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9일 경기도 경찰이 법원으로부터 '군포 여대생 실종 사건'의 주요 키워드들을 검색한 네티즌들의 인적사항을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포털로부터 넘겨 받기로 한 일이 알려졌다. 이러한 영장 발부가 일반화되는 경우 운영수익에 타격을 받을 곳은 바로 포털, 그리고 정보주고받기 기능을 수행하는 메신저, SNS 기능 제공 업체들이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자는 '유비쿼터스 검열'을 의식해야 하는 네티즌들이다. 이러한 검열이 일상화될때 일어날수 있는 가상시나리오를 작성해봤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 어느 신문사에 다니는 일반직원 경희 씨는 퇴근 후 세면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이 인근 동네는 최근 부녀자 연쇄 납치, 살인 사건이 일어나 집에 일찍 들어오는 버릇이 생겼다. 할 일이 없으니 즐길 낙은 컴퓨터 뿐이다.
우선 컴퓨터를 부팅하자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쭉 뻗은 한결 시원한 모습으로 변신한 영산강을 배경으로 깐 바탕화면에, 자동으로 로그인되는 네이트온 창이 뜬다.
경희 씨는 자기처럼 집에서 접속해 있거나 아직 회사라는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다. 학교 다닐 때부터 DJ DOC의 '너 사회에 불만 있냐?'는 가사처럼 궁시렁궁시렁 거리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좋아하던 친구 윤미 씨가 "죽고 사라지고, 요새 정말 흉흉하다. 여자가 살 만한 세상이 아니다"라고 푸념이다. "맞아맞아"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경희 씨는 잠시 다은 동창회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온라인으로 초저가 쇼핑몰에 접속해 물건을 사고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으로 셈을 치렀다.
과거 몇 년 전만 해도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떼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한때 직장 상관으로 모시던 분 중에는 혼수품인 냉장고를 인터넷으로 구매했다가 큰 돈을 액땜으로 치르신 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뭔가 달랐다. 요새는 어디서 무슨 방식으로 접속을 하든 인터넷상에서 수상한 짓을 했다가는 경찰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잡아들일 수 있다.
하기야 포털 메일도 모두 실명확인 발부로 전환됐고, 동네 피씨방 통신라인도 모두 인적사항을 여관 숙박부 적듯 깨알같이 적고서 쓸 수 있는 세상인데, 돈이 오가는 상거래는 당연히 철저하게 인적사항을 적고 이뤄져야 하는 거다.
경희 씨는 최근 더욱 높아진 안전하고도 신속하고 저렴한 인터넷 쇼핑의 즐거움에 모처럼 어둠이 짙게 깔리기도 전에 집에 틀어박힌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다.
몇 군데 신문사를 돌아다니면서 글을 읽었다. 요새는 포털이 신문사와 동일한 관리 책임을 지는 법 때문에 뉴스 서비스를 포기, 신문사마다 따로 돌아다니면서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도 있는 대신에, 몇 년 전과는 달리 악플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건 확실히 좋은 점 같다. 이게 다 '최진실법' 덕이다. 하여튼 익명의 방패 뒤에 숨어서 악플이나 다는 것들은 다른 범죄보다 몇 배 가혹하게 다스려도 싸다고 경희 씨는 생각한다.
이번엔 어쩐지 몇 년 전보다는 훵하게 변한 다음에 들러, 메일을 몇 개 검색해 본다. 메일통이 훵하다. 역시, 스팸이 없으니 메일통이 깨끗하기는 하다. 하지만 어쩐지 도착한 메일숫자가 후덕하지 않다는 사실에 빈약한 인간 관계가 바로 드러난 것 같아 좀 씁쓸하다. 그렇잖아도 같이 놀 남자친구도 없어서 우울하구만, 이라고 경희 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게 아니라 자기는 그저 치안이 불안해서 일찍 집에 틀어박힌 것이라고 생각을 고쳐 먹는다.
다음을 돌아보던 경희 씨, 아고라가 전멸해 다음에 별반 읽을 게 없자, 블로그가 많은 네이버와 네이트 톡톡과 싸이월드 광장이 연동된 네이트로 바로 '날아가' 인기 블로깅들과 톡톡 글들을 훑어 본다. 어떻게 이런 글들이 인기 톱이 돼 게시판에 올랐는지 한심한 신변잡기 글들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 보면 소소한 것이 읽을 만 하다. "인생 별거 있나?"라고 경희 씨는 생각한다.
가끔 아고라나 이글루스, 미디어몹 같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글도 찾아 읽고(한때 '미네르바'라는 유명한 네티즌이 "경제에 관한 글을 많이 쓰다가 잡혀간 적이 있었지"라고 경희 씨는 기억해 냈다), 여론 동향 파악을 하거나, 소비자 불만글 같은 것을 프린트해서 읽으며 기삿거리를 보강하던 같은 회사 기자들은 '영감'을 주는 '샘'이 말랐다고 울상이지만, 그건 아니라고 경희 씨는 생각한다.
"아이템은 발로 뛰면서 개발하는 거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찾는 건 옳지 않아!"라고 경희 씨는 생각한다. 그리고, 소비자 불만글을 대체 왜 아고라 같은 데 남들 다 보이게 올려 '강짜'를 부리느냐는 말이다. 그런 건 조용히, 엘레강스하게 해당 업체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나서, 일대일 비밀 상담 서비스를 받으면 될 일이다.
어쨌든 웹서핑을 마친 경희 씨, 잠자리에 들려는데, 누군가 대문을 두드린다.
덜컥 겁이 난 경희 씨, 쇠사슬을 걸어 놓고 빼꼼 조금만 열어 밖을 살피는데 경찰관 제복을 입은 남자 둘이 서 있다. "어쩐 일이신가요"라고 묻자 경찰은 좀 물어볼 게 있으니 서로 가자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서에 불려갈 일은 없는데, 무슨 일이시냐고 재차 묻자, 뒤에 선 머리가 희끗한 경찰관 하나가 영장이라고 적힌 종이를 문 틈으로 넘기면서, 오늘 친구랑 메신저상에서 부녀자 연쇄 살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한다.
경희 씨는 영장에 참고수신인으로 빼곡히 인쇄된 이름 중에 자기 아이디와 실명, 아이피 주소를 찾아낸다. 살인사건, 부녀자, 여자, 못해 먹겠다, 못 살겠다, 세상 흉흉 등의 검색어도 주르륵 목록으로 달려 있다.
경찰관 말로는, 인터넷상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자들을 일단 범죄 공모 가능성이 있다고 간추린 다음, 연쇄 살인범이 오가는 동선이라고 파악되는 동네 범위 거주자와 '매칭'을 시켜 그 두 가지 요건에 겹치는 사람들을 한 100명쯤을 불러들이기로 했다고 덧붙인다.
경희 씨는 그제야 아까 "여자가 살기 힘든 흉흉한 세상이라느니"하는 친구 말에 '적극적으로 부정을 안 하고 암묵적으로 경청'하고 있었다는 생각과, 자기가 사는 곳이 요새 한창 그 연쇄 부녀자 납치 살인범이 '출몰하는 곳'임을 기억해 낸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조사를 받으면 좀 빨리 풀려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선심 써서 알려두는 듯한 경찰관의 말에, '떳떳한 경희 씨'는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 할 일이 쌓여 있는 걸 생각하고는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불안함을 1g 정도 안고 경찰차를 얻어타고 나머지 99명의 피의자성 참고인보다 한 발 빨리 도착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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