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천정배 의원의 손이 박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의 뺨으로 향했다. 22일 연출된 이 장면을 찍은 각 언론사의 사진기사들은 '국회 또 몸싸움'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하지만 이번 행보는 단순 몸싸움보다는 천 의원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의도된 도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요소요소 눌러가면서 대여 공세,당내 문제 견제
천 의원은 지난 대선 국면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이 생기면서 대선 예비후보로 나서기도 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조용한 행보를 보여왔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일찍이 선을 그은 데다가, 이명박 현 대통령쪽으로 판세가 빨리 굳어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천 의원은 MB정권 탄생 이후부터 눈에 띄는 행동을 보여왔다. 민주당의 대표 경선에서 천 의원은 추미애 의원을 민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 현대표 체제로 대변되는 당권파에 대한 견제의식을 드러낸 셈이다.
아울러 국회 문화방송위원회를 무대로 민주당이 최시중 방송위원장 등을 몰아세우는 데 일조했다. 사퇴 등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작은 몸집인 점을 감안하면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천 의원이 유인촌 문화부장관을 곤란하게 한 것도 문방위 무대였다. 유 장관은 "다시는 쓸 데 없는 일(야구 시구를 말함) 안 하겠다"고 발언해, 야구팬들의 원성을 들었다. 이는 유 장관이 천 의원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는 풀이가 유력하다. 천 의원이 야구장 시구를 마친 유 장관이 선수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돌아다녀 경기지연을 시켰다는 쪽으로 지적하면서, 다시는 안 하겠다는 말이 나온 것. 유 장관의 경솔한 성격도 일조했지만, 천 의원이 요소를 잘 짚어 코너에 몬 것이 주효했던 셈이다.
이러한 대여 공세, 대정부 공세 외에도 천 의원은 같은 민주당 내 움직임에 대해서도 적재적소를 짚어 작은 행동으로도 자기 의사를 전달하고 파급력을 확실히 강조하고 있다.
◆경인운하 불만, FTA 외통위 충돌로 당권파 견제
천 의원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공천 문제로 정세균 당대표의 지도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당권파에 대해 전혀 손을 놓고 있다기 보다는 적절한 기회마다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정 전 장관의 당선이 현실로 나타나면 정 대표 체제는 격렬한 당내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당권파의 위상이 약해지는 틈에 구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 천 의원 주변의 쇄신세력 등의 역학관계 역시 재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천 의원이 정 대표 흔들기에 일찍부터 착수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천 의원은 의미있는 발언과 행동 두 가지로 당권파와 곧 일전을 불사할 뜻임을 시사했다.
우선 당권파로 분류되는 송영길 의원 등이 상대적으로 경인운하 추진 문제에 우호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사정에서, 천 의원은 공공연하게 "경인 운하 반대를 당론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천 의원은 당지도부가 한미 FTA 법안의 상임위 통과를 물리적으로 저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던 것과 엇박자를 놓기도 했다. 천 의원이 통외통위에서 적극적 몸싸움을 선보인 것은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이기도 하지만, 사보임 등으로 통외통위를 어물쩍 피한 정세균-박주선 의원 등과는 명확히 대비되는 행동이라는 점에 더 의미가 있다는 풀이다.
이렇게 많은 행동을 하기보다는 적절한 '일격'을 통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과거 법무부 장관 시절에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 지휘권 행사라는 방안을 동원한 것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허를 찌르는 방법으로 검찰의 기를 일거에 꺾은 것처럼, 승부수를 던져야 할 구간만 정확히 짚어 일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
◆'당권 경쟁 이후'가 관건
그러나 이렇게 승부사 행보, 소신 정치인 이미지로 정동영 당선 혹은 낙선 이후의 당내 분열 국면 재조정에서 그가 떠오른다고 해도,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어떤 리더십을 보일지는 숙제로 남아있다.
열린우리당 시절 원내대표를 지낸 경험이 있긴 하지만, 천 의원은 리더십으로 계파를 이끄는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독립변수라는 인식이 아직 잔존하기 때문이다. 지난 당권 경쟁에서 추 의원과 정대철 상임고문측의 연대가 구성됐던 것과 같은 합종연횡도 포스트 정세균 시대를 준비하는 국면에서는 필수요소가 될 텐데, 이러한 '밑그림 그리기'에서 그가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지가 관건이다.
아울러 구 민주당 계열이나, 여러 이형 요소의 도움을 얻어 전면에 부상하더라도, 통합 리더십과 정치력은 더 강하게 요구될 것이라는 숙제도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정세균 이후의 당권이 천 의원의 손에 들어온다고 해도, 이는 과거 DJ의 일시 퇴장 국면에서 '소액 주주'였던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 체제와 흡사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민주당 내 차기 대권 주자감이 마땅찮은 국면에서, 천 의원의 위상과 능력은 상대적으로 커 보인다. 이 시국에 천 의원이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스타 정치인에서 스타 감독으로 변신할지, 민주당의 당내 사정이 어려워질 수록 천 의원쪽으로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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