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은행권의 '몸사리기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외환위기 국면에서 공적 자금을 대거 투입받아 살아난 은행권은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고액 연봉으로 주목을 끄는가 하면, 이용자들을 생각하지 않는 운영 태도를 왕왕 보여왔다.
이에 따라 시민들의 불만이 알게 모르게 쌓여 왔다. 그러다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금융위기가 한국 금융계에도 확산되면서 여러 지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청와대도 '잡세어링 구상' 등을 통해 금융공기업 연봉 낮추기와 일자리 나누기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장기적이고 최종적인 포석은 시중은행권의 동참을 유도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ATM 이용시간 조정, 스톡옵션 반납 등 나서
최근 은행권은 자동입출금기(ATM) 사용 시간을 일부 늘려주는 방안에 착수했다. 4월부터 은행 개점 시간이 조정되면서 은행 ATM의 무수수료 이용 시간도 이동이 불가피해졌는데, 이 와중에 일단 수수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늘어나도록 조정한 것.
이러한 조치에 대해 ㅇ 은행 관계자는 "은행으로서는 수수료 수입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은행들이 개점 시간을 조정하면서 이용자들의 편의를 한층 배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개점 시간 조정 와중에서 일부 시중은행들이 노조와 개별은행간 협상 줄다리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간 데 따른 부담감을 느껴 이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은행 개점시간 조정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인해 증권 시장 개장 시간에 은행업무 시간을 맞추고, 아울러 은행권의 초과 수당을 일부 줄이고자 도입추진된 제도. 하지만 이 와중에 일부 은행에서는 수당이 줄어드는 대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단말기를 모두 강제 종료시키는 등 일을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나서 '철밥통 환상을 아직 못 버렸다'는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런 국면에서 '일하는 은행, 시민 편의를 배려하는 은행'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고육책으로 이번 조치를 준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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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한지주는 스톡옵션에 대한 여론이 안 좋자, 휴일 긴급 회의를 통해 자진 반납이라는 결단을 끌어내는 등 발빠른 행보로 주목받았다.> |
신한은행과 외환은행 등은 이 불경기 와중에도 고액의 스톡옵션을 임원들이 챙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신입 행원들의 연봉은 줄이겠다고 공언하면서 임원들은 큰 수익이 날 수 있는 스톡옵션을 여전히 받는 게 도덕적으로 옳으냐는 논란이 시작된 것.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휴일이던 22일 밤 신한지주 고위관계자들은 긴급 회동을 통해 '스톡옵션 자진 반납'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결정했다. KB금융 산하인 국민은행도 이 대열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23일 발표했다.
◆아직 공기업 기존직원 임금 개혁 갈길 멀어, 반발 확산 문제
하지만 이런 여러 움직임 속에서도 근원적인 해결, 즉 고임금 구조의 전면적 수술 등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연합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의 임금협상이 당초 예상과 달리 금융공기업의 임금 삭감과 신규 채용 등에 대해 이견으로 18일 결렬된 것은 앞으로 지난한 협상 과정이 필요함을 방증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공기업의 기존 근무직원들의 고임금 자체를 깎지 않은 신규 입사자 초봉 감액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외부 지적에 대해 금융권 전반이 반발하고 있는 태세다. 특히 금융공기업의 고임금 구조를 손봐 시중은행들까지 분위기 확산을 몰아가겠다는 당국의 내심이 어느 정도 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또 금융노조는 23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나누기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면서 "금융공기업에 대한 획일적인 지침을 철회하라"고 요구, 힘겨루기에 나설 태세를 분명히 했다.
노조는 우선 "경제위기로 지난달 취업자 수가 1년 전에 비해 14만2000명이나 줄었다"면서 "2월말 업자가 92만4000명이며 3월 들어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금융권도 올해 6500명 이상의 청년들을 인턴으로 채용했거나 채용할 계획이나 이중 3개월 미만의 단기인턴이 5200(1개월 미만이 2600명)에 이르고 있다"면서 "은행들이 정부의 압력에 못이겨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인턴을 채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별 은행노조들도 당국의 직간접적 압력(기존 근무자들의 연봉 줄이기, 구조조정)에 대해 달갑잖은 속내를 공식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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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리은행은 특히 예보 입김이 강한 문제로 인해 노조 불만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우리은행 노조는 박 모 위원장 명의로 발표한 6일자 대자보에서 '잡세어링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비판 등 여러 논점 제기에 이어, "예보가 지난 4분기 MOU 기준 미달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다"면서 노조원들의 對예보 투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자보는 공적자금이 대거 투입돼 예보와 긴밀한 의사협력 및 경영상황 조율이 필요한 우리은행 특성을 도외시하고, 마치 예보는 단순히 '점령군'인 양 몰아붙이고 있다는 우려를 일부 낳고 있다. 특히 예보가 실제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한다고 해도, 예보 통제조차 받을 수 없다는 접근방식은 금융권 노조의 '무소불위' 속내를 적나라하게 나타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금융기관 노조들이 강한 힘을 철밥통 챙기기에만 쓰는 모습이 누적될 수록, 오히려 개혁을 요구하는 일반 여론은 높아질 수 있다는 역풍 가능성은 높아진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의 수술을 요구하는 여론과, 이에 맞춰가려는 은행권의 자정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자체개혁의 동참인지, 단순히 복지부동으로 '비만 일단 피하자'는 속내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여론은 아직까지는 후자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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