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우리은행 상표 분쟁 사건이 입법의 불비 문제에 대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29일 대법원은 지난 2005년 국민은행 등 시중 은행들이 공동으로 제기한 '우리은행'의 서비스표 등록 무효 확인 소송에서 이 명칭이 "'우리'라는 단어에 대한 일반인의 자유로운 사용을 방해한 것이라 상표 등록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부는 이같이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대법원이 판결의 모순을 지적해 2심 법원-여기서는 특허법원-으로 되돌려 보냄)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우리은행'은 소비자들이 자신과 관련 있는 은행을 표현할 때 쓰는 '우리 은행'과 명칭이 동일해 구별이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동일업종 종사자에게는 불편과 제약을 가중시킨다는 점도 대법원은 지적했다.
◆우리은행 해명은 '재판 끌수록 상호권은 강해진다'는 결론
한편 우리은행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를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
우리은행측 관계자는 29일 "상표권 등록이 무효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은행이 갖고 있던 '우리은행'이라는 상표에 대한 상표법상의 독점적 배타적인 권리가 없어진다는 것이지, 상표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우리은행이 한 가닥 기대를 거는 대목은 바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하면 국내에 널리 인식된 상호, 상표 등은 타인이 이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민, 형사상 처벌의 대상이 된다.
우리은행은 이에 따라 자신들이 이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합병으로 탄생한 한빛은행이 우리은행으로 상호 변경을 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 이같은 '널리 인식된 상호'가 됐다는 점을 새로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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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건 순간 게임끝났다는 우리은행측 논리?
우리은행이 이같이 느긋할 수 있는 것은, 상표무효 소송 결과에 실망한 다른은행들이 이번엔 '상호권' 문제를 놓고 청구권을 달리해 다른 소송을 낼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이 (순전히 소송 목적으로) '우리**은행'이라는 유사한 상호를 건 은행을 만들고 이를 내세워 이번에는 '상호'에 관한 재판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이는 실제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은행으로서는 상표권에 관한 판결이 어떻게 나든, 이미 취득한 상호권을 배경으로 버티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높다.
'역설적'이게도, 상표권에 대한 시비가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면서 법정에서 가려지는 긴 시간 동안, 그 동안 우리은행은 상호권을 지속적으로 가꿔왔다고도 볼 수 있는 것.
이는 법적인 분쟁 상황에서 두 당사자가 모두 지위가 불안정해야 한다는 공평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이례적인 경우를 (상표 담당) 행정당국과 사법당국이 우리은행에 허락한 것밖에 안 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여지가 높다.
이에 따라 이번 우리은행 사건을 계기로, 상표 등록에 신중을 기해 심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서로 이름이 비슷한 회사가 있는 경우 상표권과 상호권을 놓고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겠지만, '우리' 등의 사회적으로 민감하지만 이것이 그대로 등록, 특정 회사에 속하게 될 경우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상표에 대해서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사업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우리은행 건으로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즉, 상표권을 등록할 때 이미 멸망하기는 했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없지 않은(또 전국민의 재산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화' 등 구 황실의 이름, 오얏무늬 등의 구 황실 표지를 개인 사업자가 상표로 쓸 수 있는 게 타당한지, 또 IMF 직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진 것을 따라 박 전 대통령의 애칭인 '박통'을 특정 소주에 붙여 '박통 소주'라고 부르겠다는 상표 신청이 들어오면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 여러 논란으로 가지치기를 할 수 있다.
◆상호권과 상표권은 다르다는 우리은행측 주장 기반부터 무너질 가능성? '동부' 사건 눈길
하지만 이렇게 상표권이 침해되어도 상호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우리은행측 주장에 금이 갈 수 있는 사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간 상호권과 상표권 분쟁이 겹치는 경우 명시적인 조정 규정이 없는 점 등 이른바 입법불비였다고 해석돼 왔는데, 만약 "상호권은 상표권에 부수되는 것"이라는 새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경우 우리은행측이 이번에 보인 태도는 궤변으로 정리가 될 수 있는 것.
일례로, 동부건설과 동부주택건설이 '동부'라는 이름사용을 두고 벌인 상표 및 상호 법정다툼에서 각각 '1승1패'를 기록한 것도 이번 우리은행 대 시중은행들의 분쟁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동부건설(주)은 동부 센트레빌을 짓는 회사이고, 동부주택건설(주)은 '동부 브리앙뜨'를 짓는 회사다.
그런데 서로 상호도 비슷하고, 아파트의 상표도 비슷한 것. 이에 따라 분쟁이 상호 및 상표 두 가지 모두에서 일어난 바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008년 10월, 1일 동부건설(주)가 동부주택건설(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상표권 침해 분쟁에서 패소 판결을 내렸다. "동부주택건설의 '동부 브리앙뜨'는 동부 센트레빌의 상표를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동부주택건설(주)이 낸 동부건설(주)의 상호등기를 말소해 달라는 재판에 대해서도 동부주택건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회사가 각각 상표와 상호를 공격무기로 삼아 서로를 공격했던 셈인데, 두 회사 모두 각각의 사건 1심 판결에 만족을 못하고 항소했다는 점이 문제다. 이 상표권 침해 소송과 상호등기 말소소송이 각각 2심에 항소돼 있어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는 것(두 건 모두 2009년 5월 현재 강제조정 중이나 당사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정식재판을 해야 함).
이 사건들은 결국은 대법원에서 두 가지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떤 부분이 앞서는지 등에 대해서도 부수적이지만, 함께 설명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동부건설-동부주택건설 사건이 가려지는 경우, 우리은행이 현재 펴고 있는 상표권은 패소했다고 손치더라도 상호권을 새롭게 주장하겠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상도덕상으로도 문제, 우리은행 태도 변화 여부 촉각
이렇게 금융기관인 우리은행이 최고사법기관인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그건 상표권 문제, 우리가 새롭게 주요 무기로 들고 주장할 것은 상호권"이라는 논리를 펼 수 있는 건 결국 상표 등록의 신중함을 강조하는 사례이기는 하지만, 공공성이 강한 금융부문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상도덕 논란'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
여타 은행들이 연합해서 우리은행에 대해 상표권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불만이 큰것을 왜 미리 무마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느냐는 것. 이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상도의가 아닐 뿐더러, 일단 '상표 등록'을 하고 '간판'을 걸어 '상호권 굳히기'를 하면 끝이라는 치밀한 계산으로 다른 은행들을 누를 생각밖에 없었다는 의혹을 키울 수도 있다.
우리은행과 우리은행을 거느린 지주사인 우리금융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설사 상호를 갈아치울 생각까지는 없더라도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언급된 다른 은행권 종사자들에게 입힌 각종 피해를 어떻게 풀지도 숙제다. 우리은행이 슬기를 발휘할 방향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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