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향한 글로벌 선사의 러브콜이 쇄도하자, 핵심 설비를 국산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LNG 운반선은 국내 조선 3사의 대표적 고부가 선박인데, 핵심설비인 '화물창' 기술의 국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외국 엔지니어링 업체로부터 로열티를 지급하면서 사용한지 30년이 넘게 흘렀지만 '기술 독립'은 요원하다.
◆GTT 라이센스 횡포…국내 조선사 곡소리
화물창은 LNG를 운반하는 보관창고다. 영하 162℃의 극저온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내부 온도가 높아지면 가스가 팽창해 폭발까지 이어질 수 있어 고도의 기술력을 요한다. 액체상태인 LNG가 흔들리면서 발생하는 슬로싱(Sloshing) 현상까지 최소화해야 한다. 충격 하중으로 화물창이 손상될 수 있어서다.
그러나 기술적 난제로 좀처럼 국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내 조선사들은 프랑스 엔지니어링 업체 GTT로부터 라이센스를 구매해 선박을 제조하고 있다. 선박 한 척당 라이센스 비용은 선가의 5% 수준이다.

HD한국조선해양이 건조한 멤브레인 LNG선. ⓒ HD한국조선해양
국내 조선사들이 2022년 수주한 LNG 운반선 믈량은 총 121척이다. 지난해 17만4000㎥급 LNG 운반선의 신조선가 평균은 2억3316만달러다. 선박 크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단순 계산 시 약 14억달러를 로열티로 지불한 셈이다.
올해 1분기에도 라이센스 발급 비용으로 지급한 금액은 9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측정된다. 수주호황에도 흑자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사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1위인 HD한국조선해양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585억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조선사들이 GTT에 지급하는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며 "가격 협상력에서도 지속적으로 열위에 놓이면서 제대로 된 손익을 맞추기도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GTT가 화물창 기술 특허 외에도 다른 서비스를 끼워 파는 등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GTT는 국내 조선사에게 기술 라이선스 외에도 기술 지원 서비스 등 부가서비스 구매를 강제해왔다.
이에 2020년 11월 한국공정거래위원회가 GTT에 LNG 화물창 관련기술 끼워 팔기를 금지하면서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GTT가 불복하면서 관련 분쟁은 대법원으로까지 넘어갔다. 3년 가까이 이어진 분쟁은 지난 17일 대법원 판결로 GTT 패소가 확정됐지만, GTT의 협상력은 여전히 크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GTT의 마크 3 기술 개념도. ⓒ GTT 공식 홈페이지
아울러 GTT는 최근 중국 업체로까지 발을 뻗으면서 국내 업체가 주도하던 LNG 운반선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해 GTT가 △장난 △다롄 △CMHI장쑤조선소에 화물창 라이선스를 발급하기로 하면서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은 55척의 LNG 운반선을 수주하면서 2021년 8% 정도에 불과했던 점유율을 30%로 끌어올렸다. 중국은 올해 LNG 운반선 건조 능력을 연간 최대 30척 수준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980년대 LNG 운반선 기술력이 없었던 국내 조선사들이 GTT와 협업하면서 큰 도움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라면서도 "당시 협업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GTT가 갑이 돼버린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조선사들이 중국과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GTT는 엄청난 순익 가져가고 있다"며 "국내 조선사들이 GTT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산화 과제 산적…"개발 성공은 액화가스 기술력 지표"
국내 조선사도 화물창 개발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한국가스공사와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는 2014년 한국형 화물창 개발업체 케이씨엘엔지테크(KC LNG Tech)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면서 기술 개발을 진행해왔다.
오랜 개발 끝에 KC-1 화물창 기술을 2018년 상용화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화물창 냉기가 선체로 전달되는 '콜드스폿' 현상이 생기면서 수리를 반복하는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속은 일정 온도 이하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깨짐 현상이 발생한다. 선박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선체가 파손될 수 있다.

KC-1 화물창 내부 모습. ⓒ 케이씨엘엔지테크
안전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이를 두고 한국가스공사·SK해운과 선박을 건조한 삼성중공업(010140)이 2000억원 규모의 소송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형 화물창 개발은 보냉 성능과 LNG 기화율을 낮추는 등 기술적 난도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으로 꼽히지만, 이밖에도 여러 걸림돌이 상존해 상용화에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GTT의 특허를 피해 개발해야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TT가 기자재 공급업체 등 관련 제조사들을 직접 관리하고 있어 개발 조직을 구성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국산기술에 대한 선주사들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도 핵심 과제다. 화물창이 적용되는 선박 자체가 고가인 만큼, 선주 입장에서는 국내 기술을 도입하는 데에는 리스크를 감안해야 한다.
결국 기술 신뢰도가 중요한데, 국산형 화물창은 실물 시장에서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실제 양산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해 중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KC LNG Tech는 기존 화물창의 기화, 결빙 문제를 보완한 2세대 화물창 KC-2를 개발한 상태다. 지난 2월경 KC-2B가 적용된 7500㎥급 벙커링 전용선을 미상의 선사에게 인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까지 별다른 기술적 이상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C-1 기술이 최초로 적용된 SK세레니티호. ⓒ SK해운
그러나 탑재된 화물창은 7500㎥로 주력 선박 17만4000㎥에 크게 못 미친다. 대형 화물창 설계는 또 다른 기술 영역으로 여겨진다.
업계는 국산 화물창의 기술 개발이 이뤄진다면, 차세대 에너지원 기술 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화물창 기술 개발은 곧 극저온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저장 기술을 보유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다.
궁극적인 친환경 연료로 꼽히는 액화수소 역시 영하 253℃를 유지해야 해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SK 등 대기업이 나서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은창 연구원은 "화물창 기술 개발은 극저온에 대응할 수 있는 액화가스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며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면 국내 조선사 기술력에 대한 신뢰성 제고와 더불어 관련 기술 개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암모니아, 수소 등에도 활용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액화수소 개발 속도를 앞당길 수도 있다고 본다"며 "국가 차원에서도 차세대 에너지 원천기술 확보할 수 있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