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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프라임경제 | webmaster@newsprime.co.kr | 2011.09.21 17:26:55

[프라임경제]동화라면 일단 우습게 보는 어른이야말로 우습다. 그런 어른들을 위해 생택쥐뻬리는 ‘어린 왕자를 지금은 어른인 레옹 베르트의 소년 시절에게 바친다’면서 어린이들에게 용서부터 구했다. 어린이들 읽게 하려고 쓰이는 것이 동화지만 사실은 세파에 닳고 닳은 어른들이 읽고, 느끼고, 깨우쳐야 할 것들이 명쾌하게 제시되는 것 또한 동화이기도 하다.

   
 

‘독자를 긴장시키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짜임새 있는 문학적 장치’라는 문학가의 추천 평론과 달리 필자가 상정하는 이 동화의 메시지는 두 가지, 어머니와 꿈이다. 어머니는 사랑, 헌신, 희생, 그리고 꿈은 도전과 성취. 둘 중에서도 닭장에서 끝내 마당으로 나와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르게 되는 암탉 ‘잎싹’의 성취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상, 자식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어머니, 아버지의 숭고한 희생이 우선이다.

나그네 청둥오리는 두 번 ‘달 밤에 체조’를 한다. 외톨이인 자신의 처지보다 못해 죽은 닭들과 함께 구덩이에 버려진 잎싹을 족제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날뛰어 잎싹을 살려낸다. 그리고 자신의 알과 그걸 품고 있는 어미 잎싹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족제비의 먹이가 될 것을 자처하며 밤마다 달밤에 춤추고 소리를 지르다 새끼 청둥오리 ‘초록머리’가 태어나던 날 밤 기어이 족제비에게 잡아 먹히고 만다. 초록머리가 나오면 마당으로 가지 말고 저수지로 갈 것을 유언으로 남기며. 저수지는 청둥오리가 닭이 아닌 청둥오리로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아내와 태어날 새끼를 위해 족제비에게 스스로를 바친 아버지였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어린 아들을 위해 웃으며 죽음을 맞는 유태인 아버지와 선명하게 겹친다.

잎싹, 자신의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던 그녀. 마침내 들판으로 나와 족제비로부터 엄마를 잃은 청둥오리 알을 품어 초록머리를 얻는다. 그녀 또한 족제비로부터 초록머리를 지키기 위해 두 번의 사투를 벌인다. 닭과 족제비의 싸움, 이것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한 법. 그녀는 족제비의 눈알 하나를 뺄 만큼 초닭적 괴력을 발휘한다. 강력한 폭군 족제비 역시 새끼를 위협하는 닭 앞에서는 비참하리만큼 굴복하고 마는 어머니였다.

이제 초록머리가 청둥오리 무리에 끼여 남쪽으로 날아간 날, 늙고 지친 잎싹은 족제비의 어린 두 새끼, 보드라운 살결의 핏덩이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어미 족제비의 먹이로 바치며 붉은 기운이 감도는 높은 하늘로 큰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간다. 숭고한 죽음을 통해 가장 나중의 소망까지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십자가 앞에 흘린 윤동주’와도 같은, 사랑과 헌신을 위한 순교이다.
다시 한 번,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일지언정 어머니는 강하다. 미국인들이 가장 아낀다는 소설, 분노의 포도. 66번 대륙 횡단도로를 타고 생존을 위해 온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가는 도중 두렵지 않느냐는 아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대답한다.

“약간은. 그러나 그렇게 무섭지는 않다. 나는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무서워하지 않고 할 것이다. 어려운 일들이 생기겠지만 한 번에 한 가지씩 밖에 닥치지 않는다. 넌 젊으니까 꿈을 꾸겠지. 난 식구들이 먹을 양식만 걱정한다. 그게 내 할 일이지. 만약에 내가 그 이상의 짓을 하게 되면 다른 식구들이 어리둥절해 할거다. 모두가 나에게 그걸로 의지를 하고 있으니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것을 미리 염두에 둔 것 같은, 한 컷 한 컷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생생한 대사, 탄탄한 논리와 구성이 돋보이는, 동화라고 하기엔 아까운 수작이다.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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