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김정은이 당 3차 전원회의에서 "대화와 대결에도 다 준비돼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대미입장의 일부 표현에 대해 미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흥미롭다며 대화를 기대한다"고 반응했다.
그러자 김여정이 "꿈보다 해몽"이라며 "잘못 가진 기대"라고 미국을 비아냥댔다. 이어서 외무상 리선권은 "아까운 시간을 잃는 미국과 접촉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김여정의 주장을 환영한다"고 동조하는 담화를 냈다.
이른바 백두혈통 실세에 의한 북한판 하향식 대미 담화정치가 재개된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이 다시 한번 흥미롭다고 말할 만도 하지만 전략적으로 인내하는 듯하다.
북한의 이러한 담화정치는 그들이 내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로 자신들에게 넘어온 미국의 공을 재빠르게 되돌려줌으로써 향후 기싸움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간을 끌며 상대를 초조하고 피로하게 만들어 몸값을 올리려는 북한의 전형적인 대미 협상전략이기도 하다.
사실 미국이 발표한 대북정책 3가지 원칙(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외교와 억제, 실용적 접근)에서 핵무기를 거머쥔 김정은이 순수하게 대화에 나설 당근은 아직 식별된 바 없다.
손익계산에 능숙한 북한에게는 실익이 될 것이 아직 하나도 없다는 의미다. 오히려 김정은은 바이든 정부가 자신들의 핵·미사일 위협의 실체를 오바마나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 심각하게 알아주고 대화를 우선적으로 시작하려 하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의 취약점을 내심 잘 이용할 수 있는 호기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아직 3중고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후원자인 중국이 지원신호를 보내고 있고, 바이든 정부가 한국과의 동조 하에 자신들을 유화적으로 대하는 현시점에 굳이 미국의 부름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혹자들은 김정은이 언급한 '대화와 대결에도 다 준비돼있어야 한다'는 문구만 꼬집어 대화 가능성을 희망적으로 해석했지만, 우리는 김정은이 "전략적 지위와 능동적 역할을 더욱 높이고 유리한 외부환경을 주동적으로 마련해 나가야 한다"라고 언급한 대목에 주의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전략적 지위'는 '핵보유국 지위'를 의미한다. 핵보유국인 북한이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미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북핵 비핵화'라고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북한에게는 '북핵 비핵화' 의미가 아니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철폐와 한미연합훈련 중지 그리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라는 의미가 전략적 지위(핵보유국) 개념 속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김정은은 반복되는 미국의 대화 요청 제의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판단하는 명분으로 활용하여 '정세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은 희망대로(wishful thinking)만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평창올림픽 때처럼 북한이 불리해질 때마다 종종 위장평화 공세로 태도를 갑작스럽게 변화시킨 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을 가진 김정은은 바이든 정부와 대화에 나서기 전에 중국으로부터 식량과 경제 그리고 백신지원 확보가 더 급한 상황이다. 북한에게는 바이든 정부와의 비핵화 대화가 시급한 것보다 내부 민생경제 안정과 자력갱생의 성과에 도움이 되는 외부의 물밑 지원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자신들의 대북정책이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도 트럼프의 일괄타결도 아닌 '새로운 전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중국이 북한의 불안정을 막기 위해 식량과 경제원조를 제공하여 북한을 자기편에서 관리하려는 의도 이상의 전략으로 북한에게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새로운 대북전략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라 북한 편에 있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인 전략국가로 지정학적 지위가 미국과 대등하게 됐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붕괴되지 않을 만큼의 경제원조를 중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경학적 유리점을 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 비핵화'에 실패할 경우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 비확산 체제가 약화되고 동아시아와 중동지역은 핵도미노의 늪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우리 모두가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 명지대학교 북한학 초빙교수 /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미국 상대하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