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정부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등에 적극적인 자금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원에 나선 시중은행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눈 앞에 닥친 국난을 함께 극복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원 규모가 계속 커지다 보니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고조된 탓입니다.
은행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 잔액의 비율을 일컫는 '예대율'입니다. 은행 경영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쓰이는 이 예대율이 금융당국의 규제 수준인 100%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은행의 재정 건전성이 좋지 않다는 신호입니다.

10년 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불안감을 느낀 은행들은 다양한 예금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연합뉴스
10년 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며 경제 둔화 현상이 대두됐습니다. 당시에도 금리가 그리 높은 건 아니었지만 불안감을 느낀 이들이 예금상품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옮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의 다양한 특판예금이 고객 유치 역할을 톡톡히 해냈죠. 덕분에 시중은행의 총수신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이와 함께 기업 대출은 크게 줄었습니다.금감원에 따르면 2010년 8월까지 시중 은행의 기업대출 누적액은 3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9조원 대비 크게 줄었던 셈이죠. 높은 금리와 자금사정 개선 등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수요 감소가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주택담보대출액도 7월까지 11조2000억원을 기록, 2009년 같은 기간의 18조1000억원 대비 30%이상 줄었습니다. 아울러 만기를 채운 은행채 상환도 부쩍 늘었습니다.
예금은 늘고 대출은 줄어드니 자연스레 은행들의 예대율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예대율이 130%에 육박했던 것을 고려하면 불과 2년만에 은행 자산 건전성이 빠르게 개선된 것입니다.
2010년 8월 말 예대율(CD 제외)은 신한은행이 97.48%, 우리은행이 97.9%로 100%를 밑돌았습니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102.5%, 106.27%로 100%에 육박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반전됐습니다. 주요 은행들의 예대율 관리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출이 폭증했고, 만기를 연장하거나 이자를 유예해주면서 은행이 져야 할 부담은 크게 늘었습니다.
여기에 제로금리 상황까지 겹치면서 은행 예금이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고, 결국 예대율은 100%를 훌쩍 넘기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KB국민은행의 예대율은 94.1% 수준이었지만, 코로나 대출이 본격화한 1·4분기 98.3%로 올라선 후 2·4분기에는 100%를 넘어 100.4%를 기록했습니다. 신한은행도 같은 기간 4.0%p 상승한 98.5%를, 하나은행은 3.1%p 상승한 97.6%를 기록했습니다. 93.4%로 안정권인 농협은행마저도 4.5%p 급등했습니다.

10년이 지금, 주요 은행들은 코로나19 여파로 대출이 폭증했고, 제로금리까지 겹치면서 예대율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 연합뉴스
은행들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예대율 규제 강화에 대비해 수신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제로금리 상황이 계속되면서 예·적금의 투자 매력이 크게 떨어진 데다 부동산 시장 광풍과 동학개미운동으로 부동자금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수신 규모가 크게 줄었습니다.
올 7월 수시입출식 예금·정기예금 등 은행수신은 17조3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6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을 보면 한 달 동안 정기예금에서만 10조원이 넘는 돈이 빠져나갔습니다.
결국 은행들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대출 총량을 줄이는 것 뿐입니다. 예대율을 낮추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사실상 없다는 말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 정책에 따라 소상공인 대출을 줄일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전세자금 대출, 신용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대율 규제가 일시적으로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출을 늘릴 수는 없다. 수신액이 줄어들고 있어 나가는 돈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정책 방향을 따라 발을 맞추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대응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요구하는 은행의 역할과 책임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도 규제 완화라는 당근을 건네며 은행들이 실물경제에 유동성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하고 있죠. 은행들에게는 어쩌면 짧을 수도 있는 이 완화 기간 동안 다시 시작될 규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