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미국 대공황을 야기시킨 1929년의 주식시장 대 폭락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수 백만 명의 투자자들은 며칠 사이에 그들의 직업과 재산을 잃었다.
그들의 대박 꿈이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때, 찰스 메릴(Charles Merrill)은 바야흐로 다가올 시대를 위해 뛰기 시작했다. 바로 ‘자본주의 꽃’이라는 주식거래를 보통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대중화시킨 것이다.
1909년, 메릴이 뉴욕의 조그마한 채권판매 회사인 조지 버(주)(George H. Burr & Co.)에서 직원으로 일했던 당시만 해도 주식거래는 주로 최상층 계층에서만 이뤄졌다. 또한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 Exchange commission)가 설립되기 이전의 주식시장에는 프로모터(흥행꾼)와 같은 악덕 베테랑들로 넘쳐났다.
그러한 상황에서 메릴은 채권 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나, 그에게 딱 한가지 괴로운 업무가 있었다. 직무상 파산직전에 있는 회사의 주식을 고객들에게 내밀며 “유감스럽지만 고객님은 알거지가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전할 때였다.
일에 넌더리가 난 메릴은 회사를 그만뒀고, 2년 후 탄산음료 장비 판매원으로 일하던 룸메이트 에드먼드 린치와 함께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메릴의 주요 투자 종목은 크레기(오늘날 K마트), J C 페니 같은 체인점으로 1920년대에 호황을 타고 급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1929년 가을 증시가 이상 과열됐다고 판단, 주식은 물론 거래소 회원권마저 팔아 치우며 주식시장에서 은퇴했다. 대공항 속에서도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었던 안목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0년 뒤인 1938년, 메릴은 새롭게 메릴 린치 피어스 페너 빈(Merrill Lynch Pierce Fenner & Beane)을 출범하면서 증시에 복귀한다. 미국 증권중개 및 리서치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메릴린치의 시초가 된 회사가 탄생한 것이다.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 메릴은 우선 자기 회사 소속 중개인들에게 수수료가 아니라 임금을 주기 시작했다. 또한 업계 최초로 금융상담사 양성소를 열었고, 광고의 중요성도 간과하지 않았다.
1948년, 투자자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그가 내건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주식, 채권산업’란 광고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를 통해 6개월 간 6,000개의 문의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또한 1949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사무소에서 여성을 위한 투자세미나를 열었는데, 8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줄지어 참가를 희망했다고 한다.
1961년, 메릴은 월가 최초로 회계연도와 연감을 발표하며 파트너와 매니저에게 9개의 지침을 내렸다. 그 중 “우리는 고객의 이익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를 가장 중요시 여겼고, “조사하라. 그리고 나서 투자하라”는 말을 투자자들에게 잊지 않고 전했다.
이처럼 대중을 상대로 주식투자의 중요성을 알린 결과 찰스 메릴이 사망할 당시인 1956년, 그는 미국에서 약 50만 명의 고객을 거느린 가장 큰 주식 중개인이 됐으며 그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가 남긴 주식시장의 대중화를 통해 현재 미국은 국민 50% 이상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하이리치(
www.hirich.co.kr)는 이와 관련해 “스테그플레이션과 신용경색 우려, 환율불안 등 불확실성이 팽배한 현 시점에서는 찰스 메릴과 같이 시장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적절한 투자전략을 세워야 한다” 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