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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불꽃처럼 살다 간 신의 아들 ‘빈센트 반 고호’

 

최보기 칼럼리스트 | thebex@hanmail.net | 2011.10.21 15:15:56

[프라임경제] 탕! 한 방의 권총소리.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은 열강의 땅 따먹기를 위해 1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열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은 유신독재를 마감하고 민주국가로 거듭나는 고달픈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1890년 7월 27일, 파리 오베르 언덕에서 울린 권총소리는 불꽃처럼 살던 신의 아들 ‘빈센트 반 고호’가 신의 품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의사 갓셰의 발언대로 ‘인류 복지에 커다란 손실을 입힌 날’이 되었다.

원래는 이 책을 쓰려던 것이 아니라 폴 고갱을 모티브로 삼은 서머 셋 모옴의 ‘달과 6펜스’를 쓰려고 했었다. 때문에 고갱과 고호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참고서적으로 뒤따라 읽은 것이었는데 앞뒤가 역전돼 버렸다.

역시 픽션 열 개의 감동이 논픽션 한 개의 감동을 못해본다. ‘달과 6 펜스’는 40세 금융맨, 찰스 스트릭랜드가 온전한 직업과 처자식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가난한 화가로 커밍아웃을 선언한, 고갱을 모티브 삼았을 뿐 디테일은 말 그대로 소설인 반면 ‘빈센트 반 고호’는 S.폴라첵이 고호의 편지와 주변 인사들의 기록을 기초 데이터로 소설화 함으로써 거의 전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에크시투스. 고호를 마지막까지 돌보던 의사 갓셰가 ‘사망’을 선언했다. 37세, 그림의 신이 들려 정신이 분열된 화가의 불꽃 인생을 그린 책이 접혔다. 필자는 ‘책보기’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가냘프게 쪼그려 앉은 순백의 청년, 맑은 영혼의 소리가 ‘너는 지금까지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았느냐’는 회한으로 차곡차곡 쌓였다가 마침내 그의 장렬한 죽음 앞에서 속절없이 터져버린 것이다.

18세 즈음부터 37세까지 20년, 그림을 향해, 파리 몽마르뜨를 향해 몸서리 치도록 고뇌와 고난을 자초했다. 테오가 돈을 보내면 이번엔 제대로 먹을 것을 사겠다고 하면서도 돈이 오자마자 화구에 써버리고 또 다시 굶주리는 사나이, 빵 한 조각과 물로 일주일을 버티면서 그림에 온 정열을 쏟다가 마침내 거리에서 혼절해 버렸다.

정신이 들어 지나가던 행인들이 던져놓은 동전을 걷어차며 ‘참된 예술가가 거지가 되다니!’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는 청년.

처음으로 200프랑의 거금에 초상화를 의뢰 받고도 ‘모델이 생긴 대로, 화가의 줏대 대로’ 그렸다가 결국은 “아, 그냥 남들처럼 예쁘게 대충 그려주고 돈 좀 챙기지, 제발!” 하는 안타까운 필자의 탄식이 절로 나오게 했던, 고귀한 정신의 역발산 기개. 역시나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는 것’이었다.

고호의 테오였으면 좋겠다. 일찍이, 유일하게 형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끝까지 변치 않는 우애와 후원을, 죽음까지 함께, 오베르 공동묘지에 나란히 묻힌 테오이고 싶다. 고갱이 미워졌다. 고호 못지 않는 외고집, 정치적 코멘트에 인색했던 결국은 고호가 스스로 귀를 자르게 만든 원인 제공자 고갱.
그 역시 현실 6펜스의 고난을 마다 않고 과감하게 달을 선택하는 극적인 삶을 살았음에도 두 책을 함께 읽게 되면 아무래도 그가 턱없이 손해를 보는 형국이 돼버린다. 아무려면 어떠랴. 고호에게 고갱은 동료이자 큰 스승이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 고호가 자른 귀는 왼쪽 귀인가, 오른쪽인가. 그리고 영원의 안식처 몽마르뜨를 향하는 고호의 몇 푼 방세 대신 100점이 넘는 그림을 압수, 제발 그림만은 소중하게 다뤄 달라는 고호의 울부짖음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마대자루에 그림을 쓸어 담았던 물감집 주인은 고호가 죽은 이후 얼마나 벼락부자가 되었을까.

고호의 유언으로 이름에서 빈센트를 떼어 낼 어린 빈센트, 테오의 아들, 고호의 조카는 요절한 삼촌과 아버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가 궁금한 필자는 영락없는 속물이다.

   
 
‘빈센트 반 고호’는 특별히 ‘최기원’님의 번역본을 권한다. 읽어 보면 안다. 번역도 예술이라는 것을. 오늘은 송고 후 특별히 술 한 잔 해야겠다.
‘위대한 정신 고호, 고갱을 위하여! 내 동생 삼고 싶은 테오를 위하여! 넋 놓고 울어버린 어느 독자를 위하여!’

최보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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