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단기사채’ 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어음(CP)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기업어음 제도를 지금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이 연구 중인 단기사채가 상대적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유통의 편의 증진, 전자증권화를 통한 유통 투명화 등을 핵심으로 한 단기사채가 금융위기 국면에서 CP의 단점을 보완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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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CP는 신뢰를 상실하면서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생명을 이어왔다.
한때 2001년 무렵 새롭게 부각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기업이 보유한 미래의 현금 흐름을 담보로 발행되는 어음)이 CP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과거의 CP보다 한결 안정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ABCP 비율이 45%에 이르는 등 성장한 것이다. 이렇게 ASCP가 발전하게 되면서, 또 한편 우량등급 CP 비중이 높아지면서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CP가 점점 효율적이고 선진적인 금융상품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낙관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믿음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반성론이 대두됐다. 정부는 지난 7월, 금융위기 상황에서 건설사와 금융기관 부실의 주범으로 꼽혔던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금융)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점검에 나선 바 있다.
◆신용위기 때마다 기업어음 언급
PF ABCP는 장기간(3년에서 5년)의 부동산 PF 채권을 유동화시켜 CP(기업어음)을 발행하는 것으로, 자산유동화회사가 발행한 ABCP를 통해 시중자금이 PF로 흘러들어가는 구조다.
ABCP는 대부분 3개월 만기의 단기채권이어서 대부분의 시공사들은 평판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은행과 매입약정을 맺는 구조다. ABCP의 차환발행이 되지 않을 경우 이를 은행이 되사는 것인데, 은행은 이를 향후 대출로 전환, 부채로 계산한다.
문제는 그간 시중은행이 ABCP에 대한 정확한 위험가중치를 회계장부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금융위기 이전 은행은 ABCP에 대한 충당금 적립 등에 인색했다는 평가다. 더욱이 공신력 있는 건설사의 경우 은행과 ABCP의 재매입 약정도 맺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갑작스런 금융위기 정국에서는 유동성 위기의 원흉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일반 CP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으로 보인다. 금년 5월 금융감독원이 1년 이상 CP에 대해 점검을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한 마디로, 그간 변신을 CP가 변신을 거듭해 왔지만, ‘CP는 CP일 뿐이다’라는 위기의식이 경제위기를 타고 다시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CP에서 어음 속성 빼라’
국제적으로는 우량기업의 단기 자금조달 수단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알려진 CP가 왜 이렇게 한국에서는 ‘폭탄 돌리기’ 정도로만 취급을 받는 것일까? 이는 CP가 갖는 모호한 속성, 즉 어음인 동시에(어음법의 논의 대상), 증권(자본시장법에 따른 규율)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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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어음 유통 중심지로 과거 명성이 높았던 명동 사채시장. 회사어음(CP)은 자금융통 수단이자 거래 대상으로 오랜 세월 뿌리내려 왔지만, 여러 신용위기에 관련돼 원성 대상이 되기도 했다.> |
더욱이 이런 복잡한 속성은 정보 관리 문제에서도 허점을 만드는 사유가 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통합된 CP정보 구축의 필요성이 국내 금융권에 강조됐다. 하지만 은행연합회로 정보가 집중되긴 해도 은행연합회의 CP정보가 신용정보 관리규약에 따라 외부 정보제공 활용이 쉽지 않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그 대안으로 한국예탁결제원에서도 집계하는 기업별 CP발행정보가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예탁의무가 있는 CP만 집계됨에 따라 CP시장 전체를 총괄하는 통합된 정보로 기능하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CP가 발행기간이 제각각으로 활용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일견 CP는 91일물 등이 기본형인 것으로 보이지만, 예를 들어, 현금이 많은 백화점은 하루짜리로 기업어음(CP)을 찍기도 하고, 건강보험관리공단, 한국전력 등은 보름짜리 CP 등을 만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오히려 단기물이 더 많이 등장하는 추세다.
신용 위기의 주범으로 언제 부각될지 모르는 CP가 제각각으로 돌아다니는 상황은 이미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좋은 상황은 아니다. 이미 경제위기를 피부로 느꼈고, 경기 회복 가능성이 부각되고는 있지만 아직 ‘더블 딥’ 우려가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도 재정 상황을 자신하기는 아직 어려운 시국이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CJ제일제당이 갑작스럽게 돌아온 대규모 기업어음 상환을 위해 초단기물로 차환 방식(돌려막기)한 예를 들 수 있다. 한달 이하 초단기물로 1000억원대를 처리하는 상황에서, 만일 회사가 잘못될 경우 일반 투자자들이 이렇게 분산돼 흩어진 물건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볼 수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워낙 관련정보 취합과 이용이 어렵고, 초단기물의 경우 이런 정보 획득을 통한 투자가 더 어려워 ‘정보 비대칭’이 형성되기 쉽다고 하겠다. 물론 CJ제일제당의 경우 수백억원씩 만기를 쪼개 상환 부담을 분산해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는 없었겠지만, 더블 딥 상황이 갑자기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서는 적절한 안전망이 없다는 지적이다.
◆단기 CP 중심 미국식 시장 전제조건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특히 단기사채 영역에 대한 제도적 확립을 통해 시장 활성화 등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우리 시장도 미국처럼 CP에서 단기물 비중이 큰 상황으로 우리 금융시장이 갈 가능성을 대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예컨대, 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단기금융시장의 특징과 향후 발전과제’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금융위기를 계기로 기업어음(CP)의 만기구조가 단기화 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하고, “기존 CP제도를 유지하며 CP의 법적인 지위 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단기사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서 단기사채는 계약에 따라 사채총액이 인수되고 사채 원본의 상환기한이 사채 총액의 납입일로부터 1년 미만으로 분할납부를 금지하는 것이다. 또 담보설정을 금지하는 등 자금조달의 신속성과 간편성을 보완하게 된다. 법적으로는 상법상 사채가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단기사채에 주목하는 이들이 강조하는 대목은 ‘발행과 유통되는 등 모든 과정이 전자적으로 처리되는 전자증권’이라는 것이다. 단기사채의 발행과 유통정보 등이 전자시스템으로 일원화돼 관리되면, 기업의 자금조달수단으로써 편의성·투명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위험한 단기물이 돌아다니는 폭탄 돌리기 가능성이 낮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약간의 변형을 거쳐 진보하는 것”이라고 단기사채의 위상을 설명했다. 크레딧애널리스트로 유명한 신한금융투자 윤형환 연구위원은 단기사채에 대해 더욱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윤 연구위원은 단기사채에 대해 “새로운 제도가 생기는 게 아니라 이전의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어음과 증권의 성격 중 어음의 성격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CP가 글로벌 스탠다드와 다소 다른 점이 있었던 상황에서 옮겨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윤곽은 다 그려진 상태”
한편 이와 관련한 법은 2008년에도 논의된 바 있으나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와 증권예탁결제원 등에서 관련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인 상태다. 모 관계자는 가칭 단기사채법에 대해 “현재 윤곽은 다 그려진 상태”라면서 그간의 성과를 설명한다.
한편, 이렇게 단기사채를 도입해, CP의 전자관리와 이로 인한 부실 채권의 시장 유통을 원천 차단하자는 논의가 2000년대 초반 이래 반복되기만 하다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새삼 부각된 점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증권예탁원은 현재 단기사태를 필두로 2013년까지 모든 증권을 전자증권화하겠다는 것인데, 단기사채 문제는 조금 서둘러 달라는 외부 시각도 있는 것.
“예탁원이 느긋한 것 같다. 현재 준비 진행 상황보다 좀 더 빨리 해 주면 좋겠다”는 모 전문가의 지적은 금융위기로 기업 신용위험이 높고 관리 필요성이 강조되는 지금이야 말로 단기사채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은 상황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단기사채가 초단기 기업자금 조달 수단으로서 편의성을 높이고 투자자 보호 문제도 개선할 수 있을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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