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조선업계 구조조정 국면에서 선수금환급보증(RG)과 관련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일부 조선사들이 보험사와 은행간 분쟁으로 워크아웃(회생)으로 가지 못하고 법정관리로 가는 등 좌초하고 있는 데 RG와 RG 보험 문제 등이 깊이 연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주거래은행(주채권은행)과의 관계까지 얽히면서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미봉책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낳고 있다.
이번 기회에 RG 등 특수 문제를 안고 있는 조선업에 대한 특화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RG보증 금융기관과 주거래은행간 분쟁 격화
조선업은 긴 기간 선박건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기관과의 보증 등 협조관계가 필수적인 산업이다. 선박을 주문한 선주에게 선수금을 받으려면 (계약 대상이 되는 배가 아직 없는 상황이므로) 은행이나 보험 등 금융회사의 보증이 필요한데 이를 선수금환급보증이라고 한다. RG는 조선업체가 파산했을 경우 업체가 받은 선수금을 금융기관이 대신 선주(선박 계약 발주처)에 물어주겠다는 일종의 보증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보험사들와 KB국민은행간에는 진세조선 처리 방향을 둘러싸고 감정싸움이 빚어지고 있다.
진세조선의 채권금융기관은 840억원의 신규자금지원, 수주선박의 공동관리를 골자로 하는 경영정상화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나, 22일 마감기일을 앞두고도 문제 해결 방안에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21일 메리츠화재, 흥국화재, 한화손보 등 RG발급 보험사들은 공동명의로 지난 7일과 14일 두차례에 걸쳐 국민은행 측에 ‘긴급자금 지원의 건’ 등 안건 상정을 요청했지만 국민은행이 이를 거부했다며 비판 성명을 냈다.
보험사들은 "회계법인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회생필요자금 840억원을 보험사와 국민은행이 각각 778억원과 62억원씩 지원하는 안을 보험사들이 제시했지만, 국민은행이 이를 거부해 진세조선 회생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보험권은 채권비율이 갓 50% 정도에 불과하지만 신규자금은 75% 이상 지원하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게 이들의 주장. "그러나 신규자금 지원비율이 5.4%에 불과한 국민은행은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측 주장은 이들의 주장과 해석의 초점이 다르다. 국민은행 역시 출입기자들에게 설명을 하며 '맞불'을 지르고 나섰다.
국민은행측은 "외부회계법인(삼정-KPMG)에 의해 수립된 당초 경영정상화계획은 기존 수주선박의 공동관리를 통해 전체 채권금융기관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내용"이라고 전제했다.
은행측은 "진세조선 실사에 참여한 회계법인은 보험사의 주장에 따르는 경우 보험사의 손실은 줄어드는 반면 은행권을 비롯한 여타 금융기관의 손실이 증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검토의견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건조될 선박들을 각 보험사가 개별관리하게 하는가(이것이 보험사들이 선호하는 방식) 혹은 총채권액 비율에 따라 관리하게 하는가(이것이 KB국민은행이 선호하는 방식)에 따라, 일반채권자들이 보호를 받게 되느냐 혹은 RG보험을 맡은 금융기관이 피해를 줄이느냐가 갈리게 된다.
◆매번 암초로 등장 RG 관련 해법은 어디에?
하지만 이같은 RG관련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우선 녹봉조선이 워크아웃에서 좌초한 것도 이같은 RG관련 분쟁이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타격은 외국계 선주가 선박 건조와 관련해 녹봉조선이 만드는 일부 선박에 대해 5000만달러 규모 압류를 건 문제 등으로 터졌으나, 애초 녹봉조선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첫 채권단협의회에서 주채권 은행인 신한은행과 RG보험을 보유한 동부화재가 신규 자금 지원금 배분 비율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삐걱거렸다는 것.
채권 비율에 따라 지원금이 배분되는 상황(부담이 걸리는 상황)에서, RG보험을 채권으로 포함시킬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이 같은 문제로 C&중공업은 워크아웃이 무산된 바 있다. C&중공업 역시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과 메리츠화재 등 채권단의 RG분쟁으로 고생한 끝에 워크아웃 실패로 귀결됐다는 분석이다.
◆RG는 보험인가 채권인가, 해석문제 정리 시급
결국 C&중공업과 녹봉조선 건 등에서 RG보험에 대해 이를 보험으로 보게 해야 할 것인지, 채권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리딩 케이스(Leading Case)가 명확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국민은행과 메리츠화재 등의 이견이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게 됐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은 특정 은행과 특정 보험사간 문제도 아니고, 은행 대 보험계의 문제도 아니며 기업 구조조정 국면과 조선업 발전 로드맵 등을 모두 감안해 분쟁 해법을 만들어 가야 하는 난제라는 것.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자금 지원을 놓고 채권단 내에서 서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입장이 강해 워크아웃 진행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게 우리 나라 최근 부실기업 정리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극명히 드러난 단면이 조선처럼 큰 돈이 관련되고, 긴 시공 기간이 들어가 등장인물이 많은 분야라는 것.
이에 따라 이번 RG 문제를 슬기롭게 푸는 해법이 나오지 않으면, 최근 한국은행장과 시중 8대 은행장들이 권고한 기업 구조조정 강화 등 문제를 현실화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낳을 가능성마저 있다. 당국이든 은행이든, 이해관계가 복잡한 구조조정 사건이 나올 때마다 RG 문제 난항을 떠올리며 뒤로 물러서게 될 것이기 때문.
이에 따라 이해 관계에 따라 시선이 엇갈리고는 있지만, 채권자간 공정성과 형평성이라는 '워크아웃의 기본취지'가 기본 해법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렇게 되면 개별 선박별로 보험사가 관리권을 갖고 문제를 푸는(손실을 줄이는) 것보다는 전체 선박 관리를 채권단 공동으로 하자는 국민은행 등의 주장에 가깝게 된다.
더욱이 현행법상(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은행이 주도권을 갖게 되는 구조인 상황에서, 이 법을 새롭게 정비한 입법자의 의사(세계적 금융위기라는 기업 구조조정 국면에서 비상적이나마 권한집중을 주거래은행에 하는 일)를 존중해야 한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보험사의 요구조건을 전혀 무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우선 RG 문제로 주거래은행과 맞서는 형국을 자주 연출하면서 보험계(은행이 RG를 발행하기도 하나 중소형 조선업체는 보험사 RG를 많이 이용)에서는 몸집 차이에서 오는 부담감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에 참여하는 문제에서 소외당하기 쉽고, 워크아웃 상황에서 부담금을 함께 부담하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 재정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는 보험사로서는 밀릴 수 밖에 없는 것.
이에 따라 이들 3개 조선사 워크아웃 추진 국명에서 드러난 문제들에 대해, 관계 당국에서 제도 정비를 통해서라도 RG 문제에서 RG발행 금융기관과 주거래은행간의 유사시 권한 조정 문제, 그리고 보험계의 발언권 보장 문제 등을 명확히 할 필요와 함께, 주거래은행의 주도권 인정에 대해서도 확실한 보장이 함께 추진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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