자동차보험)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했다. 예상 매각가는 3500억원 수준으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AXA손보 인수를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인수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페이손보와 교보생명은 AXA손보의 기업가치와 수익성 평가 등에서 큰 의견 차이를 보였다.

교보생명이 손해보험사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 ⓒ 교보생명
특히 AXA손보의 임직원 1인당 순이익이 업계 평균에 크게 미달하면서 매력도를 떨어뜨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AXA손보의 지난 1분기 말 기준 1인당 순이익은 6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기간 손보사 31곳의 1인당 순이익 평균이 5600만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크게 낮은 편이다. 결국 가격협상 결렬로 이어졌다.
최근 교보생명은 MG손보 인수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MG손보의 1인당 순이익은 1700만원으로 AXA손보의 2배를 훌쩍 넘을 뿐 아니라 매각 적정가치 또한 3000억원 수준으로 합리적인 판단에서다.
그러나 MG손보는 부실금융기관 취소 소송을 두고 1심 판결이 연기되고 있어 실제로 교보생명의 인수로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해당 소송은 법원이 MG손보 경영권을 예금보험공사와 대주주 사모펀드(PEF) JC파트너스 중 어느 쪽에 맡길 것인지가 골자인데, JC파트너스 쪽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면 매각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판결은 내달 1일 나올 예정이다.
◆인본주의 경영 강조…기업 정체성 확보 총력
지주사 전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신창재 대표는 '인본주의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순조로운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명확한 기업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신 대표는 ESG 경영 강화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올해에만 대국민 환경보호 캠페인을 세 번 실시했다. 2021년 탈석탄 금융을 선언한 데 이어 올해 13번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가 지난달 27일 하반기 경영설명회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교보생명
보수적인 업무문화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최근 신창재 대표는 사내 MZ세대 직원들과 만나 세대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65년 만에 직급 대신 영어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이다.
신창재 대표 본인 역시 호칭 정리에 나서는 듯하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대외적으로 회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회장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권위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교보생명의 적극적인 ESG경영 활동은 주주 인식 제고와 원활한 지주사 전환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나아가 신창재 대표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 승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룹 핵심 키워드 '디지털 혁신'…장·차남 모두 디지털 전문가
업계는 이같은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 과정이 장기적으로는 경영승계와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지주사 전환이 교보생명 중심의 지배구조 확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에 따라 신 대표의 장남과 차남 신중하, 신중현 씨를 향해 자연스레 시선이 몰린다. 두 사람은 신 대표의 핵심 사업 키워드인 '양손잡이 전략'의 요직을 담당하고 있다. 양손잡이전략은 디지털 전환을 기반으로 한 보험사업 혁신과 신성장 동력 확보를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그룹의 사활을 건 핵심 전략이다.
장남 신중하(1980년생) 씨는 현재 교보생명에서 그룹데이터전략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향후 지주사 전환 과정에 있어 계열사 간 데이터 연계작업 등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전망이다.
차남 신중현(1983년생) 씨는 디지털 생명보험사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에서 디지털혁심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의 펫보험 전문 인슈어테크 '스몰티켓' 투자에 중대한 결정을 끼쳤다는 후문이다. 교보라이플래닛생명 자회사 포트리스이노베이션 기타비상무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이 경영 승계와도 관련 있다는 내용에 대해 교보생명측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은 기존 생명보험사업에 국한됐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며 "경영 승계와는 관계없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