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광은 사회당 대표 신년사 전문
또 한 해를 떠나보냈습니다. 2009년 새 해가 왔지만 별 느낌은 없습니다. 정리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삽질로 전 국토를, 삽질로 모든 국민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어떤 사람과 사람들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싸움, 양심과 정의를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민주주의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있는 저 무수한 악법들은 분명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독재 회귀, 독재 부활이란 말도 씁니다. 예,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사태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기존의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독버섯이 더 크게 움터왔기 때문입니다. 검은 비를 맞으며 독버섯이 보란 듯이 더 크게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시대가 아닙니다. 점잖게 말하면 ‘포스트 민주주의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본질을 말하면 ‘자본 독재의 시대’입니다. 감성으로 말하면 ‘탐욕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지난 10년간에도 차곡차곡 준비되어 왔습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적만 적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우리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르는 적이 때론 더 무섭습니다.
지난 한 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느라 몹시 바빴던 송경동 시인은 지난해 12월 27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비정규직 촛불문화제에서 ‘시 아닌 시’를 읊었습니다. 시를 쓸 수 없도록 만드는 세상에 대한 야유였습니다. ‘자리에만 앉으면’, ‘한자라도 쓸라치면’, ‘한 줄이라도 나가볼라치면’, ‘다시 생각해보자곤 일어나 돌아서면’ 싸우는 사람들이 눈에 밟혀 그는 시를 한 줄도 쓰지 못하겠답니다. 우리의 삶을 거리로 거리로 내몰고 있는 이 시대는 이처럼 시인이 시조차 쓸 수 없는 시대입니다.
한 줌도 안 되는 기득권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기도 합니다. 새해를 며칠 남겨두고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조 간부들에 의해 사무실에서 쫓겨났습니다. 일터에서 내몰릴 때보다 더 큰 절망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온 몸으로 끌어안은 정규직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의 한 정규직 노동자는 온갖 탄압을 감수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했고 끝내는 온 몸을 내던져 싸웠습니다.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 한 줄기입니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한 명이라도 덜 다치고 덜 죽었으면 하는 아이들의 숨죽인 기도 소리가 귓가를 맴돕니다. 연일 이스라엘 대사관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나 틈이 없습니다. 이에 항의하는 편지 한 장 들어갈 틈조차 없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학살은 연일 계속되고 있는데, 이 학살에 맞서려는 우리의 몸짓은 너무 미약해 겨울날 맑은 하늘을 바라보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지난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썼던 장 지글러의 새 책 <탐욕의 시대>입니다. 이 책은 제3세계의 막대한 부채 문제, 그리고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기아와 빈곤의 실태를 처절하리만치 생생하게 까밝혀 고발합니다. 이 책은 지구적 책임과 지구적 연대를 절절히 갈구하는 호소문입니다. 부채와 기아라는 두 개의 강력한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자는 강력한 선동문입니다.
학살과 기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탐욕스런 인간들이 만들어낸 최악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학살은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잔혹한 범죄입니다. 전쟁범죄를 넘어 사악한 범죄입니다. 또 기아는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자본의 세계화를 숭상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신흥 봉건제후들이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벌이는 합법을 가장한 사악한 범죄의 결과입니다.
학살에서 비껴난 여러분들, 기아로 내몰리진 않은 여러분들은 지금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운명의 신이 여러분을 감싸주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미 함께 그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우연한 순간에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그곳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이 엄연한 진실을 우리는 때론 망각합니다.
저에게 새해의 좌표는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에서 행동한다’, ‘지구적으로 행동하고 지역을 사고한다’입니다. 지구적 사고는 공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앞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보는 것입니다. 우리 다음 세대를 내다보는 눈까지 말입니다. 지구적 행동은 더 큰 연대의식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역을 사고하고 지역에서 행동한다는 것은 지역에 갇히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역과 현장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서자는 뜻입니다.
이 칠흑같은 어둠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서, 그리고 적들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더 단단해져야 합니다. 동지들을 감쌀 수 있게 더 낮게 더 많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저에게 새해 소망은 단지 그것뿐입니다. 사회당원들의 바람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입니다. 주변의 많은 분들도 같은 소망을 품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자리에서 더 이상 밀려나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가며 소망을 이룹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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