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3월 위기설의 '서막'을 연 것은 일본계 투자자금이 일시적으로 우리 시장에서 빠져나갈 경우 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오바마 미국 정부가 경기부양 정책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 좀처럼 시장에 활기를 주지 못해 다우지수 7000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상황까지 겹쳤다. 여기에 동유럽발 디폴트 우려가 나오면서 유럽계 은행 등 투자자들이 아시아 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뺄 가능성 등이 크게 부각됐다. 당초 주원인으로 언급된 것과는 별개로 다른 원인들이 등장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당국이 3월 위기설을 당초 대비한 것보다 더 악화된 상황이다. 당국은 원래 3월 위기설이 부각되면서 일본계 투자자본이 다 빠져나가도 외환 보유고 등이 충분한 방어력을 갖고 있다는 정도에서 대응 발표를 해 왔다. 실제로 방어책도 이 정도 언급 내용들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9월 위기설을 무사히 넘겼던 경험이나 3월 위기설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 이상의 관리 능력을 당국에 요구하고 있다. 시장이 강한 외부 요인의 파도가 연이어 엎치는 상황에 정부에 대한 불신감으로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3월 첫날부터 패닉, 주가 1000 붕괴 우려에 환율은 이미 최고수준
3월 첫거래일,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90원을 돌파하고 결국 1570원 마감으로 11년래 최고를 기록했다. 100엔당 원화환율도 한때 1630원을 넘어서는 등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여기에 코스피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하루에만 40포인트가 떨어졌다. 여기에 금리는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트리플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이번 달러 매수심리가 우리 시장의 문제라기 보다는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불안요인들의 교차 현상으로 인해 우리만의 노력으로 좋아지기 어렵고, 단기간에 개선될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데 있다. 다우 지수 7000선 붕괴 우려, 동유럽 국가들의 디폴트 가능성 가시화 등이 문제를 키우고 있고 장기 불황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초 체력이 약한 우리 금융시장에서 달러화 이탈(역송금)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인 동시에 다른 나라보다 더 큰 타격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외국인의 증시 매도세 행진이 연쇄적으로 환율 급상승 등 금융시장 전체를 좌불안석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미 3월 증시 전망에서 여러 증권사가 900에서 1200정도의 박스권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증시가 이 예상보다 빠르게 무너지면서, 이 박스권 예상 자체가 의미가 없는 악화일로를 걸을 수도 있다는 급락 우려도 나온다.
◆외환보유고 등 기초체력, 장기전에 결코 충분하지 않아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버티기에 기초체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의 유동 외채가 외환보유고(2017억달러)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과거부터 한국이 끊임없이 *월 위기설에 말려드는 단골 소재가 돼 왔다. 이러한 위기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돼 작년말 환율 안정에 크게 기여했던 한·미 통화스와프는 현재 약 절반을 써 버린 상황이다. 1월 무역수지가 33억 5000만달러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을 방증하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을 감지, 위기설을 제기한 일부 외신들에 대해 우리 당국은 그간 큰 대응을 하지 않아 왔다. 이들이 짚은 내용 중 일부 타당한 부분도 해명에 급급했다. 최근에도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이 외환위기에 취약하다는 주장을 폈지만, 당국에서는 이를 일축하는 해명을 내놓는 데 그쳐 왔다.
◆불황형 흑자, 내수위축으로 시장 기능에 경보음
1월 무역적자가 경보음을 낸 데 이어 2월 무역수지는 수출이 많은 흑자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를 두고 상황 개선으로 읽기엔 이르다는 평가다. 즉, 수입이 수출보다 큰 폭으로 감소한 탓에 33억 달러 흑자는 결국 '불황형 흑자'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흑자 규모는 2007년 6월 이후 최대 규모이며, 오히려 이같이 불황형으로 최대치를 이룬 것은 긍정적 요인이라기 보다는 시장 기능이 위축됐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2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7.1% 감소한 258억 5000만달러, 수입은 30.9% 감소한 225억 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는 지난 1월 33억 6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뒤 1개월만에 흑자로 전환됐다.
무역수지 흑자 전환은 선박류 수출의 호조가 가장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단순히 배를 잘 만들어서 그리고 많이 팔아서(선박을 수주해서)라기보다는, 환율 효과에 따른 가격 경쟁력이 제고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식경제부는 "3월 이후에도 해외 수요 급감에 따른 수출 감소세는 불가피하나 환율 효과 등으로 수출이 회복되고 수입은 감소세가 계속돼 무역수지 흑자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을 내놨다.
◆교체된 경제팀 '적자재정' 시간확보 속 급조정 대비 필요
다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경제팀에 대한 불안심리가 지난 해보다는 많이 해결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이 잃은 시장의 신뢰가 윤증현 기재부 장관팀으로 교체되면서 "전임 경제팀보다는 다소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9월 위기설 당시 오히려 정부의 대응이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을 야기시켜 시장 참여자들을 혼란하게 했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이런 상황에서 윤 장관팀은 적어도 위기의 폭풍에 한 자락을 더하는 설상가상을 만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9월 위기설이 시장에서 서서히 퍼질 때 정부는 진화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했다. 정부가 긴급점검회의를 하고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선 때에는 이미 실기했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윤 장관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마이너스 성장률을 언급하며 보여준 솔직한 모습은 정부의 신뢰도를 높인 바 있다. 여기에 추가경정예산 편성, 재정 조기집행, 보증지원 확대, 은행대출 만기연장 등 일련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적자 재정을 편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장관은 지난 17일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어쨌건 1년간은 과감한 적자재정을 운용해 내수진작에 주력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윤 장관의 기획대로 강력한 적자재정 편성을 통한 내수 진작, 그리고 중앙은행 기능 확대를 추진해 실물경제에 금융권이 끊임없이 유동성 확보를 뒷받침하면 장기전에 필요한 체력을 회복하는 데 시간벌이를 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우선 재정적자를 통한 부양 이후 후폭풍이 문제가 된다. 일단 불황 국면에서 살아남는 데엔 적자재정이 도움은 되겠지만, 이후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리먼 사태 때와는 달리, 여러 안전장치가 마련된 상황이기 때문에 급작스런 환율 반등 쪽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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