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략) 아무튼 쌍용차는 상당 부분 감원 등을 해야 할 것 같다. 상당히 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인건비 비중이 경쟁사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 아니냐. (중략) 그런데 쌍용차 문제는 민감하니 내 이름은 안 내보냈으면 좋겠다"
14일 법정관리 신청을 한 쌍용차의 회생 가능성에 대한 문의에서 A 증권사 B 애널리스트는 상세한 설명 말꼬리에 '익명 요청'을 잊지 않았다.
애널리스트들이 위축되고 있다. 지난 해 사상 초유의 미국발 금융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애널리스트들은 분석보고서 양을 줄이며 침잠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주가 급락과 펀드 반토막으로 증시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데다가, 이어서, 잘못된 장밋빛 전망을 내놔 고객 자산 감소의 1등 공신 노릇을 했다는 차가운 시선까지 쏟아지면서 애널리스트들은 더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지난 해 애널리스트들의 '겨울'은 주가 방향과 폭 변경에 대한 위험신호를 제대로 못 보냈다는 거시적인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면 금년 들어서는 개별 종목 등에 대한 의견 제시도 주저하는 미시 부문에까지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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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전에도 애널리스트들이 개별 종목에 대해 부정적 의견은 잘 내지 않는다든지 민감한 부분에는 언급을 꺼리는 경향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증시와 경제지표 전반에 대해 언급을 내놓던 미네르바가 "국가 신인도에 미친 영향이 크다"면서 법원의 영장 발부 조치로 구속 수감되는 일이 벌어진 데다가, 유관기관의 업무규준 배포까지 겹쳐 "말을 조심해서, 공식적으로 기록남겨 가면서" 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 내부통제 기준을 구체화한 '증권사 조사분석업무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국내외 61개 증권사에 지난달 발송했다고 12일 공표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증권사 기업분석가(애널리스트)들은 회사 e메일과 메신저를 사용해야 한다. 개인 메일이나 메신저를 사용할 땐 준법감시인의 승인을 받아 사용하여야 한다. 대화내용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금감원 박원호 금융투자서비스국장은 "증권사마다 애널리스트 내부통제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회사별 편차를 줄이기 위해 증권업협회와 협의를 통해 모범규준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즉 이미 알아서 하고 있는 내용들을 표준적으로 한 번 제시한 것이라는 이야기라고 읽힌다.
법적인 구속력까지는 없어도 편차를 줄여주면 좋겠다는 '행정지도'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애널리스트들로서는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금감원은 이 같은 조치에 앞서, 지난해 9월 이후 외국계 증권사의 국내 대표주에 대한 '매도' 의견 제시에 대해 민감히 반응한 바가 있다.
◆미네르바 열기 속에 조금 대담해진 분위기, '다시 위축'
물론 그전에도 애널리스트들이 개별 종목에 대해 부정적 발표를 다소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C 증권사는 '과감하게' 어느 기업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다가 이를 철회해 '정보지'에 이름이 오른 적도 있다. 그만큼 소신껏 발언하는 분위기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던 방증이다.
이 분위기에 그나마 금이 조금 가기 시작한 계기가 미네르바 열기와 외국계 증권사 JP모건, CLSA 등이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매도 의견으로 일부 굴지의 기업들을 뒤흔든 케이스다.
미네르바 열기 속에서 D증권사는 "코스피 대폭락 가능" 전망을 내놓기도 했고, 국내 증권사 리포트들이 짚어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갈증이 외국계 증권사의 의견서들에 대한 환상 증대 효과로 이어지면서 "우리도 이제는…"이라는 생각을 일부 국내 애널리스트들이 하는 '뒷배경'이 되어주기도 했다.
◆차이니즈 월 도입 일응 타당하지만
그러나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미네르바는 전기통신법 상 허위사실 유포로 영어의 몸이 됐고, 증권사 내부 기준은 금감원에 의해 '표준화 작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금감원의 생각도 근거와 정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공황 이후 발전했다는 '차이니즈 월'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상충 제도로 번역되는 이 제도는 리서치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문 기능 인력이 서로 역할 혼동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데에서 출발했다. 증권사에 브로커리지를 믿고 맡기는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애널리스트들에게 사람 만날 자유를 일부 제한하면서도 대신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가이드라인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부정적 견해 자체를 백안시하는 분위기가 보장된 상황에서 차이니즈 월은 순기능이 더 크겠지만, 현재 우리 나라는 부정적 언론 기사 하나만 외신에 나와도 기획재정부가 대응에 나서고, 기업 유동성 위기에 대해 당국이 스크린을 하고 있다는 말 한 마디에 대기업이 흔들리는 등 관치 금융 잔재가 남아있고 시니컬한 의견 개진이 어려운 분위기가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 연초 분위기 경색이 애널리스트들의 존재 이유 자체까지 흔드는 게 아닌지에 대해서 업계 내외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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