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기관이다. 본질적으로는 수사기구가 아니지만, 금융의 건전성 확보,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금융소비자 보호 등을 수행하므로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서는 가장 두려운 존재 중 하나다.
특히 이번 황영기 전 우리금융회장·우리은행장 파생상품 거액 손실 징계 추진 건에서 보듯, 금융계 인사들에 대해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권한을 가진 곳이다. 일단 어느 자리를 떠나더라도 다른 금융기관으로 옮기는 게 상례이므로, 재취업에 지장을 주는 징계를 추진할 권한이 있는 금감원은 사실상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쥔 곳이나 다름없게 비치는 것이다.
하지만 황 전 회장 건처럼 이미 예금보험공사 등이 훑고 넘어간 사안에 대해 잘못을 다시 파헤치거나 과거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의 분식회계 관련 연임실패 건에서 보듯 금융감독 당국과 다소 껄끄러운 인사에 대한 발목잡기 논란이 종종 뒤따라 왔다. 이른바 '사실상 관치 금융' 논란이다. 더욱이 당국 스스로 감독 책임을 다하지 않고 나중에 떠넘기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황영기 동정론까지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스스로 이렇게 강력한 칼을 휘두르면서도, 퇴임 후 처신에 있어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앤장 용역줬던 금감원장 출신, 나중에 김앤장 고문으로
변호사만 300명이 넘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는 법조인 뿐만 아니라 경제관료, 금융감독당국 종사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모피아 인맥'으로 일컬어지는 재무 등 경제부처 엘리트들 외에도 금감원 출신 인사들에 대한 김앤장의 선호도 또한 낮지 않다.
김중회 현 KB금융지주 사장은 금감원 부원장으로 일한 관료 출신으로 김앤장에서 고문으로 일한 바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 역시 장관으로 영전하기 전에는 김앤장의 녹을 먹은 적이 있다. 금감원장으로 일한 바 있는 윤 장관은 김앤장 고문으로 일하다가 장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임명 당시 참여연대는 윤 장관이 금감원장으로 재직 당시 최소 5건의 용역을 의뢰한 법률사무소 김앤장에 퇴직후 연봉 6억원의 고액을 받고 고문직을 수행한 것에 대해 문제를 삼기도 했다.
구 재정경제부 과장 출신인 전홍렬 씨는 김앤장에서 고문으로 일하다가 금감원 부원장으로 영전했던 케이스.
전문성을 강조, 금감원 출신에 대한 수혈 필요성을 강변하는 것이 로펌들의 입장이나, 일각에서는 민감한 사건이 터질 때 요긴한 '전관' 영향력이 아니면 과연 꼭 금감원 등 감독기구 출신이어야 하느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경기도 안산 상록을에서 10월 재보선을 준비 중인 임종인 변호사 같은 경우 김앤장의 실체를 심층해부한 책을 펴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금감원이 감시하던 금융기관으로 재취업도
금감원 출신이 자신이 몸담던 피감독대상에 자리를 구하는 경우도 줄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6월 24일 민주당 신학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금융위 2명, 금감원 18명 등 퇴직자 20명이 민간 금융회사의 사외이사나 감사 등 핵심보직에 영전(재취업)했다.
문제는 이런 경향이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반복 지적되지만 줄지 않고 있는 것인데, 사실 위의 행안부 통계는 MB정부 들어 더 심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낳는 통계다.
금감원 2급 이상 간부는 퇴직 전 3년 이내에 맡았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2년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업무 관련성 규정이 모호해 현실적으로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금감원에서 금융기관으로 이직을 준비하기 위해 직접 관련성이 떨어지는 자리로 잠시 옮기는 '경력 세탁'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후문이다.
또 2008년에 법원 판결이 업무 연관성에 대해 보수적으로 해석한 바가 있기도 하다.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라면서 스스로의 윤리관에 맡겨놓는 셈이다.
◆금감원이 직업소개소?
하지만 금감원 고위인사들 조차도 이러한 윤리관과 거리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흔히 밖에서 금감원에 요구하는 고도의 윤리의식과 동떨어진 인식이 드러나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 지난 2008년에도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이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김종창 금감원장은 퇴직자 재취업 문제와 관련한 답변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금감원 임직원을) 보낸다"고 말했다가 이사철 의원으로부터 "그런 말도 안 되는 답변이 어딨나. 금감원이 무슨 '직업소개소'냐"고 호된 질책을 당했다.
심지어 윤 기획재정부장관(금감원장 출신)은 "퇴임 후 김앤장도 못 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오히려 문제를 삼은 의원에게 반문을 하기도 했다.
결국 금감원이 新관치금융의 첨병 역할을 한다든지, 과도한 징계권을 휘두른다는 지적은 상당 부분 과장된 점이 없지 않더라도, 스스로 외압 등에 초연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면 이런 오해 역시 끊임없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전현직 금감원 수장의 문제 발언이 여럿 나오고, 낙하산 경향이 오히려 세지는 상황에서 황 전 우리은행장 징계 건이 균형감을 잃은 것이라는 호사가들의 주장이 나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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