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경제계에선 3월을 '주총 시즌'이라고들 합니다. 기업들의 주주총회(株主總會)가 집중되는 시기라는 뜻이죠. 주총은 '주식회사 주인인 주주'가 참석하는 회의로 회사의 중요 사항을 의결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이며, 주주의결권은 '1주(株)1의결권'이 원칙입니다. 과거 주총에선 위임장을 통한 의결권 대리행사가 가능했지만 이 제도가 폐지된 이후 전자투표 확산되면서 '대주주의 잔치'쯤으로 여겨졌던 주총의 모습도 점차 달라지고 있습니다.

1999년 오전 전경련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대우전자 정기 주주총회에 모습. ⓒ 연합뉴스
10년 전 오늘 3월9일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본격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주총 일정을 알리는 공시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요, 당시 주총은 주주의 직접 참석이 어려울 경우 위임장을 통해 대리행사를 할 수 있는 섀도보팅(shadow voting)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섀도보팅은 그림자 투표 즉 의결권 대리행사제도입니다. 의안 결의에 필요한 참석주식수가 부족해 주총이 무산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죠. 한국예탁결제원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허용한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섀도보팅은 소수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주주 우선 경영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기업이 소액주주의 주총 참석을 독려하기보다 섀도보팅을 이용해 쉽게 정족수를 확보하려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죠.
실제 당시 상장폐지됐거나 진행 중인 기업 상당수가 이 제도를 악용해 수년간 부실하게 주주총회를 치러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기업 투명성이 낮고 경영 상태가 불량한 기업일수록 주총 홍보를 최대한 축소하고 섀도보팅을 통해 대주주의 의중대로 주총을 끝내는 데 주로 활용했습니다.
이는 주주들의 참여가 극히 저조해도 주총 성립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주들의 감시를 느슨하게 했고, 결국 상장폐지 같은 극단적 폐단의 한 원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당시 섀도보팅의 제도적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따라 예탁원 전자투표가 도입됐지만 2010년 시행 후 4년간 전자투표를 도입한 회사는 79곳에 불과했고, 섀도보팅 제도 또한 계속 유지됨에 따라 전자투표는 활성화 단계까진 이르진 못했습니다.
이후 2017년 섀도보팅이 폐지되면서 전자투표는 점차 관심을 받기 시작합니다.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감사 선임에 실패하는 기업들이 속출하면서 가급적 많은 주주의 주총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전자투표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죠. 2018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 투자자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도 전자투표 확산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로써 지난해 예탁원을 통해 정기 주총에서 전자투표를 이용한 회사는 581개로 전년보다 12.4% 증가했고, 의결권을 행사한 주주는 10만6259명으로 지난해(3만6141명) 대비 194%나 급증했습니다.

2017년 영등포구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열린 전자투표·전자위임장 모바일 서비스 오픈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서비스 시연 화면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에 더해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기업들이 주총에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적극 활용하려는 분위기가 나타났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주주들의 전자투표·서면투표와 전자위임장을 활용을 당부하고 나섰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주주들은 주총장에 직접 출석할 필요 없이 본인 인증만 하면 모바일이나 PC로 특정 안건에 찬성이나 반대를 표시할 수 있고, 기업은 전자투표 제도를 통해 주주들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수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코스피 시가총액 1위 대장주 삼성전자가 올해 전자투표 도입을 확정하고 삼성물산도 전자투표 시행을 결정하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현대차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도 전 계열사에 전자투표를 적용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SK그룹은 핵심 계열사 위주로 전자투표를 도입했고,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은 주총 공고에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장에 대한 설명과 함께 활용을 당부했습니다. 롯데그룹 또한 전자투표제 확대 도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주주 숫자만 합쳐도 100만명을 훌쩍 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주총에선 수십만명이 전자투표에 참여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실제 이달 정기 주총 시즌 전자투표제를 운용하는 상장사가 크게 늘 것으로 보이는데요, 예탁원에 따르면 올해 예탁원 주총 전자투표 시스템(K-eVote)을 이용하기로 계약한 상장사는 총 1217개사(유가증권 367개, 코스닥 850개)로 전체 상장사(2108개사)의 58%에 달합니다. 코넥스 기업과 비상장사까지 포함하면 총 1331개사가 계약한 상태로 집계됐습니다.
전자투표 방식 또한 지난해보다 쉬워졌습니다. 본인 확인을 위해 공인인증서가 반드시 필요했던 작년과 달리, 지문인증, 비밀번호 등 간편 인증이 가능합니다. 1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됨에 따라 주주의 휴대전화, 이메일을 통한 전자투표 일정 알림 서비스도 제공되죠.
주주는 전자투표 관련 주총 소집통지 내역을 확인하고 각사 전자투표 시스템에 로그인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요, 투표는 주총일 10일 전부터 전일까지(공휴일 포함)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참여(마지막 날 오후5시) 기능합니다. 또한 주주는 전자투표 내용을 변경, 철회할 수도 있으며, 주총이 끝난 뒤 1~7일 동안 주총 결과를 확인 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