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8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출발했다. 대검찰청으로 조사를 받으러 천리길 여행에 나선 것.
이번 소환으로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망에 피의자로 오른 세번째 인물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쿠데타 혐의(내란살인 등)로 검찰 소환과 기소, 재판을 겪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료 조사나 친인척 비리, 측근의 특검 수사 등 외에 본인이 피의자로 수사 대상이 된 바는 없었다.
포괄적 뇌물죄로 기소 여부를 검찰이 저울질하는 희대의 상황이기도 하지만, 정상문 전 비서관 등을 내세운 방어막이 뚫렸고, 방패막이로 나서줄 측근 그룹이 전, 노 전 대통령들에 비해서는 탄탄하지 못하다는 점 등이 더 빨리 검찰 도마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면목 없다. 잘 다녀오겠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아침 심각한 표정으로 "국민 여려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서 죄송합니다. 가서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여정에 올랐다.
특유의 짧고 명쾌한 화법으로 정치권 입문 후부터 주목을 받아온 노 전 대통령은 이날만큼은 강경한 어조로 자신의 입지를 강조하는 대신 간략한 소회를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태도를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의 이날 발표는 검찰의 12·12 사건 수사에 반발, 이른바 연희동 골목길 선언으로 화제를 모은 전 전 대통령의 경우와 대비돼 눈길을 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때 '통치 행위' 등 개념을 동원해 가며 자신의 군사 동원과 비자금 조성 등을 강변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리는 강경한 제스처를 취했다.
◆숨고르기와 함께 핍박받는 민주투자 이미지 효과 있을 듯
노 전 대통령 역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한 어조로 정면 돌파를 시도해 왔다는 점에서 이날 발언은 수위가 예상치보다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하다. 잘 다녀오겠다"는 말로 현재 상황에 대한 소회와 함께, 일단 숨고르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사모 등은 이날 노란 풍선 장식 등을 설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일찍부터 엄호 발언으로 검찰을 압박한 바 있고, 조배숙 전 청와대 수석이 '생계형 범죄' 발언으로 우회적 지원에 나서는 등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변명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점도 이같은 차분한 대응을 만든 배경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뇌물죄 문제로 인해 검찰 소환을 받으면서도 버스편으로 문재인 변호사 등 측근 조언 세력을 대동하는 등(이 때문에 헬기 소환을 거부했다) 검찰에 대한 방어력 강화에 초점을 두는 터라, 먼저 검찰을 자극할 발언을 길게 늘어놓지 않는 게 낫다는 인식을 깔고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이미 '검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검찰의 기본 의식 구조를 엿본 경험이 있다. 아울러 당시와 마찬가지로 정면돌파를 하기에는 입장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이쯤되면 막 가자는 것이냐" 류의 강한 어조의 발언은 자제한 셈이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당시, 검찰이 세 차례나 집요하게 영장 심사 판사를 바꾸어 가며 자신을 공략했을 때의 기억을 갖고 있다.
검찰의 도에 지나친 공격을 받는다는 이미지를 갖추면 여론의 동정을 살 수 있다는 점도 각인돼 있는 셈인데, 실제로 검찰의 소환 문제에 대해 "저의 집에서 쓴 일",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한다" 등 일련의 흐름으로 인해 돈문제에 상대적으로 깨끗했으나 쪼들려 어쩔 수 없었다는 여론 조성(이 점이 검찰입장에서 보면 수사방해이기도 했지만) 배경을 자의이든 그렇지 않든 만들어 놓은 바도 있다.
◆"이제와서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처럼 상황 인정 후 허찌르기
오히려 말을 많이 할 수록 변명으로 인식돼 여론 악화가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과거 대선 도전 과정에서 '장인의 빨치산 전력'을 재빨리 인정하고 허를 찌른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그래서 높다. 노 전 대통령은 이인제 의원으로부터 장인의 전력 문제를 집요하게 지적받자 "그럼 지금와서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라는 감성적 어법으로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
검찰이 사전 질문지를 봉화마을에 보내 방어력을 시험하고 나섰고, 줄소환으로 측근과 가족을 모두 훑은 상황에서, 이번 발언은 대국민사과와 짧은 정면 돌파 선언을 함께 겸한 발언의 일석이조 기능을 갖는 것이어서 특히 주목된다. 이 발언의 행간만 보면, 노 전 대통령은 물의에 대한 대국민 사과 인식은 있지만, 검찰의 포괄적 뇌물 수수 수사과정 중 과도한 정치적 탄압 논란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방어력을 집중할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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